내 생활을 돌볼 권리
이따금 조선시대 왕들의 삶을 상상하곤 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국가나 다름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이 곧 국정이었으며, 그들의 몸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몸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그 모두가 타인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지는 삶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작은 기침조차 중요한 이슈가 되는 삶을 감당하는 것은 큰 권위를 부여받은 인간의 임무였을 것이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는'것이 지켜야 할 의무였다.
그들은 인간적인 모든 수고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 배제를 당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그들이 할 수 없었던 한 가지는 평범한, 어쩌면 그래서 더 소중한 세속적 삶을 살아가는 자유였다.
나는 대학을 오기 전까지 집안일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기숙사에 입사하고 나서 같은 방을 쓰는 룸메 언니에게 세탁기 작동법을 배웠다. 내 옷은 우리 집 가사 담당이었던 엄마가 환상적인 솜씨로 빨아주어 교복 소매가 언제나 눈부시게 빛이 났다. 해야 할 일은 내 방의 정리정돈과 빨랫감을 내놓는 일 정도일 뿐, 엄마는 나에게 최대한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나중엔 네가 다 해야 할 일이니 지금은 보살핌을 누리라'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내가 편했냐고?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별로 편하지 않았다.
엄마는 전업 주부가 아니었다. 생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집안일을 시작하는 엄마의 모습은 미안함을 넘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틈틈이 설거지를 하고 속옷 정도는 직접 빨아보려 했지만 엄마는 그런 게 자신을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집안일을 전담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인 불편을 느끼지 않던 다른 가족들에 비해 나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거의 다 이 가정을 유지하는 일에 써야 하는 상황으로 엄마를 내몬 것이 나인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의 무한한 인내로 봉합된 일상 속에서 어쩌면 자신조차 무감각해져 있는 엄마의 내적 비명이 날카롭게 정신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내가 실천한 한 가지는 최대한 빨랫감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모든 옷가지를 한 번만 입고 전부 빨래통에 넣어버리는 동생과 달리 나는 여름에도 땀에 젖은 티셔츠를 말려서 한 번이라도 더 입곤 했다. 속옷을 제외한 다른 옷은 최대한 깨끗하게 입고 빨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 나는 옷을 세탁하고 싶을 때 직접 세탁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진다. 수건을 한 번만 쓰고 세탁기에 던져 넣어도 그 일을 할 사람은 나이니까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귀찮은 일을 직접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해방감을 가져다준다.
내가 가사를 '내 몸의 주인이 되는 노동'이라고 설명하고 싶은 이유다. 과거, 가사는 노예들의 일이었고 지금도 종종 주변적인 일로 느껴지지만 가사를 행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위한 자주적인 실천이요, 독립이다.
지금도 나는 온갖 궂은 일을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버겁기는 해도, 이 모두를 누군가 대신 해 주는 상황을 상상해보며 지금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한다.
이따금 너무나 귀찮아서 이 모든 집안일이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는 날에는 그 어떤 일도 스스로 할 수 없도록 권위라는 동아줄로 손발이 묶인 조선시대 왕을 생각한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유일한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다.
나의 생활을 나의 마음대로 꾸려가는 자유 안에 위대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