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쳐폰 한 달 사용 후기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해 문자를 보내기 위해 휴대폰을 열었다.
그때 멀리서 나를 발견한 친구가 이름을 크게 부르더니, 마구 달려와서 내게 물어본다.
"야, 갤럭시 폴드 샀어?"
멀리서 보기엔 '갤럭시 폴드인 줄' 착각하게 되는 내 폰은 갤럭시 폴드가 아니라 '그냥' 폴더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하며 친구들과 주 2회 30분씩 화상캠을 켜고 독서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늘 독서를 생활화하자는 생각을 하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주의를 빼앗기기 십상인 나에게 이 독서모임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하루 30분씩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으면 마음이 정돈되고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이 경험은 곧, '나는 왜 이렇게 무의미하게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유리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 마켓에 '피쳐폰'을 검색하고 한 판매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결심부터 구입에 이르기까지,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단순한 통신 기기가 아닌 것이 물론이다. 이건 나의 지갑이요, 지도이며, 스케쥴러이고, 책이기도 하고, 오락기, 라디오, 음악 플레이어 등등 나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스마트폰 없이 집을 나선다는 것은 마치 가방을 통째로 집에 두고 외출하는 기분이었다. 허전함과 두려움, 형용할 수 없는 낯선 느낌이 찾아왔다.
간단하게 유심만 바꾼 뒤 사용하던 스마트폰은 서랍에 가만히 넣어두었다. 그리고 피쳐폰 사용 첫째 날이 밝았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휴대폰 알림을 확인하곤 했는데 곧장 욕실로 가야 했다.
세안과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방 안을 각종 뉴스로 채워주던 라디오도 이젠 없다. 침묵 속에서 출근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스마트폰 없는 일상을 살아 나갔다. 버스 도착 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해 약간의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친구의 급한 카톡에 답이 늦은 탓에 사과를 하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에라도 갈라치면 집에서 가는 길과 방법을 상세히 조사한 뒤 통째로 외워서 출발해야 하고... 상상 이상으로 불편한 점은 많았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좋은 점들을 알게 되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루 24시간 활동 중이던 On-line과의 단절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는 짧은 거리를 걷더라도 꼭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팟캐스트를 이용해 무언가를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뭔가를 듣거나 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언제나 '멀티태스킹' 상태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아닌 피쳐폰을 쓰면서는 멀티태스킹을 하기가 불편해졌고 그 횟수나 시간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산책을 할 때는 아무것도 듣거나 보지 않고 산책만 했다. 집안일을 할 때에도 오롯이 눈 앞에 놓인 그 일만 할 수 있었다. 가끔 식당에서 '혼밥'을 할 때 심심하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보곤 했었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식사만 했다.
그러자 피로도가 줄어들고, 이따금 공부나 독서 등의 task를 할 때 느끼던 충동적인 느낌이나 스트레스도 완화되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휴식의 질 역시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평소 주 3회 이상 요가 수업에 가는데 약 50분간 요가 수련이 끝나면 10분간은 바닥에 등을 누워 '사바사나' 자세로 휴식을 취한다. 요가를 하며 사용한 근육의 긴장을 풀고 호흡을 이완하며 몸을 돌보는 과정이다.
피쳐폰을 사용한 이후 이 짧은 휴식에 임하는 집중도가 달라졌고 10분간 누워있다 일어나면 놀랍도록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피쳐폰 사용으로 인한 변화인 줄 몰랐으나 '왜일까'하고 생각해 본 끝에 그것이 영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기는 해도 당분간 피쳐폰 사용을 유지할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불편함보다 그로부터 오는 장점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음악 들으면서 산책하기, 뉴스 들으며 집안일하기와 같은 멀티태스킹을 즐거움으로 여겨왔지만 실은 그 일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마음을 부산 스러이 만들고 있었음을 느낀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