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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Aug 31. 2020

위로가 되어 준 3%

어딘가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INFP에게 

바깥에서 날개를 다친 새가 둥지로 돌아가 몸을 재정비하듯, 대학을 다닐 때 내가 둥지처럼 돌아가 마음을 달래던 곳이 있다. 중앙도서관의 000번대 서가-그곳은 철학과 심리학 서적이 있는 곳이었다. 심리학 서적 중에서도 내가 펼쳐 드는 것은 MBTI와 애니어그램의 유형을 해설한 책들이었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가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유형적인 특징 때문이며, 그것은 그 유형에게서 대표적으로 발견되는 행동 특징이고 성향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마음이 놓였다. 설명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지극히 보편적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투로 기술한 글을 읽으면 위로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또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학교에서 진로 탐색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몇 번 MBTI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INFP유형으로 그 기호보다는 '잔다르크형'이라는 유형 이름이 뇌리에 기억되어 있었다. 잔다르크라는 인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느낌들, 그것이 나의 성향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지 크게 심취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MBTI에 관한 여러 책들을 찾아보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뒤이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갈등이 늘었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아닌 나 자신과의 갈등이었다. 표면적으로 나는 다른 사람과 갈등을 잘 겪지 않고 관계에 문제를 만들지 않는 무난하고 유순한 사람이었다. 나의 마음속은 그렇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일단은 친절한 탓에 관계는 종종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런 상황이 괴롭고 겉으로 하는 말과 속마음이 다른 자신의 이중성에 치를 떨었다.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상황에 휘말리거나 끌려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으면 매정하게 선을 긋거나 돌아서버렸다. 이는 상대방이나 주변인들에게 갑작스럽게 태도가 변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공감을 사지 못했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그간의 고통이나 돌아서는 이유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곪아 터진 상처 앞에서 목놓아 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혼자서 환부를 들여다보며 그저 입을 다무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일이 나에게는 이물감을 남기고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어제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하신 농담 이상하지 않았어?" 이렇게 물어보면 친구들은 기억도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상처 받을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했다. 그냥 일상일 뿐인데 나는 혼자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해줄까.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더 힘들었다.


그때 나에게는 일상이 거대한 벽으로 느껴졌다. 왜 하는지 모르면서 그저 해내야 하는 일들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떠밀리는 감각이 낯설고 두려웠다. 이런 심정을 어렵게 털어놔도 주변의 사람들 역시 나만큼 미숙했기 때문에 수용하는 법을 잘 알지 못했다. 친구는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했다. 부모님은 한숨을 쉬셨다. 그러한 반응들을 보며 단지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철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되었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 쌓인 감정이 병을 키웠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호흡 곤란과 함께 졸도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식은땀이 흘렀고 강의실을 빠져나와 건물 앞에서 택시를 잡고 가장 가까운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문진 후 검사를 받은 뒤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었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제가 왜 우울증인가요?" 의사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약과 진료비 계산서를 받고 병원을 나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날부터 일주일 정도 방에서 먹고, 자기만 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우울증이 낙인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구나. 병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병들었구나. 바로 다음 순간 낙인은 해방으로 바뀌었다. 정말 아파서 그랬던 거구나. 힘들만해서 힘들었구나.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어 주었다. 그간 나의 고통을 더 증폭시킨 것은 '괜찮아야 한다'는 믿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면 안 돼, 힘들 일이 아니니까. 아프면 안 돼, 다들 겪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의학과 검사 결과와 표본화된 수치가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나는 아프다고.

그 사실이 처음에는 충격이었으나 조금씩 깊은 위로로 다가왔다. 아픈 게 사실이야. 그 누구도, 나 자신조차 나에게 해주지 못한 긍정이었다.


우울증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무기력, 식욕 감퇴와 불면, 신체 증상들... 내가 겪은 징후들은 하나의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 있는 이유로 인정되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여러 연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그들로부터 옹호와 변호를 받았다. 숙인 마음이 아주 조금씩 당당해질 수 있었다.


MBTI와 애니어그램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우연히 우울증에 관한 블로그를 보다가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나와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INFP에 관한 글이 있었다. 본인도 INFP라고 하면서 성격 유형의 특징을 설명해 두었다.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다.


'우울증'이라는 하나의 명징한 현상을 들여다 봄으로써 나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처럼, MBTI라는 이름으로 연구된 통계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INFP'를 살펴보며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던 일들에 대해 'INFP라서 그래'라고 대답하며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다.

중앙도서관에 갖춰진 MBTI와 애니어그램에 관한 책들은 모두 읽어보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책은 '한국형 애니어그램 사례 분석집'이다. 애니어그램 각 유형별로 내담자들의 성장 과정, 성격, 직업, 결혼과 자녀 양육 등 사례를 기록한 책이었다. 그중에서 나와 같은 유형(4번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접하면서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내 옆에 있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최근 들어 MBTI가 유행하면서 친구들과 서로의 성격 유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놀랍게도 내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은 INFP가 대다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심적으로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배려와 수용, 이해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였나 보다.


MBTI를 맹신하면 안 된다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 통계적인 분석이 소중하다.

나도 수많은 통계 중 하나의 표본, 보편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MBTI유형 중 INFP유형이 MBTI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한다. 아마 가장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체 성격 유형 중 3%를 차지한다는 INFP. 이상주의자, 헌신하는 사람, 신중한 사람, 감정이입을 잘하고 동정적이며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 나.

여전히 '나는 왜 이럴까?'를 자주 생각하고, 이런 나라서 힘들다고도 생각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의 어엿한 유형에 속한다고, 꽤 많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슬퍼하며 나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해가고 있을 그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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