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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Oct 15. 2020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아파지는 약



나빠질 수 있는 약이요 살살 녹여먹는 동안 주형에서 다 굳은 밀랍이 빠져나오듯

피와 살이 분리되는 약속 같은 약이요

좀 전을 잊어먹는 약, 기억은 언제나 최초부터 시작되는 약, 내 꿈을 봉인해줄 수 있는 약을 주세요


당신은 당신의 뜻대로 약해질 수 없습니다. 나빠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 건강인걸요.

- 2013년 작 '허씨네 약국' 중에서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것보다 조금 더 아팠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아픈 걸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가슴이 아파서' 흉부가 까맣게 변하고, 슬픔이 쌓이고 굳어져 혹이 되고, 그런 환부를 오리고 꿰매는 수술을 할 수 있었으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슬픔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는 것처럼 치부되는 바에는

차라리 신체가 상하거나 피가 흐르는 게 나을 것 같다.




  2013년에 나는 처음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때 위에 있는 '허씨네 약국'이라는 시를 썼다.

약을 먹는 것은 낫기 위함인데, 내가 가진 아픔은 '더 깊게' 혹은 제대로 아파함으로써 치유할 수 있는 종류이기에 '아파지는 약'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우울증에 걸렸을 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그 고통이 무 위한 것을 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었다.

'별 것 아니래.'

'감기 같은 거래.'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 거야?'

몸이 다쳐서 몸져누운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너 괜찮아 보여'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다쳐서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차라리 마음의 고통을 몸의 고통으로 치환해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전치 12주 골절에 당분간 거동은 불가'라는 진단이 나오면 내 슬픔을 믿어줄까.




2014년 4월, 그날 아침이 기억난다. 문화센터에서 강연을 듣는 날이었는데 잠에서 깨는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안방 텔레비전에서 뉴스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무슨 사고야...?'

금세 구조가 됐다고, 모두 무사하다고 들었는데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와보니 아직도 구조가 안되고 있었다.

'뭐야...?'

그 첫날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일들이 지금까지도 종결되지 않았다는 것도.




2014년 12월 25일, 친구들과 동성로에서 거리 퍼포먼스를 했다.

'잊어버리지 않는 약'이라고 쓰고 약봉지에 종이배를 넣은 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우리가 기억하고 되찾으려 할 때, 비로소 함께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015년 봄에 나는 개인적으로 '아파지는 약' 캠페인을 시작했다.

학교 근처 문구점에서 약병을 구입해서 종이배를 넣은 뒤 '아파지는 약'이라고 써붙였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친구, 교수님, 주변 지인, 밥을 먹으러 간 식당이나 버스 옆자리에서 앉은 사람에게..

아픈 것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시선에 맞서 당신은 아파해도 됩니다. 여기 아파지는 약이 있으니 이걸 드시고 마음껏 아파하세요.

아파하는 당신 덕분에 우리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눈빛으로 전했다.




요즘도 나는 가끔 '아파지는 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슬퍼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이유로 슬퍼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에.

오염된 슬픔은 우리를 둔탁하게 찌르며 아프게 하지만, 

투명한 슬픔은 환부를 관통하며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고 치유로 나아가는 단초가 되어준다.


그러니 슬픔 앞에서 조금 더 정직해지기를. 고통 가운데 눈을 뜨고 응시하게 되기를.

아픈 일에 아파하는 것은 병이 아니다. 아파하지 못하는 것이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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