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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Oct 29. 2020

시 쓰지 마, 절대로

권하지 못하는 사랑, 그러나 시작되어 있는 사랑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새로운 책을 내셨다.

책의 부제가 '시는 어느 순간에도 삶의 편'이다. 마치 선생님의 음성이 귓가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처음 선생님을 뵈었던 건 어느 낭독회에서였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시를 공부했는데 이제는 시를 전공하는 학생이 되어 같은 공간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무척 떨렸다.

가져간 시집에 사인도 받고, 당시 수업을 듣고 있던 평론가이자 교수님을 통해 소개도 받았다.

시 쓰는 친구라는 말을 듣자 선생님이 방긋 웃으면서 "위험하게 왜 시 같은걸 쓰려고 해요? 쓰지 마요."라고 말했다.


그때 '시인으로 보았을 때 내가 시 쓸 깜냥이 안된다고 생각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내심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께선 도전적으로 시의 화법을 개척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쓰시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라'라고 말하시는 마음은 무얼까, 궁금했다.


그 뒤에 나는 한 기관에서 진행하는 강의에 등록해서 선생님께 시를 배웠다. 여름, 겨울 동안 두 번을 배웠다.

선생님은 시인으로 오래 살아오신 만큼 시와, 시를 쓰는 '사람'에 민감하셨다.

그래서 수업시간 이외에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고, 수업시간에도 가져간 시에 대한 평으로만 말을 주고받았지만

어쩐지 나를 오래 알아온 사람처럼, 그리고 내 내면에 다녀간 사람처럼 깊고 깊은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선생님 앞에 있으면 몸속까지 훤히 읽히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과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처음 낭독회에서 나를 선생님께 소개해줬던 평론가께서 문학 단체를 만들게 되었는데, 거기에 선생님도 참여를 하시면서 처음에는 나를 직원으로 초대하셨었다.

그런데 그때 상황이 맞지 않아서 일을 하지는 못했고, 대신 '청년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행사가 있을 때 가서 일을 도왔다.

전라남도 해남, 강원도 정선, 그 밖에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했다. 대학교 4학년 때까지.


그때까지 나는 시 이외에 다른 것들, 취업을 한다든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오로지 시를 쓰면서 살고자 하는 한 가지 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선생님이 바로 그렇게 살아온 분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유독 그런 조언을 하셨다.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시를 대하는 건 좋지 않다. 시와 너무 깊이 일치되어 있는 것이 좋지 않다.

시와 삶을 적당한 거리에, 스스로 견딜 수 있을 만한 위치에 두어라.

알겠다고는 했지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고, 어쩌면 별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과 마지막 만남 이후에 학교에 돌아와 뒤늦은 현실을 알아가고, 졸업을 하고, 사회에 발을 디디게 되면서

정말 우습게도 나는 그토록 사랑하던 시를 가장 먼저 버리고 있었다.

아쉽지만 안녕, 하면서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탄하고 원망하면서 있는 힘껏 밀쳐내게 되었다.

시 때문에, 시 때문에.. 모든 게 잘못된 것처럼 생각했다.


다시 몇 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위험하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문득 깨닫는다.

시를 사랑했던 일을 후회하게 될까 봐 위험하다고 하신 것 같다.

사랑하는 대상을 원망하게 되는 일이 가슴 아프니까 전부를 다 걸듯이, 맹목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았으면 바라셨던 것 같다.

당신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몸소 겪었고, 또 가까이서 지켜봤을 시 쓰는 사람들의 삶을 알기에

그 안에 사랑보다 깊은 고난과 아픔이 있음을 알기에 그렇게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까. 또 사랑했던 일을 후회할 수 있을까.

어린 학생 시절 내가 생각했던 '시 쓰는 삶'과 지금 내가 인식하는 '시 쓰는 삶'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 고독해서 괴롭고, 때론 무력감에 아프고, 사회나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오롯한 시간과 계절을 견디고..

그런 의미를 넘어서서 실존적으로 얼마나 많은 고충을 견뎌야 할지, 지금은 그것이 보인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분명 시를 쓰며 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잘 모르는 채 시가 주는 감동에 취해서 눈이 멀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저러다 나중에 크게 다치거나 후회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으로 걱정하셨을 것이다.


다치기도 했고 후회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일들 전체를 인정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내 삶이 이상적으로 흘러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시의 탓이라고 말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 밤에는. 시를 읽고 쓰면서 형성해 온 인격을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곳을 가고, 세상에 없던 세상을 만들면서

시 안에서 진심으로 행복했기에 원망하지 않으려 한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는 어느 순간에도 삶의 편'이니까. 그리고 그런 삶의 편 된 시를 사랑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시를 사랑한다고 해서 삶 전체를 시를 위해 쓰겠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결심을 했었고, 그런 사랑도 했었다.

그런 선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나의 삶도, 글도 있는 것이다.

시보다 삶을 더 먼저 사랑해주자. 그리고 삶의 편 된 시도 사랑하자. 삶과 시를 사랑하며 나 자신을 사랑하자.


시는 어느 순간에도 삶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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