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이 세상의 필터가 될 때

당신은 오늘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시겠습니까?

by 얼웨즈 Always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결정한다.


70년대 거실의 상징이었던 '못난이 삼형제' 인형을 통해 망각했던 삶의 태도를 반추한다. 낡은 브라운관 TV 위에서 울고, 웃고, 화내던 인형들의 표정을 직접 거울 앞에서 재현하며 깨달은 '시각의 확장'에 관한 기록이다. 내 얼굴의 근육 하나가 세상의 채도와 온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그 미묘하고도 거대한 변화를 풀어냈다.




나무 상자 속의 바보상자, 그 위의 관찰자들


기억의 저편을 더듬어보면, 1970년대 후반의 거실 풍경에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가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바로 나무로 짜인 맞춤형 상자 속에 들어앉은 브라운관 TV다. 마치 귀한 보물을 모시듯 여닫이문이 달려 있던 그 TV는, 문을 열어야만 비로소 세상 밖으로 빛을 쏘아 올렸다. 흔히 TV를 '바보상자'라 부르곤 했는데, 어쩌면 그 별칭은 정보의 질에 대한 비판 이전에, 실제로 TV가 들어있던 그 투박한 나무 상자의 형태에서 기인한 직관적인 이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 육중한 나무 상자 위에는 어김없이 '못난이 삼형제' 인형이 놓여 있었다. 한 명은 입을 크게 벌리고 서럽게 울고, 한 명은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곁눈질하며 화를 내고, 가운데 위치한 한 명은 세상 모든 근심을 잊은 듯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인형들을 찬찬히 뜯어보다 실소하고 말았다. 그들은 모두 예쁜 레이스가 달린 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삼형제'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세 자매'의 정체성이라니. 시대의 관습이 붙여준 이름 아래, 그들은 수십 년간 성별조차 오해받은 채 우리의 거실을 지켰던 셈이다.


거울 앞에서 시작된 기묘한 실험


어느 날, 장식장 한구석에서 이 인형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저 인형들의 표정을 내가 그대로 따라 해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단순한 호기심은 곧 거울 앞에서의 진지한 테스트로 이어졌다.


먼저 인형처럼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일그러뜨리며 울상을 지어 보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거울 너머의 방 안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눈가에 힘을 주고 실눈을 뜨니 세상의 해상도가 흐릿해짐과 동시에, 방 안의 가구들이 나를 압박해오는 듯한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슬픔의 필터를 끼운 시각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조차 '상실'의 단서를 찾아내고 있었다.


다음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화난 표정을 지어 보았다. 근육이 경직되자 시야가 좁아졌고, 거울 속의 나는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을 품은 듯한 공격적인 태도로 변해 있었다. 그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날이 서 있었고,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조차 눈을 찌르는 자극적인 소음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입꼬리를 시원하게 올리고 눈매를 부드럽게 풀며 활짝 웃어 보았다. 일순간, 거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압박하던 가구들은 안락한 휴식처로 보였고, 먼지가 내려앉은 책상 위조차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따스한 공간으로 재정의되었다. 웃음이라는 근육의 움직임 하나가 세상의 채도를 단숨에 높여놓은 것이다.


마음의 근육이 그리는 세상의 지도


단순히 기분이 좋아져서 세상이 예뻐 보인다는 식의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신체적 변화가 정서와 인지를 결정한다'는 과학적 사실보다 훨씬 더 깊은, 삶의 태도에 관한 발견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짓는 표정은 단순한 감정의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수신 안테나'의 각도를 조절하는 행위와 같다.


화난 얼굴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나를 공격하는 전쟁터가 되고, 우는 얼굴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나를 버린 슬픔의 바다가 된다. 그러나 내가 먼저 미소를 띄우고 세상을 응시하면, 세상은 비로소 나에게 숨겨두었던 다정한 안부를 건네온다. '바보상자' 위에서 인형들이 보여주었던 세 가지 감정은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의 인생관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흔히 "좋은 일이 생기면 웃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울 앞에서의 실험은 그 순서가 틀렸음을 증명한다. 세상이 나를 향해 웃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얼굴에 먼저 미소라는 등불을 켤 때 비로소 세상이라는 어둠 속에서 행복의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희망의 필터를 장착한다는 것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며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세상은 객관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렌즈를 통해 투사되는 풍경화라는 것을 말이다. 못난이 삼형제 중 우리가 어떤 얼굴을 가장 자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전반적인 색감이 결정된다.


불확실하고 거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미소의 주권'이다. 외부 환경이 나의 표정을 결정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내가 먼저 세상에 보낼 표정을 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밝고 희망찬 세상을 만드는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오늘 당신이 거울 속에서 선택한 그 미소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보고 싶은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못난이 삼형제 인형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시겠습니까?"라고 말이죠. 세 자매일지도 모를 그들이 치마를 입고도 '삼형제'로 불리며 꿋꿋이 웃고 울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규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행복의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못난이 인형의 표정을 따라가며 깨달은 것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짓는 미소가 곧 우리가 마주할 세상의 풍경을 결정한다는 삶의 진리입니다."


내 시각 속의 세상이 조금 더 환해지기를 원한다면, 지금 바로 입꼬리를 올려보시길 권합니다. 당신의 미소 맺힌 눈동자에 담긴 세상은,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다정하고 아름다울 테니까요. 그 작은 변화가 모여 우리 마음속의 세상은 비로소 완전한 행복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못난이삼형제 #70년대추억 #에세이 #글쓰기 #마음가짐 #긍정의힘 #시각의변화 #인생의지혜 #아날로그감성 #추억소환 #못난이인형 #작가일기 #자아성찰 #행복찾기 #브라운관TV #희망의필터 #마음근육 #삶의태도 #공감에세이 #Always #자기계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