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결혼 후 어머님이 차려주셨던 첫 생일상이란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가 한창인 날에 태어난 저를 위해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던 어머님의 모습. 그리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생일상을 보고 많은 분들이 감동과 부러움의 댓글을 달아주셨던 바로 화제(?)의 그 사진...
네, 맞습니다. 그동안 글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시어머니 복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 정성으로 가득하다 못해 넘쳐흘렀던 저 생일상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두 사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결혼하고 한 달여 후가 어머님의 생신이었습니다. 생신이 다가올 때쯤 제가 집들이 겸 어머님 생신상을 차리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시댁 가족들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모두 12명. 주말 이틀 동안 두 번의 장을 봤고, 전날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밑반찬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자정이 넘어 잠들었는데, 새벽 일찍 일어나 집안 정리를 하고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발휘해 생신상을 차렸습니다. 메인 요리만 네다섯 가지(잡채와 무쌈말이, 그리고 도토리묵무침 같은 것들은 그저 반찬일 뿐...), 가족수가 많은 만큼 교자상 두 개가 가까스로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준비했습니다.
더 많은 것들을 만들고 싶었지만 넘쳐나는 것은 마음이요, 부족한 것은 시간인지라 상에 오르지 못한 재료들이 냉장고에 가득했습니다. 이틀 동안 정성껏 준비했던 상차림에 다들 고마워하며 맛있게 드셨고, 넉넉히 준비해 부족한 음식 없이 잘 치렀습니다.(아쉽게도 생신상 차리느라 정신없어 사진 찍을 시간 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신상을 차렸던 며칠 후인 수요일이 어머님의 진짜 생신이었습니다. 주말 이틀 동안 준비해 제대로 한번 차려드렸다고는 하나 시댁과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신혼집이 있었던 지라 그냥 모른 체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남편은 야근하고 늦게 온다 하고, 아버님은 일 때문에 집에 안 계시는 날이라 어머님만 초대해 둘이 식사를 하려 했습니다. 간단하게 스테이크와 샐러드, 미역국만 준비해 저녁식사를 대접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에게 미리 말씀드렸는데, 오후 1시가 넘어 어머님에게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저기, 있잖아. 정말 정말 미안한 부탁인데, 저녁에 친한 친구들 두 명만 더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에요.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굳이 많이 준비할 것도 없고 숟가락 두 개만 더 놓으면 되는데.. 부탁해도 될까요?"
결혼한 지 이제 막 한 달여. 주말 이틀에 걸쳐 몸살이 날 정도로 정성 들여 준비한 생일상을 차린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시어머니의 친구 두 분까지 초대해 두 번째 생일상을 차려야 한다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시어머니 행사한다며 혀를 찰 수도 있는 일입니다.
비록 결혼 생활 한 달여 다소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어머님이 어떤 분이란 걸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머님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무리한(?) 부탁을 했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웃으며 알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친구분들이 함께 오시니 음식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관계로 저녁 식사 시간을 1시간 뒤로 조정했습니다. 그날 저녁 메뉴는 기존에 간단히 준비하려 했던 스테이크 대신 어머님 첫 생신상 차림 미니 버전의 메인 요리 세 가지 정도가 포함된 한정식 차림이었습니다.
어머님 친구분들은 신혼집이라 화장지와 화분을 선물로 준비해 오셨습니다. 어머님이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분들이라 서로의 집은 물론 속사정까지 모두 잘 알고 지내던 분들이셨습니다. 그러니 그 아파트에도 친구분들이 여러 번 놀러 오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던 신혼집은 원래 시부모님 소유의 아파트였습니다. 남편이 결혼 전 모은 돈과 어머님이 보태주신 돈으로 아파트 근처 빌라를 구입했는데, 결혼 몇 년 전부터 남편 혼자서 그 아파트에서 지내고 시부모님은 빌라에서 거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막둥이 아들 역에서 가까워 출퇴근하기도 편하고, 결혼해 조금이라도 좋은 곳에서 살게 하고 싶은 부모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오래되고, 크지 않다고 미안해하셨던 당신.
그 마음을 헤아리고 사람 불러 리모델링하지 않고 직접 칠하고 아기자기 꾸며놓았던 것이 어머님 마음에 흡족하셨던가 봅니다. 어머님에겐 한 번도 그날 일에 대해 언급한 적 없었지만, 아마도 어머님은 그렇게 꾸며놓은 집을 당신의 친구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듯합니다.
그래서 결혼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며느리에게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 그렇듯 어렵게 말을 꺼냈을 것입니다. 후에 첫째 형님이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며느리 생일상이라 걱정을 하셨다고.. 옛날 사람이라 예쁘고 솜씨 있게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뭘 차려 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며 당신의 첫째 딸에게 물어보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머님이 8월의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얼굴은 물론 상의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온갖 정성을 다해 차려주셨던 저 사진 속 생일상. 그 안에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던 며느리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한 상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넘쳐흘렀던 저 생일상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던 어머님의 모습. 상차림을 모두 마치고, 환하게 웃으며 했던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배고픈데 아침이 늦어 미안해요.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맛있게 많이 먹어요. 생일 축하해요.
남편이 살고 있는 집에 제가 들어오는 거라 기존의 물건들 때문에 살짝 고민을 좀 했습니다. 2년 후면 청약 당첨된 새 아파트로 이사 갈 예정이었지만 그래도 신혼이니 내 마음에 드는 것들로 꾸미고 싶은 마음이.. 그래도 시부모님 소유의 집이기도 하고 신랑이 쓰던 물건들을 그냥 버리자니 마음에 걸려서 큼직한 가전제품과 가구는 구입하고 쓸만한 소소한 것들은 모두 리폼을 했습니다.
시댁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곳이기에 조금 더 신경을 더 쓰고 싶었는데 다행히 다들 보시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특히나 어머님이 마음에 꼭 드셨는지 집을 보시곤 제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비록 몸이 좀 고생하긴 했지만, 집안 곳곳 제 손길이 닿아서 더 애착이 갔습니다.(그런데 지금 보니 좀..--;)
비록 나이는 좀 있었지만, 신혼은 한 번이니 좀 아기자기하게 꾸며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결혼 준비하며 만들었던 포크아트 소품들을 활용하려니 이 정도 밖에..^^;
오래전 신혼집이지만 온라인 집들이 한번 해보겠습니다.^^
형님들이 책이 많다고 집들이 선물로 미리 사주신다고 해서 선물 받은 책장인데 가지고 있는 책이 정말 딱 맞게 들어가 참으로 기분이 좋았던~^^(결혼 전 300여 권은 정리를 한 상태였는데 남편 책은 사실 저것들 중 몇 권이 되지 않았다는 건 안 비밀입니다.^^)
노트북을 놓을 좌식 테이블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마음에 드는 게 없던 중 베란다에 나갔는데 어머님께서 고추장과 된장 단지를 놓아둔 요걸 발견~ 사이즈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잘 차려 먹기 좋아해 2인용 식탁이 조금 아쉬웠지만, 이사할 때까지만 참는 걸로~^^
어머님이 직접 만드셨는지 레이스 테이블보를 주셔서 이렇게~^^
욕실 리폼에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그래도 하고 나니 가장 뿌듯했던~^^(특히 체리색 몰딩과 수납함 칠하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고, 줄눈까지 일일이 칠하느라 어깨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마이너스 손을 가진 남편의 도움은 하나도 없었단 것도 안 비밀입니다.^^)
어머님이 버리기 아까워해서 베란다에 두셨던 어항은 티테이블로~^^
기존에 걸려 있던 이 시계 자리에는 포크아트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결혼 선물로 만들어 주셨던 시계를 걸고, 이 시계는 어머님 생신 때 다른 선물과 함께 드렸습니다.^^
이상 온라인 집들이를 마치겠습니다~!^^
ps. 금요일 3시 모더나 1차 접종하러 갑니다. 혹시 며칠 조용하다 싶으면 컨디션이 안 좋구나~ 생각해 주세요.^^(아니~아니~ 그럴 일 없도록 기도해 주세요.^^)
written by 초원의빛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이은미님의 '녹턴'
* 노래 비하인드 스토리 : 작곡가 윤일상님은 “그 당시 결혼에 대해서 이미 포기를 한 상태였고 황량한 심정으로 곡을 썼는데 곡을 쓰고 난 바로 직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며 “결혼의 기회가 되기도 했던 곡이기도 하고 굉장히 펑펑 울면서 쓴 곡이다”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윤일상님은 “곡 쓸 때 자체도 내가 아주 심하게 울어야 대중도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이은미 씨도 부담을 느꼈다. 노래가 어려운 곡이라 몇 번 연습하고 불렀다. 그다음에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을 감정을 쏟아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라고 털어놨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한 가수에게 새벽 4시에 보냈다던 곡이 바로 이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