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원의 빛 강성화 May 04. 2021

아버지와의 추억 만들기.. 아버지와의 첫 포옹..

당신이 내 아버지라 참으로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등대 같은 거야.
밝은 낮에는 태연한 척 가만히 웅크렸다가,
어두운 밤만 되면 깜박깜박 제 몸을 밝히는
등대와도 같은 게 우리들의 아버지거든.
아버지의 침묵 속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담긴 거야.

- 이철환, <연탄길> 중에서 -




아버지는 제게 단 한 번도 아빠로 불렸던 적이 없습니다. 막내로 태어나 나이 터울이 많이 나서였는지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불러서였는지 그 연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처음에도, 지금도 제겐 너무나도 크신 이름 바로 아버지, 아버지입니다.


제 기억 속 아버지는 유난히 말씀이 없으셨지만,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손재주가 좋으신 아버지는 이것저것 뚝딱뚝딱 잘 만드셨고, 내 필통 속 연필들을 항상 살피시어 너무 뾰족하지도 뭉툭하지도 않게 깎아 가지런히 놓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장에라도 갔다 오시는 날엔 항상 잊지 않고 동전 한 주먹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하굣길 후문 근처에서 기다렸다가 어린 날 자전거 뒤에 태우시고 열심히 페달을 밟으셨습니다. 혹여라 잠이 들까 싶어 '자면 안 된다, 자면 안 된다, 집에 거의 다 왔다.' 말씀을 하셨지요. 아버지의 넓고 따뜻한 등에 얼굴을 대고 꼭 안고 있노라면 언제나 소르르 잠이 왔던 듯합니다.


무척이나 부지런하셨던 아버지는 항상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유난히 점잖고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 아버지를 고스란히 닮아 유난히 말수가 없었던  기억에 남을 이렇다 할 대화나 추억들을 만들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은 통하기에 잔잔한 아버지의 사랑은 항상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주름이 점점 늘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순간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으신 아버지와 이렇다 할 추억도 많은 대화도 나누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아니 조금 더 일찍 깨닫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하나둘씩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에 갈 때마다 막내의 발마사지를 좋아하시는 엄마에겐 항상 해드렸거늘 정작 아버지에겐 한 번도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죄송해 이젠 고향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발을, 다리를, 어깨를, 팔을 마사지해 드립니다. 처음에는 발 안 씻었다, 힘들다, 됐다.. 하시며 슬며시 발을 다른 쪽으로 옮기셨지만 막내딸의 손길이 싫지 않으셨던지 이젠 아무 말 없이 자연스레 몸을 맡기십니다.


20대 후반까지도 엄마가 꼭 주워온 아이 같았다고 할 정도로 말이 없는 막내였지만,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부모님 앞에서만은 수다쟁이가 됩니다.


"아버지, 난 얼굴만 엄마 닮고 다른 건 다 아버질 닮은 것 같아요~손과 다리도 닮고 성격, 식성까지도 다 닮았잖아요~"


그렇게 재롱을 부리며 아버지의 손과 다리를 내 그것 옆에 나란히 두고 사진을 찍습니다.



어느 가을날, 결혼할 사람을 처음 소개하러 갔던 날의 그 잊지 못할 기억.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힘껏 안아 보았습니다. 온 가족이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자리를 잡으려 할 때 이 때다 싶어 아버지께 쪼르르 달려가서 아버지를 와락 안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없네요~ 오늘은 우리 아버지 꼭~ 안아봐야지~사랑해요!"


뜬금없는 막내딸의 행동에 당신은 참 좋으셨던가 봅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계속해서 얼굴 한 가득 웃음 지으셨고,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아버지 품에 안긴 딸을 꼭 안으시며, 사랑한다는 말에  마치 '나도 사랑한다..'라는 대답이라도 하듯 따뜻한 손길로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처음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품도 엄마만큼이나 포근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그 따뜻함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자전거 뒤에 앉아 느꼈던 아버지의 넓고 따뜻했던 등, 바로 그것과 같았습니다.




예전엔 고향에 전화할 때 아버지가 받으면 대화는 1분을 채 넘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식사하셨어요? 거기 날씨는 어때요?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으세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엄마는요?"라는 말로 마무리하며 엄마를 찾았습니다. 사실 아버지와는 할 말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에게 전화통화는 불편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건 저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토록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도 자식과의 전화통화를 좋아하셨고, 실은 당신도 기다리고 계셨던 듯합니다.


언젠가 탐스러운 복숭아를 보니 제가 생각났다며 가장 알 굵고 좋은 복숭아를 사주시는 시어머니를 보니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서 고향에 있는 언니에게 가장 좋은 복숭아를 사서 집에 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복숭아를 보며 흐뭇하셨던가 봅니다. 그리고 언니에게 그러셨나 봅니다. 막내가 요즘 전화도 자주 한다고 좋아하시더라고. 1분을 채 넘기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통화는 이제 20분, 30분.. 또 언젠가는 뭐 그리 서로 할 말이 많았던지 1시간 30분을 넘긴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장수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부부가 금슬 좋은 게 노년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래요. 거기서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92, 86세인데 서로 고맙다, 사랑한다 표현을 많이 하고 밥을 잘 드시고 하니 항상 웃음이 가득하고 건강하시더라고요. 아버지도 식사도 잘하시고, 엄마한테도 다정하게 더 잘 챙겨주고 그러세요~

그리고, 아버지~ 사람이 삶의 목표가 있어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 법이래요. 아버지도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시지 마세요.  아직도 아버지 정정하시잖아요.  아버지의 열 번째 손주인 우리 린이 크면 언제나 그러셨던 것처럼 아버지가 안아주고 하셔야죠.

그리고, 우리 5남매들에겐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정신적 울타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랑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계셔 줘야죠. 그러니 때론 적적하고 몸이 약해지셔서 힘드시더라도 하루하루 무탈하게 건강하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 생각하시고 잘 관리해서 건강하셔야 해요."

막내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도 닿으셨던지 아버지는 그 어떠한 말에도 "그래, 오냐!"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밝은 낮에는 태연한 척 가만히 웅크렸다가, 어두운 밤만 되면 깜박깜박 제 몸을 밝히는 등대와도 같은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는 것을, 그 침묵 속에는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아니 더 늦기 전에 나의 침묵 속에도 언제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더 이상 침묵이 아닌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당신이 내 아버지라 참으로 고맙습니다.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해요."


ps.  아버지 생신 때 문패를 직접 만들어 선물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고향에 내려갔을 때 유난히 바래진 문패가 맘에 걸렸기에. 선물을 받고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웃음만 지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 마당에 나가다가  걸려있는 문패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못을 박고 그렇듯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의 마음을 느끼셨던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사랑은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아버지의 마음 >      - 김현승 -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눈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written by 초원의빛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인순이&바다의 '아버지'

https://youtu.be/r7B_9-rj9bI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과 딸의 저녁 밥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