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두 달여 만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왔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가고 싶어도 마음 편히 찾아뵙지 못하고 있었는데, 항상 대기조로만 있다가 아버지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백신 접종을 하셔서 그런지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어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토요일 아버지는 2차 접종을 하고 오셨습니다. 건강하신 편이지만 87세 고령의 연세라 1차 접종 전 조금 걱정을 했는데 1, 2차 모두 무탈하게 지나가서 걱정을 덜었습니다. 주말 내내 비가 내릴 거라 예상했는데, 다행히도 오전에 비가 그쳐 토요일 점심 식사 후 무섬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고향이 영주지만 무섬마을은 한 번도 다녀온 적이 없습니다. 무섬마을은 드라마 촬영지는 물론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된 곳입니다.
자연이 어우러진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온해져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강물은 너무나 맑고 깨끗했고 흐르는 강물 소리조차 정겨워 가던 걸음이 저절로 멈춰졌습니다.
이 좋은 곳을 가까이 두고 왜 이제야 왔던 것인가.. 그런데 그날 보았던 모든 풍경과 모든 향기들이 더욱더 아름답고 향기롭게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였기에..
지나가는 길에 보았던 탐스러운 불두화는 시선을 머물게 하기 충분했고,
그 향이 어찌나 진하던지 마스크로도 막을 수 없는 아카시아 향에 눈은 절로 감기고 들숨과 날숨의 속도는 유난히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시선을 머물게 했던 한 편의 시.. 천양희님의 '견디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견디어 살아남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짧은 기도 후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제 아무리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고향집의 그것에 비할 수 있을까요.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강과 산이 있는 그곳. 내 마음속 영원한 안식처이자 힐링 플레이스.
빗방울을 꽃잎에 머금고 있는 활짝 핀 10여 그루의 작약꽃을 보니 내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마음이 흥부의 그것보다 한 수 위인 걸 알고는 올해도 제비는 우리 집에 터를 잡았습니다. 내 너에게 큰 재물은 바라지도 않을 터이니 우리 부모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게 바라노라, 바라노라.그 소원만 좀 들어주렴.
토요일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치고 누워있는 아버지 옆으로 가서 나란히 누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쓴 글이 있노라 설명하며 준비해 두었던 글을 읽어드렸습니다.
글을 모두 읽고 나서 아버지를 위한 안마를 시작했습니다. 발, 다리, 손, 팔, 어깨... 한평생 일만 하셨는데 어찌 이리 굳은 살도 하나 없이 피부가 부드러울 수 있냐 하니 당신도 동의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엄마의 모습이 좋았던지 8살 딸도 좋아서 함께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벌떡 앉으시더니 주머니 속에서 돈을 꺼내어 "자, 받아라~!" 하시며 손녀가 아닌 제게 10만 원을 주셨습니다. 항상 손녀 먼저 챙기셨던 아버지인데.. 한 템포 늦게 5만 원을 받아 든 딸은 자길 예뻐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좋아라 하며 웃었지만 아마 이것까진 미처잘 몰랐을것입니다.
'딸아, 할아버지 눈에 네가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한들 이번에는 너보다 엄마가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할아버지 눈에 잠시 너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받고 의기양양(?)해진 전 아버지를 꼭~ 안고 딸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딸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엄마도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딸이니 엄마 말 좀 잘 듣고, 엄마 속 썩이면 안 된다~~~"
지금 아버지가 주신 용돈은 예쁜 봉투에 따로 담아 두고 어떻게 쓰면 잘 쓸까 생각 중입니다.
아직도 건강하게 우리 자식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계시는 87세 아버지가 주신 10만 원의 가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에...^^
ps. 남편과 딸~! 비 오는 날 운전도 하고 짐 정리하느라 피곤해 잠시 배달로 저녁을 해결할까 하다가 이렇듯 부녀가 좋아하는 메뉴에 딸의 소울 푸드인 누룽지를 더해 차려줬던 것은 모두 다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인 줄 알고 고마워하길~! 내 비록 몸은 피곤했어도 부모님 보고 오니 마음이 충만해져 가능했던 것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