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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Jul 24. 2021

이별 위로 의식, 이 여자가 사는 법

인연, 당신의 사랑이 늘 행복하기를...

바쁜 거 아는데 너무 죄송해요.
안 좋은 일이 생겼어요.
출근하면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은데
내일 휴가를 쓰고 싶어요.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10년 전, 어느 겨울의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뒹굴뒹굴거리고 있는데 오후 4시쯤 문자가 한 통 왔습니다. 매일 퇴근길 태워주는 여직원의 문자였습니다.


순간 '무슨 일이 있구나.' 싶은 생각에 집안에 문제 생긴 거냐 물어본 후 혹시 지금 당장 대답하기 힘들면 나중에 와서 얘기해도 되니 전산으로 휴가를 신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문자를 한 통 보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 알죠?

화요일도 그 맘이 계속되면 내 가슴 빌려 줄게요.

맘 아파서 어째~ 토닥토닥~♥"


무슨 일일까 걱정은 되면서도 마음이 열리면 먼저 말해 주겠지 싶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는데, 4시간 후쯤 문자가 왔습니다.  전날 갑자기 남자 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3, 4년 안에는 결혼 생각도 없고 당분간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이 너무 크다고, 연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배신이 너무 아프다는 그녀의 문자를 받으니 순간 가슴이 알싸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놀랐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헤어지잔 통보를 받기 얼마 전 남자 친구가 해외출장 다녀와서 화장품 선물도 주고, 정말 너무나도 잘 지내는 커플이었습니다.




이별의 크나큰 통증을 느끼고 있을 그녀에게 그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이별의 아픔은 내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언제나 가슴 아프고, 슬픈 법이니. 그래서 혼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아.. 세상에..
며칠 전까지 선물을 사주던 그런 사람이..
그래서 당연히 집안 문제일 거라 생각했어요..
내 가슴이 다 알싸하다..
나도 이렇게 눈물이 핑도는데 당신 맘은 오죽할까..
나도 지금 눈물이 흐르네요..ㅠㅠ

오늘은 직장 상사 말고 그냥 언니 하자.
OO야, 정말 많이 아프지?
얼마나 가슴 무너져 내리고 먹먹하고 답답할까..
그 통증들.. 얼마나 아프고 아플까..
한동안 가슴이 춥고 혹독한 겨울,
겨울잠 잔다 생각하자..
아무 생각 말고 맘껏 울고
그러다 지치면 또 자고 그러자..
언니가 네가 필요할 땐 언제든지 내 가슴 빌려 줄게..

살다 보니 누군가의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은 날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게
참 외롭고 아프더라..
널 이토록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네 곁에 많이 있다는 거 알지?
사랑한다!!!♥


사실 평소에도 가끔씩 뜬금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였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손수건이 꼭 필요한 사람인 듯하다며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손수건을 사준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때 제가 괜히 손수건을 선물로 해준 것일까요. 손수건 한 장으로는 이별의 눈물을 모두 감당할 수 없을 듯하기에 또 한 장의 손수건을 준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온 그녀가 출근을 했습니다. 손수건 한 장을 선물로 사줘야겠다 생각이 전날 밤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점심시간에 가까운 아울렛에 가서 그녀를 위한 선물을 샀습니다. 따뜻한 니트티, 장갑, 머플러, 그리고 수면 양말.


< 추운 겨울 날, 구멍난 마음에 몸이라도 따뜻하게... >


그 당시 제가 새로 입고 온 니트티를 몇 번이나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털이 참 따뜻하겠어요..'라고 말하던 그녀가 생각났습니다. 집안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고, 장녀 역할을 해야 하는 지라 경제적으로 그다지 여유가 없 그녀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이 겨울 몸이라도 덜 춥게 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와의 그 당시 근무하던 곳에 발령 나기 전에도 함께 근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첫 입사를 했을 때 제가 상사로 있었고, 몇 년 후 다시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상사, 부하 직원을 떠나 인간적으로도 저를 따르던 사람이라 연락하고 지냈는데 그렇게 또 인연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동안 오랫동안 인연이 닿을 사람이기에 좀 더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준비한 선물을 선물 상자에 담고 메신저로 그녀를 제 방으로 불렀습니다. 업무 지시가 있는 줄 알고 들어온 그녀를 보자마자 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가까이로 갔습니다.


OO야, 많이 아프고 힘들지? 밥은 좀 먹었니?


유난히 찬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했던 한 마디에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바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저도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꼭 한 번 안아주며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내가 우는 거 처음 보지? 기억나니?
예전에 직원들이 나 송별회 해줄 때
직원들 다 우는데 나 혼자 꾹 참고 있었던 거..
내가 무슨 말로 다 어떻게 위로를 해 줄 수 있겠니..
너를 생각하며 흘리는 이 뜨거운 눈물이
내 맘이라 생각하렴..

언니가 문자로 말했지?
내가 언제든 내 가슴 빌려주겠다고..
너를 위해 무슨 선물을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골랐어..
한 번 열어 봐..
언니랑 똑같은 옷인데 색깔만 달라..
다른 직원들이 혹시 나중에 물어보면
예뻐서 물어보고 샀다고 해..
네 맘을 따뜻하게 해주진 못하더라도
이 추운 겨울 네 몸이라도
따뜻하게 해 주고픈 내 맘이다..
몸을 지나 마음으로 찬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꽁꽁..

나도 살다 보니 누군가의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은 날이 있었는데
성격상 어디 말은 못 하고 그때마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게 참 외롭고 아프더라..
울고 싶은 만큼 울고, 원망하고 싶은 만큼 원망하고,
그렇게 다 털어내자..
널 이토록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네 곁에 많이 있다는 거 알지?


그렇게 함께 눈물을 흘리며 시작된 대화는 한 손을 꼭 잡은 채로 1시간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를 위해 차 한 잔을 주고, 같이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별 위로 의식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눈물 쏙 빠지게 매콤한 낙지볶음을 저녁 식사로 사줬습니다. 그녀는 선물이 조금 부담되었는지 식사를 하고 난 뒤 계산서를 집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테이블을 탁! 치면서 어디 어디 손이 가니~라고 하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슬며시 웃길래 저도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그녀도 저도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식당 문을 나섰습니다.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 같은 겨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고 봄은 또다시 올 것을 기대하면서. 그날 자정이 넘은 시간 그녀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이 났어요.

전 참 복 있고 행복한 사람인 것을..

감사하면서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항상 힘이 되어 주시고, 감사해요~♥"


"그래~ 오늘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잠들 수 있길 바란다~ 사랑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떻게 사는 게 더 즐겁고 충만한 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든 말 한마디의 유쾌함을, 감사함을, 그리고 따스함을 제가 머물렀던 자리에 마음을 담아 남겨 놓고 오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날 그녀를 위해 옷을 사러 갔더니 매장의 매니저님이 다른 손님과 함께 있다가 저를 알아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며 이별한 그녀를 위해 선물을 사러 왔노라며 옷을 고르고 계산을 하고 가려했습니다. 그런데 "잠깐만요~"라는 말과 함께 창고 안에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따뜻한 레깅스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그분에게 닿았던 것인지 갑자기 속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사실, 나 이거 이제 그만하려고요. 요즘 이래저래 너무 힘들어서요.. 왜냐하면 (*^*&%&$^$^"

후임자를 구하려고 요청해 놓은 상태인데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 하니 이거라도..

언제가 될지 모르니 봐서 또 놀러 오세요."


사실 옷 사러 두어 번 간 것이 전부라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남겼던 것은 다정한 웃음과 따뜻한 말 한마디뿐.. 그런데 그렇듯 자신의 속내를 낯선 이에게 털어놓는 그분을 보면서 순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굳이 일일이 말로 뭐라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작으나마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선물을 다 고르고, 작은 선물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 과일 주스를 사서 다시 매장으로 갔습니다.


"선물 고맙습니다~시원하게 한 잔 드세요~

참~ 인증샷 하나만요~손만 찍을게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지금은 어떠세요? 좀 괜찮아지셨나요? >


추운 겨울이었거늘 날씨가 왜 그리 좋던지~ 마음은 얼마나 상쾌하던지~ 또 발걸음은 얼마나 가볍던지~

사무실로 돌아가려 룰루랄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가고 있었는데, 간식거리들이 보였습니다. 사무실 직원들은 물론 항상 웃음으로 절 맞아 주시는 같은 건물 경비 할아버지와 꽃가게 사장님, 그리고 반찬가게 사장님에게도 나눠드리고 함께 잠깐의 웃음과 여유 나눴습니다.^^

< 함께하는 기쁨, 함께 나누는 행복 >




그녀는 제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았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와 전 아직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보다 6개월이나 일찍 만났던 그녀의 부부는 집안에 계속 일도 생기고 해서 우리가 결혼한 후에도 한참이나 지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의 엄마가 암에 걸려 투병 중인 영향인 듯했습니다.


그녀의 결혼식날, 예식장 앞에서 처음 뵈었던 그녀의 엄마는 휠체어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눈물이 났던지. 양가 모두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 그랬던 것인지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던 그녀에게는 이제 아빠를 꼭 닮은 세 살 된 딸이 있습니다.


SNS에 캠핑을 좋아하는 그녀의 가족사진이 종종 올라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며칠 전부터 육아 휴직을 마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는 그녀에게 응원과 축하의 의미로 메시지와 함께 보낼 작은 선물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written by 초원의빛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이병우님의 '인연'

https://youtu.be/ThYx2Ck9kt4


바이준님의 '당신의 사랑이 늘 행복하기를'

https://youtu.be/_EX5zi9wm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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