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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Jul 12. 2021

날 울린 어머님의 전화 한 통

며느리 사랑은 시어머니

막둥아, 지금 현관문 열어 봐요.
뭐가 있을 거예요.


지난 6월의 어느 날, 시계가 오후 6시를 향해 갈 때쯤 어머님에게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지? 현관문 앞에 뭐가 있단 말이지?'


뜬금없는 어머님의 전화에 한쪽 손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핸드 카트를 가득 채우다 못해 산처럼 쌓인 저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걸 끌고, 들고 그렇게 두 분이 산책(?)을 오셨다 >


"어머님, 이게 다 뭐예요. 언제 다녀가셨어요. 왜 연락도 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그냥 할아버지랑 산책 삼아 갔다 왔어요. 별 거 없어요.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산책 삼아 다녀갔다니.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그것도 이른 더위에 유난히 무덥게 느껴지던 날이었는데. 어머님과 몇 마디 나누다가 전 그만 가슴이 울컥해져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에..


시부모님이 다녀가셨던 바로 며칠 전 이번 주말 놀러 가겠노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녀가시기 전날 통화를 했는데 아버님이 근무하시는 곳에 확진자가 생겨서 함께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 검사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모두 음성이긴 한데 선뜻 오라고 말씀하기가 어려우셨던 듯합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오시면 확진자와의 접촉이나 기타 상황을 들어보시고 알려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그렇듯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먼 거리를 저걸 갖다 주려고 지하철을 타고 조용히 놓고 가셨던 것입니다. 당신들은 백신 접종을 해서 상관없지만 혹여나 아들 내외와 손녀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서.. 어머님은 울먹거리는 제게 산책 삼아 운동삼아 왔다며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휴대폰 너머에선 예쁜 손녀 얼굴 못 보고 돌아가는 아쉬움이 담긴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먼 길 가려면 시간도 늦어지고 하니 꼭 식사하시고 가라 말씀드렸더니 그렇지 않아도 먹고 가려했다고 걱정 말라고 하시며 통화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먼 길 조용히 다녀가신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가족 잘 먹고 잘 지내는데 그렇게 더운 날 무얼 전해 주려고 팔순을 바라보는 당신들이 다녀가셨나 생각하니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 어머님의 저 깊은 사랑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
< 손녀바보 아버님의 편지&용돈 >




뭘 그리 골고루도 챙기셨는지.. 대부분 며느리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남편과 딸이지만 유독 김치류만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요즘 맛있는 사과 구하기 힘든데, 저 알 굵고 단단하고 달디 단 사과 또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입니다. 저 사과를 보며 분명 제가 생각이 나 샀을 것입니다.


며칠 전 놀러 갈 거라 전화했을 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으셔서 이제 냉면의 계절이 돌아왔으니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냉면 무가 먹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주말에 못 볼 것 같으니 아침 일찍부터 저렇듯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를 급히 만들어 그 먼 길을 조용히 다녀갔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날은 제가 썼던 글이 다음&카카오 메인에 올라갔던 날이었습니다. 제 구독자 중 예닐곱 명이 제 가족이거나 지인인데 어머님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 오후에 어머님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고 싶어 그 사실을 알려드렸습니다.


< 다음&카카오 메인에 노출된 날 >


딸의 재롱 사진과 함께 관련 소식을 전해 드렸던 그 시각, 어머님은 우리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태연한 척 이렇듯 메시지를 보내셨던 것이었습니다.


< 줘도 줘도 더 많이 주지 못해 아쉬워 하시는 당신의 마음 >



그렇게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사랑이 가득 담긴 김치를 맛있게 먹고 그날 밤 어머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 사이 좋은 고부지간도 대한민국 상위 1% >




딸의 생일을 앞두고 우리는 오랜만에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여행 한번 가는 것도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딸의 생일만큼은 챙겨주고 싶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해 딱 한번 다녀왔던 속초 여행 또한 딸의 생일 기념 여행이었습니다.


1년 만에 가는 이번 바다 여행엔 어머님도 함께였습니다. 어머님은 미안해하시면서도 고맙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여행 전날 저녁 우리 집으로 오셨던 어머님의 손엔 또 잔뜩 무언가가 들려 있었습니다. 딸이 돌치레를 앓고 난 뒤 입맛을 잃어 잘 먹지 않았을 때 우연히 맛본 약밥을 맛있게 먹었던 것이 문득 기억나서 떡집에서 직접 반 말을 맞춰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한 말 해올까 하다 반 말만 해왔다는 어머님. 반 말도 50개나 되어 저리 무겁고 많은데 저 큰 손을 어찌할꼬. 그것만도 무거운데 얼마 전 해준 김치도 많은데 뭘 또 저리 챙기셨는지.

< 할머니의 손녀 생일 선물 >
< 이 반찬을 또 큰 통에 잔뜩 싸오신 어머님 >



우리 가족의 여행을 환영하듯 처음으로 가본 강릉의 하늘과 바다는 더없이 맑고 푸르렀고,

< 어머님, 행복하셨나요?^^ >


1년 만에 온 바다 여행에 제 마음도 푸르디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원피스 색상 만큼 자유롭고 시원해졌습니다.^^

< 다 좋은데 일찍 출발하느라 손질 못해 다 풀린 머리가 에러구나 >


행복했던 가족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차가 막혀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딸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 축하 풍선 장식을 한 후 10시가 넘어서야 케이크에 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평소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드는 딸이지만 차마 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풍선은 다행히 전날 다 불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교대 운전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남편은 딸과 함께 케이크를 사러 다녀왔고, 저는 혼자서 이 한 몸 부서져라~ 장식을 했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모습을 보고 손뼉 치면서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짓는 딸을 보니 피곤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미의 마음이겠죠?^^

<  딸아, 너의 8살 생일 행복했니? 그런데 풍선은 올해만 하자.^^ >




어머님,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바다 여행 행복하셨나요?^^
어머님의 깊고 크신 사랑,
말씀하지 않으셔도 다 느낄 수 있어요.
때론 두 딸들과 아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제게만 말하노라 하셨던 당신의 마음,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결혼 후 생각지도 못한
힘겨운 일들을 경험했던 제게
당신은 너무나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시며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 마음 잊지 않겠노라 말씀하셨죠..

제가 그날 문 앞에 놓여 있던 핸드 카트에 잔뜩 담긴
어머님 사랑의 흔적을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은
혹여나 그런 마음이 당신 가슴에 남아 있어
그랬던 건 아닐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런 마음이 아니고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해도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 주세요.
그냥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 돼요.
그것만으로도 전 충분합니다.

10년 후쯤 제가 우리에게 있었던 아픔을
내 인생에도 참으로 힘겨웠던 순간이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무사히 잘 넘겼노라고
이곳에도 아무렇지 않게 글을 써
누군가에게는 삶의 작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그때까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어머님은 제 인생에 있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인연입니다.
'사.랑.합.니.다~♥'


p.s. 어머님이 주신 냉면무 올해도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 어머님표 열무김치&냉면무로 만든 냉면 한 그릇 >




written by 초원의빛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Andre Gagnon님의 '바다 위의 피아노'

https://youtu.be/NxvWn1glY-c



Gabriel Faure님의 '시실리엔느(Sicilienne)'

https://youtu.be/U5Y0uQLgriA




작가의 신작 에세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대만과 베트남, 러시아와 중국 4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저자 인세의 절반은 취약계층에게 기부됩니다.)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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