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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레어 Jul 31. 2020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을 때  

화계사, 첫 템플 스테이 

화계사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화계사에 다녀왔다. 일주일동안 주어진 휴가. 코로나 때문에 더욱 정신없었던 지난 시간들을 이겨낸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코로나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활개를 치고 있기에, 2020년에 살고 있는 모두가 그렇듯이 내가 갈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것들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다각도로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은 '템플스테이'. 어느 절을 가야할 지 결정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예약 시기를 놓쳐버렸고, 화계사 관계자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후보지 안에 없던 화계사 만이 예약할 수 있는 유일한 절이었다. 화계사가 애초에 후보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자면, 북한산은 내게 너무 익숙한 산이라 조금이라도 다른 산, 자연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도 템플스테이를 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 화계사로 예약을 그대로 진행하였고 지금은 그때 그대로 진행을 추진했던 나를 격하게 칭찬한다. 


장마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운이 좋게도 내가 도착한 날에는 비가 걷혀 쨍한 햇빛이 화계사를 화려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도착해야 할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한 나는 방 배정을 먼저 받고 시간이 남아 미리 절을 돌아다녀 볼 수 있었는데 이 때 벌써 깨달았다. '오기 잘했다.' 신기하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답답하지 않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화창한 하늘과 울창한 나무들, 엄청난 더위에 등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머리가 상쾌해지는 느낌이 신선하고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시간을 고스라이 맞은 절의 기운에 기분 좋은 압도를 당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템플스테이를 함께 할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고 절 하는 법과 각 도량에 대해 알 수 있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몇 군데 절을 둘러보았을 때도 절의 대한 역사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 오리엔테이션이 특별했다. 도량 벽에 그냥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고, 순서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역사가 있었다. 일반인들은 도량의 가운데 문으로는 드나들지 않는다는 것과 그 이유, 왜 어떤 도량은 천장이 더 높은지 등. 모든 것 하나 하나 에 이유와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는 자율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정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보물로 지정된 동종을 타종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참여해보았다. 조선시대 만들어졌다는 내 몸보다도 훨씬 큰 종을 세 번 타종해보았고 종이 주는 큰 울림의 소리가 무척 좋아 잠시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밥. 공양 시간. 맛있다. 육식을 사랑하는 나도 참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고기가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가 있구나 또 한 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공양 시간이었다. 집에서도 누가 꾸준히 나물도 무쳐주고 과일도 깎아주면 좋겠다라는 게으른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방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다기가 한 켠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설거지가 귀찮은 나는 이용하지 않았다. 둘째 날 아침, 스님과의 차담 시간에 녹차를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그리고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이번 템플 스테이 일정 중에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아침 공양 후, 헉헉 거리며 구름 전망대에 올라 서울에 아침인사를 건넸다. 

차담을 위해 참가자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있으니 곧 인상 좋으신 주지스님께서 들어오셨다. 그런데 정말 알 수 없게도 주지스님이 웃으면서 들어오시는데 괜히 마음이 울컥해서 눈물을 꾹 참느라 혼이 났다. 안 울었기에 망정이지 차담 시작도 전에 눈물을 흘렸으면 그 민망함을 어떻게 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스님과의 차담은 참가자들과 질의 응답 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미리 익명으로 쪽지에 질문을 적어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다고 하여 전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적어 냈다. 


스님들도 운동을 하시나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체력, 체격 관리가 힘들어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일이 끝나면 너무 지쳐서 운동을 하고자 해도 시간도, 체력도 없네요. 

일이 점점 생활의 main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체력과 체격 관리가 힘들어지는 나이를 가진 참가자가 이 방 안에 없는데 이상하다며 웃으시던 주지 스님은 너무나 좋은 말씀을 무겁지 않고 또 차분하게 이어나가셨다. 


질문자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요즘 '워라밸'이라고 하는데 균형을 맞추며 살아야죠. 운동은, 재미가 없으니까 안하겠죠. 일처럼 생각하고, 관리를 위해 해야만 한다고만 생각하니까. 재미가 있으면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고 있을텐데.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저는 운동 안합니다. 하는 스님들도 있지요. 그런데 저는 딱히 돌 볼 처자식도 없고, 관리를 해야지 하면서 운동에 스트레스 받지 않습니다. 안합니다.

더울 때는 에어컨을 키고 시원함을 찾듯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야 겠죠. 요즘 젊은 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너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만 받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만한 일을 탐구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게 문제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난 항상 '균형'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 균형이라는 단어를 언급해서인지 스님께서도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며 말씀하신 것 같다. 또 익명으로 낸 저 질문에 답을 해주실 때, 희안하게도 나를 오랫동안 보면서 말씀하셨는데 내 눈빛이 너무 간절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참가자 중 나이가 제일 많아보여서 인건지는 모르겠다.


스님과의 차담을 마치고 방사를 정리하고 집으로 오며 모처럼 일찍 일어나 졸음은 쏟아졌지만 그래도 정신이 맑은 느낌이 기분 좋았다. 이 기분 좋음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 즐거운 일은 무엇일지 당분간 계속 탐구하고 고민해보겠다. 

화계사 이 곳 저 곳을 꼭 함께 돌아다니던 고양이 모녀 

요즘처럼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을 때 더욱 더 템플스테이가 소중하다. 

언젠가 코로나가 모두 사라지고 정말 멀리 떠날 수 있을 때가 되더라도, 

자신을 힘들게하는 것들로부터 잠시 떠나고 싶다면 꼭 멀리가 아니어도 

주변에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가까운 절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님, 고맙습니다. 

즐거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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