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끌레어 Feb 12. 2017

문과인 내가 사는 방법

어떤 박사의 배 아픈 논리

당장 돈이 급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아동심리연구소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 해서 면접을 보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주말이면 자녀들의 행동과 적성들을 파악하고자 찾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많았다. 그곳에서의 내 일은 검사를 진행하는 박사의 커피를 준비하는 것, 검사가 끝나면 검사결과를 확인해서 점수화하는 것, 예약상황을 정리하는 것 등의 업무였다.


나는 그 곳에서 단 하루 일했다. 아직도 생각하면 조금 분하다. 하지만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그 때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는 걸 보면 그 말들은 어느 면에서는 정확했고 그래서 상처가 되었다.


검사결과를 처음 점수화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박사가 말하기를, 내 전임자는 경제학을 전공해서 빠릿빠릿하고 계산이 빨랐는데 나는 문과라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름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고 서운했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논리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누가봐도 수수하고 평범해보이는 한 공무원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연구소를 찾았는데 부부의 아이큐도 150이 넘었고 검사 결과 그 아들 또한 영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공로를 인정하여 해외로 석사과정을 보내준다고 하는 상황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장 자신이 가게 되면 아들의 학습과 성장 과정에 큰 지장을 주리라는 당연한 '엄마'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박사는 그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업무가 끝나고 내게 물었다.

'너는 당연히 아까 그 엄마란 사람을 이해하겠지?'

당연히 그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사는 이어서 말했다. 아니,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저런 부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그런 기회를 날려보내는 것은 일생의 실수다. 그래서 나는 너 또한 이해할 수가 없다. 니가 왜 문과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수학과 과학 뿐이다. 문과를 선택해서 뭔가를 하려한다면 미친 듯 노력해야 하지만 너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너는 아마 여행도 좋아할거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 90%의 사람들이 그렇다. 큰 노력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가끔씩 여행가서 보상 받고자 하는거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고 그런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더 일할 건지는 니가 결정해라.'  


그 말을 듣고 나오는 순간 배가 뒤틀리듯 아파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독설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그곳에서 더 일할 수 없다고 연락을 했다. 충격적이었고, 자존심이 상했고, 창피했다.


몇 년이 지났고 가끔씩 그 박사란 사람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낫게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여행도 좋아한다. 아마 나는 아직도 그 박사가 싫어할 만한 사람일테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럴 것이다. 부디 세상은 그 박사가 좋아할만한 사람들이 지켜주길 바라고 문과의 나는 그저 내 하루하루가 행복하길 바라며 살겠다.


이게 나고, 이제 더 이상 배는 아프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데 잊지말아야 할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