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지 않아도 키우고 있어요

사랑 쌓기, 돌봄의 다른 이름은 성장

by 끌레어

이제 주변 대부분의 친구들과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아간다. 정말 나만 빼고.

처음에는 그런 풍경 속에서도 나는 괜찮다고,
그게 꼭 나의 삶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슬프거나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는 아이를 키우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을 새로 만나는 일도,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도
조금씩 귀찮고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대 후반을 바라보게 되면서
‘어쩌면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하게 됐다.

그 생각이 아프진 않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언가가 흔들리는 느낌은 있었다.

예전에 사주를 몇 번 보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었던 말이 있었다.

내 사주에는 아이가 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이 한동안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었는데,
이제 그 말은 단순한 오류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학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진심으로 마음을 쏟아 돌본다.
내가 밥을 해주고, 재워주며 키우는 건 아니지만
하루의 아주 큰 부분을,
이 아이들의 말과 표정과 감정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이건 또 다른 방식의 ‘키움’ 아닐까?
두 명이 아니라, 어쩌면 수십 명, 수백 명을.

물론 아이들과의 하루하루가 늘 아름답고 평화로운 건 아니다.

꽤 자주 지치고, 화도 나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감정을 눌러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덕분에 내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때가 많다.

얼마 전부터는 후원도 시작했다.
‘사주에 두 명이라 했으니, 두 명만큼 후원해 보자’며
아주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날 또 다른 아이의 사연이 눈에 밟혀
지금은 세 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고,
아이들이 어딘가에서 잘 자라고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꼭 내 몸으로 낳지 않아도,
나도 누군가를 키우고 있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를 돌보고,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내 삶의 방향을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

나는 내가 좀 대견하다!

내일도 대견하고 기특한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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