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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cm 중에 내가 제일 차밍해.

보여지는 몸 말고 기능하는 몸으로 마주하기

by 망원동 바히네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신 것 같던데."


아마도 거의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이 대번 잘 지내냐는 인사 뒤에 건넨 말이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터라 몇 년 동안 별 다른 안부를 물어본 일도 없었지만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에서 좋았던 순간이 언제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이였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물어보고자 겸사겸사 잘 지내냐고, 아이들은 잘 크냐고 안부를 건네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당황스러웠다.


'원래의 몸'이라고 하면 다이어트 전의 몸을 말하는 것일 테다. 4년 전쯤 나는 지금보다 훨씬 무게가 덜 나가는 몸이었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먹으면 먹는 대로 성실하게 찌는 체질인지라 내 몸은 한 번도 마른 적이 없었다. 4년 전 다이어트를 하기 직전에는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를 핑계로 폭식을 일삼은 탓에 평소보다도 살이 더 쪄있었다. 살만 찐 것이 아니라 호르몬 불균형이 심해져 여기저기 몸이 고장나버렸다. 게다가 디스크까지 가진 않았지만 꽤나 심각한 거북목이 편두통을 유발했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까지 갔다.


나는 이러다간 큰돈이 들겠다(그렇다. 제일 먼저 든 걱정은 돈 걱정.)싶어 도수치료를 받으러 갔다. 회당 12만 원. 병원에서 마사지를 받고 큰돈을 내는 기분이었다.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결국 뼈 건강은 내 근육을 만듦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네 필라테스 센터에 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1 레슨을 20회 결제했다. 매우 큰돈이었지만, 회당으로 따지면 도수치료보다 훨씬 저렴한 편이었다. 그날부터 시작해 나는 필라테스를 주 2회 하면서 식단관리에 들어갔다. 워낙 야채를 좋아했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맛있고 건강한 채소 요리로 식단을 바꾸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처음 야식(특히 너구리)을 끊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서서히 줄여갔다. 너무 라면이 먹고 싶을 땐 반개를 끓여 먹었다. 약 7개월에 걸쳐 10kg 정도를 감량했다.


키가 작은 편이라 10kg이 빠지면 변화가 더 눈에 띄는 편이다. 주변 사람들은 내 몸에 대해 많은 말을 쏟아냈다. "너무 예뻐졌다" "비결이 뭐냐" "식단을 알려달라" "옷 입는 재미가 있겠다" 등 다양했다. 인생에서 세 번째 시도한 다이어트였는데, 특별히 어떤 목표점을 두고 감량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선 몸이 가볍고 머리가 아프지 않고, 골반 불균형 때문에 길을 걷다 넘어지는 일이 많았는데 이것이 없어져서 기뻤다. 그런데, 내 몸이 '날씬해져서' 기쁜 마음은 생각보다 덜했다.

"나는 살 빼고 나서 별로 좋지도 않아." 후배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왜요. 옷도 예쁜 거 마음대로 입고 좋잖아요."

"그런가?..."

그런데, 그뿐이었다. 20대에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처럼 기쁘지도 않았다. 그냥 몸은 몸일 뿐이라는 게 드디어 내재화되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 후로 나는 회사를 옮기고, 적응해보겠다는 핑계로 잦은 회식을 가졌고, 한번 풀린 고삐는 조여지지 않아 다시 지금의 몸이 되었다. 이전보다 8kg 정도 쪘다. (사실 정확하지 않다. 나는 체중을 잘 재지 않는다.) 대신 거북목도 없고 길을 걷다 넘어지지 않는다. 올해 두 차례의 수술을 겪었지만, 완전히 회복했고 문제가 되었던 것들을 제거하고 나니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 무엇보다 악성빈혈이 정상이 되고 나니 삶에 의욕이 생겼고, 유산소 운동에 무리가 없었으며, 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쉬는 동안 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신 것 같던데"라는 무례한 말에 타격도 없다.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몇 년의 기간 동안 내가 살이 찌는지 빠지는지를 관찰하고 있었던 그분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내가 대단한 '탈코르셋'을 하거나 '바디 포지티브'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몸이 누군가에게 또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따른 내 시선에 '예쁘게'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은 이제 하지 않게 되었다.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팻캐스트 진행자 곽민지 님이 늘 하는 말 "ㅇㅇ kg 중에 내가 제일 차밍해"가 정답이다. 악동뮤지션 수현도 그러더라고, "아! 살이 찐 내 모습은 이렇구나!"하고 생각한다고. 아직 '보이기에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시선으로만 몸을 대상화하고 있는 이들에게 구태여 권하거나 강요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나는 보이는 몸에 더해 기능하는 몸을 탐구하고 있고, 이 편이 훨씬 합리적이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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