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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20. 2022

유튜브 중독자는 유튜브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피드에 어떤 콘텐츠가 뜨느냐는 매우 중요하니까...

 나는 미디어에 약하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유튜브나 TV에서 누가 뭘 먹고 있으면 꼭 며칠 내에 같은 메뉴를 먹곤 했다. 특히 라면이나 피자 같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이라면 더욱 그랬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먹방과 쿡방 채널들을 정리했다. 아직까지도 몇 개의 채널은 구독하고 있는데, 동물을 사용해 요리하긴 하지만 '쿡방'의 콘텐츠를 보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몇 개의 채널만 남겨두었다. 


 그다음으로 구독을 취소한 채널들은 패션채널이다. 명품 하울 같은 것들을 하는 채널은 애초에 구독하지 않았었지만, 뭔가 그럴싸하게 가지고 있는 아이템으로 잘 코디하는 방법이라던지, 5만 원-10만 원 사이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추천하는 콘텐츠들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구독했었다. '머스트 해브'라는 건 세상에 없는데도 말이다. 


 옷을 사는 행위는 나에게 먹는 일만큼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발작 같은 일이었다.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먹은 음식들이 결국 내 몸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게 되고 식습관을 바꾸게 되었는데, 옷을 사는 행위 또한 내 정신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도, 오히려 나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그 보다 조금 더 더디고 약하게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한창 옷을 '사재낄'때의 나는 큰 쇼핑몰을 지하에 둔 건물에서 일을 했었다. 점심시간에는 옷가게를 지나 점심을 사러 갔고, 퇴근은 옷가게들을 지나 지하철을 타고 했다. 자라, H&M, 앤아더스토리즈, 마시모듀티 등 패스트패션 매장이 줄을 지어 있었고, 나와 당시의 동료들(100% 여성)은 화가 난다는 이유로, 기운이 없다는 핑계로, 월급을 받았다는 기념으로 매일같이 옷가게들을 드나들었다. 몇 년을 그러고 나니 눈은 점점 높아져 패스트 패션이 아닌 고가의 브랜들을 모아서 판매하는 편집샵을 드나들게 되었고, 이 가게의 샵마스터와 쿵짝을 맞추며 매일같이 그 가게에서 차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으며 옷을 구매했다. 이 시기에는 고가의 제품들을 직구로도 곧잘 구매하기도 했다. 


 이런 나의 행동에 제동이 걸린 것은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였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고, 옷을 사겠다고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게 되었다. 옷을 입을 일이 적어져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옷을 입을 일이 많아서 옷을 사는 것은 아니었기도 하다. 거리두기가 한참 심할 때도 두 번쯤 편집샵에 가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옷을 사기도 했었으니까. 


 반 강제적으로 쇼핑을 줄이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쇼핑을 하지 않고도 잘만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이 시기에는 옷을 사는 대신 식료품을 사서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재미로 스트레스를 풀긴 했었지만, 전반적으로 '재택근무'가 썩 적성에 맞았던 나는 여행이나 쇼핑이 스트레스를 풀어주긴 커녕 오히려 내 불안과 우울을 알게 모르게 더 강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리테일 테라피(Retail therapy)는 즉각적인 증상을 무뎌지게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점차 악화시키는 놈이었던 것이다. 코로나 이후 내가 산 옷의 가짓수는 그 이전에 비해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같다. 


 작년부터는 채식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이나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렇고 미디어를 통해 만난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지구에 덜 해가 가는 방법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건강을 목적으로 채식을 시작했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이슈에는 비교적 (아주 많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작작 하자'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니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다. 샤워에 필요한 용품들이나 기초화장품을 리필샵에서 내용물만 구매해오기 시작했고, 장바구니에 천 주머니들을 넣고 나가 시장에서 비닐봉지 없이 장을 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플라스틱 랩 같은 일회용품을 쓸 때가 있지만 이 또한 이십 분의 일 정도로 빈도가 줄어들었다. 지금 있는 랩을 다 쓰고 나면 물티슈처럼 아예 구매하지 않을 생각이다. 빨래를 건조기에 말리는 일은 아직까지 포기하기가 어렵다. 


 내가 예전에 비해 물건을 많이 사지 않고 몇 가지라도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간 열심히 바꿔둔 '구독 리스트' 덕분일지도 모른다. 물론 매일 나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지인들도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본 유튜브 콘텐츠들이 이전에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바뀐 삶의 방식도 '콘텐츠 따라 강남'을 가고 있는 형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에 놀아나는 모양이 썩 멋있진 않아 보여도, 나는 현대의 알고리듬이 타깃으로 하기에 적절한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냥 알고리듬을 십분 이용하기로 했다. 채식 콘텐츠 외에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은 아주 오랫동안 '에코 미니멀리스트'로 살아온 젊은 두 여성의 채널이다. (Shelbizleee & sustainablyvegan ) 비교적 오랫동안 (약 10년 넘게) '에코 미니멀리스트'로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 간의 실패담과 실수들을 같이 보여주는 것도 이 채널들을 구독하게 된 이유다. 보통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많은 콘텐츠들이 하얗고 예쁜 집에서 비현실적으로 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데, 결국 이런 콘텐츠는 집에 멀쩡히 쓰고 있던 제품을 버리고 예쁜 친환경 제품 같은 것들을 사게 만드는 것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반면 이 두 명의 유튜버들은 오랜 기간 동안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두는 방법을 보여준다. 물건이 필요할 때는 최대한 중고 물건을 구매하고,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물건은 꼭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습관이 내가 가장 배워야 하는 점인 것 같다. 이들의 습관 중에는 '유튜브 용 그림'이 아닌 것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 머리끈을 산 적이 없다는 것도 그중 하나. 왜냐면 길거리에 늘 누가 떨어트린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그간 샀던 머리끈과 실핀의 개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두 유튜버의 콘텐츠 중에 아쉬운 점은 둘 다 정원을 가진 집에서 살아서 많은 야채와 허브를 길러먹는다는 점이었다. 샴페인마저도 로컬 샴페인을 구매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수입 식료품(파스타, 토마토파사타, 올리브유 등등)을 꾸준히 사 먹는 나는 이런 점이 조금 비현실적이고 부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둘 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업이라 삼시세끼를 집에서 (기른 야채를 활용해서) 잘해 먹는데, 대부분의 그렇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허탈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운 작물이 아닌 식재료는 근처 마트에서 구매하는데, 엄청 큰 규모의 마트이지만 모든 야채와 과일은 플라스틱 포장이 없고 (각자 가져간 천 주머니에 담아서 구매), 곡물이나 시즈닝 등등은 모두 그램 단위로 판매하고 있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간 용기에 담아온다. 알맹 상점과 망원시장을 이용하곤 있지만 시장 물건마저도 이미 다 비닐봉지에 싸인 것들을 사야 하는 것과 괴리가 있었다. 


 지속가능성이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다룬 Sustainablyvegan의 콘텐츠도 매우 흥미롭게 봤다. 비거니즘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지속가능성에 대한 실천 행동이 실제로 젠더 차이를 보인다는 여러 연구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미국인의 경우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거나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답변자의 90%)과 실제로 밤에 컴퓨터를 끈다던지 하는 행동(3%)으로 이어지지 않는 갭이 크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노트북을 덮어두기만 하고 절대 끄지 않는 내 얘기'라며 뜨끔 하기도 하고... 


 아무튼 친구 따라 어딜 가더라도 좋은 델 가면 좋으니까, 소비지향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아닌 좋은 자극을 주는 콘텐츠로 채워보고 싶다면, 거기에 영어공부하고 싶다면...(!!) 두 유튜버를 팔로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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