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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01. 2022

네이버 지도 앱 별을 지우며

모쪼록 무기력하고 억울한 날들의 향연

 네이버 지도에 별표로 저장된 곳이 몇 군데나 있는지 확인한 것은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별이 만개쯤 됐다.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언젠가 가보고 싶은 지방의 예쁜 곳들과 맛있는 집들, 카페들, 명소들도 많았다. 예전에는 일 때문에 늘 사람들을 만나야 했기도 하고, 새로 생기거나 맛있다고 소문난 곳들은 꼭 들러 먹어보는 것이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굳게 믿어왔기에 일단 가보고 맛있었던 곳이거나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들은 모조리 저장해두기 바빴다. 그 수만은 별들 중 가본 곳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이 별을 언젠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별 중 90% 정도가 육식을 해야지만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어느 장소에 가서 주변에 맛있는 곳이 어디 있나 찾아볼 때라던지, 누구를 만나기로 하면 장소를 정하면서 그 지역에 갈 곳들을 찾아보는데 쓰는 것이 이 네이버 지도의 별 저장 기능이었다. 요즘은 대부분 어딜 가서 지도 앱을 켜면 그 별들이 제기능을 잘 못하게 됐다. 오히려 새롭게 저장한 곳들과 구분이 어려워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과감하게 전체 저장 목록을 지워버렸다. 


 비건 인구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늘어가는데 반해 여전히 외식은 쉽지 않다. 서울 내에서는 단위면적당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이 가장 많은 동네 중 한 군데에 살고 있긴 하지만, 동네를 벗어나면 딱히 가고 싶은 곳이 별로 없다. 대체육을 많이 쓰거나 너무 기름진 곳, 그냥 맛이 없는 곳들을 제외하고 나면 선택지가 별로 없다. 예전에도 자주 갔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마리나라 피자를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 서울을 벗어나면 상황은 더욱 심해진다. 주로 손두부집이나 비빔밥집, 청국장을 파는 곳에 간다. 


 최근엔 이렇게 비건 식당이나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을 찾는 행위 자체가 몹시 지치기도 했다. 핸드폰을 열어서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등으로 검색을 하는 행위 자체는 채식을 하기 전과 같은데 뭔가 더 진이 빠진다. 채식 옵션을 찾다가 지치거나, 채식이 아닌 음식이 먹고 싶은 날, 자의든 타의든 채식이 아닌 음식을 먹었을 때 예전처럼 맛이 없다. 분명 아는 맛이라서 먹었는데, 별 감동도 재미도 흥미도 없어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라면도 요즘은 예전만큼 맛이 없고 (그래도 종종 먹긴 하지만!), 어쩌다 닭강정을 먹었는데 맛이 없어 처치 곤란이 되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정크 푸드를 먹어야지!'라고 비장하게 마음먹고 편의점에 갔지만 편의점을 몇 바퀴를 돌고 돌아 손에 쥔 것은 논알코올 맥주 한 캔과 꼬깔콘이었다. 비장하게 먹은 마음이 머쓱해졌다가 이내 화가 났다. 신나게 꼬깔콘을 먹은 다음 날, 어김없이 속이 불편했다. 


'채식하기 전엔 매일 같이 정크푸드를 먹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한 번 과자를 먹었다고 바로 속이 불편할 일인가? 이게 진짜 건강해지는 길이 맞는 거야?'


 예전에 다쳤던 어깨의 치료를 게을리하다가 몇 주 전 '찌릿!' 하는 번개 같은 통증을 느낀 뒤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지금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팔을 쓰는 게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고 하니, 싫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핸드폰을 드는 것도, 무거운 걸 드는 것도, 누워서 책을 들고 보는 것도 다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집에서 품이 많이 드는 요리를 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무거운 걸 짊어지고 오기 어려우니 장을 보는 재미도 없다. 비가 많이 와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니 더욱 먹는 일이 불편하고 고단하게 느껴진다. 전자레인지에 대운 두부와 오븐에 구운 구황작물로 강제 자연식물식을 하는 날이 늘다가, 이것도 귀찮아지는 날 라면을 먹기도 했다.


 몇 주 전 짧은 여행겸 다녀온 행사에서 경험한 일도 '채식 무기력'에 한몫을 더했다. 식사가 포함된 행사를 예약하기 전, 주최 측과 쉐프에게 비건식 준비가 가능하다는 확인을 받고 예약을 했지만, 환불불가 기간이자 행사 이틀 전 '비건식 요청이 두 분 밖에 없으니 양해를 해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비건식으로 따로 준비해주긴 했지만 행사 중에도 '비건 선생님들'이라고 우리를 지칭한다던지 공개적으로 '급하게 비건식을 요청했다'는 얘기를 참여자들 앞에서 하는 일 등은 나를 계속 불편하게 했다. 행사 시작 2주도 전부터 여러 차례 채식 옵션 가능 여부를 확인했었는데 행사 이틀 전 무리한 요구를 한 유난한 채식인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기분이었다. 해당 행사가 자연농법으로 작물을 기르는 농부들을 중심으로 하는 제로웨이스트 행사라는 점에서 기대를 했던 탓에 상처가 더 컸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채식을 하기 전에도 어디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실 것인지 정하는 일은 즐거운 기대감인만큼이나 큰 스트레스였다. 많은 경우 내가 '모셔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장소를 정해야 했으므로 상대가 만족할만한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김영란법이 적용된 이후에는 음식 가격을 꼼꼼히 따져야 했기 때문이다. 치아가 좋지 않은 사람과 함께 가야 할 경우 부드러운 음식을 파는 곳을 예약해야 했고, 회를 먹는지 여부도 늘 사전에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런 습관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내 기질이 원래 그런 것인지 항상 같이 가는 사람들을 만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배려가 아닌 부담과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는 아무 영문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혼자서 상대를 만족시키려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채식을 한 뒤에도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경우, 상대도 나도 모두 만족할만한 장소를 물색해야 했으므로 만나러 나가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것이다. 스스로가 모든 것을 비건 탓으로 돌리는 '비건 라벨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많이 풀었다. 채식을 자연식물식에 가깝게 하려는 노력을 한 뒤로 이런 나쁜 습관이 거의 없어졌다. 파이토케미컬을 충분히 섭취하고 인공향료나 첨가물을 적게 먹다 보니 음식에 대한 집착이 줄었다. 몸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몸은 더 이상의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들지 않는다고 한다. 채식을 시작하고 난 뒤 가장 좋은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채식 전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특히 정크푸드들이 그때만큼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일지도 모른다. 짭조롬하게 삶은 찰옥수수는 늘 먹고 싶지만 과거 나의 스트레스 풀이용 음식이었던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들은 잘 생각이 안 난다. 편의점을 몇 바퀴를 돌고 나서 꼬깔콘을 겨우 사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당장은 '이 무기력을 오늘 안에 해결하겠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근처 고깃집에서 고기를 사 먹거나, 치즈가 듬뿍 들어간 라자냐를 사 먹을 것인가?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채식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상담을 하며 이런 얘기를 했고, 표면에 있는 '채식인이라 억울하고 힘들어'라는 감정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떠오르는 감정에는 항상 뿌리가 있다.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안 들여다 보고 그냥 침이나 한번 퉤! 하고 뱉어버리면 편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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