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원동 바히네 Jun 21. 2022

하지에 쓰는 바다에 대한 글

내가 왜 바다를 좋아했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워만 지낸 요 며칠, <우리들의 블루스>를 단숨에 다 봐버렸다. 등장인물 모두의 서사가 이해되지 않는 것 하나 없고, 대단히 현실적인 상황과 대사를 반영하면서도 전체의 그림이 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인 '노희경 작품'. 중간에 패싸움을 해서 피를 흘리는 장면들을 건너뛰며 봤다 하더라도 족히 열 시간은 넘게 붙들고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물 콧물을 다 짜냈다.  


 제주도 작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등장인물의 삶은 모두 바다에 의존적이다. 해녀들은 목숨을 걸고 전복, 성게, 소라와 미역을 따고, 배로 해녀들을 싣고 바다로 나가는 선장, 생선을 경매로 사서 파는 생선가게 주인 등. 바다는 그들에게 삶의 터진이기도, 욕심을 털끝만큼만 더 내고 덤벼들었다간 죽음으로 이어지는 곳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 쌍둥이 언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 언니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 그래서 지하철에 버리고 온 과거의 죄책감이 무겁게 삶을 짓누르는 영옥에겐 바다는 찰나의 고독과 자유의 공간이었다. 바다에선 아무도 없이 혼자일 수 있어서 바다가 좋다는 영옥은 결국 바다에 의지해 사는 삶 안에서 연결되고, 연결됨 안에서 자유를 찾는다.  

 

 여름에 바다를 낀 곳에서 태어나 그런지 어릴 때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땡볕에 몸을 말리는 일, 아무 생각 없이 물에 둥둥 떠 있는 일, 바다에서만 성가시지 않은 모래 위에 누워 있는 일 모두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런 장면들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아낸 작품을 집에 들이기도 했다. 거실엔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 찍은 두 개의 사진작품을 두었고, 안방엔 카프리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작품을 두었다. 모아 두고 보니 핸드폰 배경화면은 몇 년째 이탈리아 갈리폴리 근처에서 찍은 사람들과 바다의 풍경이다. 바다의 풍광만을 담는 것보다 사람들이 그 풍광에 어우러져있는 사진이다. 


 작년 여름엔 엄청난 인파를 뚫고 '요시고 사진전'을 보러 가기도 했다. 건축물이나 바다가 아닌 풍광의 사진들도 있었지만, 역시나 가장 유명하고 내 취향이었던 것은 바다에 사람들이 어우러진 사진이었다. 월리를 찾는 것도 아닌데 점처럼 작은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보고 있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찍은 바닷가의 사진이나 집에 둔 작품들, 요시고의 작품들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애매하게 비현실적인 무드가 담겨있다.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이 현실적인 인구집단 표본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그 옆엔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할머니가 꽃무늬 수영복을 입고 앉아있다. 어린애들은 모래를 연신 파며 놀고 있고, 젊은 남녀들은 재각각 사랑이나 우정을 나누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사진 속엔 틱톡을 찍는 사람도 없고, 인스타 업로드용 셀카를 찍으려고 연신 어색한 포즈를 취하는 사람도 없다. 나온 배를 감추려 더운 옷을 입은 사람도 없고, 우는 애 등짝을 때리는 부모도 없다. 바삭바삭하게 타는 태양볕에 다들 다양한 모습의 몸을 드러내고 조용히 바다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파라솔은 제각각이지만 '코카콜라' '칠성사이다'같은 자본주의가 없다.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순간을 포착해서 잘 다듬어 출력되는 것이므로. 실제로 유명 관광지의 해변은 절대로 사진 속의 모습과 다르다. 아마도 이게 '현실적인' 바다의 풍경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관광지가 아닌 조용한 해안으로 가면 사진과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옆에 누가 있던 말건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인구분포를 잘 반영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무튼 다 같이 '우리는 여기 좋은 시간을 보내러 온 것이니 굳 바이브 온리...!'라며 약속이나 한 것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이 비현실적이고도 현실적인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리려고 하는 사람은 나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요시고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옴.


 오늘은 하지. 낮이 가장 긴 날이라 그런지 오전부터 벌써 덥기 시작한다. 태양볕에 짠물을 말리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한국은 우기를 맞았다. 6월부터 시작된 장마라니. 장마의 시작 시점도, 누가 바다를 어떻게 즐기는지도 절대적인 게 없다. 해수욕을 즐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바람조차 힘겨워질지도 모르겠다. '할미가 젊었을 때는 다른 나라에서 물 건너온 재료들로 막 국수를 만들어 먹곤 했단다'라며 밀웜바를 배급받아먹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우스갯소리가 또 정상성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레바퀴를 매일 굴려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