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흰머리가 솟아났다.
시력이 적당히 나쁜 탓에 집에서 생활할 때는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 안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불편함이 없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한다던지 하는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에 내가 거울을 볼 때라곤 양치를 하는 시간과 머리를 말리는 시간뿐이다. 기초 화장품을 바르는 시간도 지겨워서 대충 얼굴에 크림을 덜어 올리고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문지른다.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머리에 흰머리가 왕창 나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 년쯤 전이었다. 세 달 사이에 두 번이나 전신마취 수술을 받으며 온 몸에 전원을 껐다 켠 것이 충격을 적잖이 받았던 것일까. 원형탈모처럼 '원형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뒤통수에 났더라면 아직까지도 몰랐을 텐데 하필이면 앞머리에 뭉텅 흰머리가 나는 바람에 그나마 알아챘다. 수술을 하기 전에도 간혹 정수리며 옆머리에 한 두 개씩 새치가 돋아나 미용실 실장님이 잘라주거나 친절한 친구들이 '뽑을까? 놔둘까?'라고 물어봐주었다. 그때부터 차곡히 나기 시작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급작스러운 두 번의 수술에 지친 몸이 힘들다고 말을 걸고 있는데 내가 뒤늦게 알아차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욱더 염색약 따위를 내 몸에 바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솟아난 흰머리를 염색으로 덮어버리겠다는 옵션은 애초에 없었다.
검색창에 염색약, 여성, 호르몬을 검색하면 무서운 기사들이 주르륵 나온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속지 않으려고 좀 더 깊게 들여다보더라도, 염색약을 내 두피에 바르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작년에 한창 여성호르몬 질환에 대해서 파고들었을 때 깨달은 것은, 화장품이나 향수, 머리에 바르는 제품들, 염색약 등이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는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이 위험성에 대해 너무 적게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즘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모든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훌륭한 산부인과 의사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잘 알려진 TV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여성호르몬 질환이나 생리통 등이 식습관 및 플라스틱 사용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요인은 조금이라도 알려진 것 같다. 그러나 화장품, 향수 등 소위 '뷰티 제품'이 호르몬 교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아직까진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나 여기 흰머리 너무 많지?"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해서 애인을 난감하게 만든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냥 이런 이상한 질문들을 종종 할 때가 있다. 사실대로 '응! 되게 많다!' 하면 분명 기분이 상할 것 같고, 그렇다고 '아니? 하나도 없는데?'라고 거짓말을 하면 또 그건 그거대로 '난감한 상황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한다'며 뾰루퉁할거면서 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애인은 이 말을 자주 한다. 흰머리가 많이 있냐는 Yes or No의 객관식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주관식으로 답을 함으로써 난감한 상황을 피해 가는 것이다. '흰머리가 있어도 내 머리에 있는 것이니 넌 아무렇지 않은 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꽤나 영특한 대답이라고 감탄한다.
강경화 전 장관의 백발 덕분에 여성의 백발이 '멋있음'의 상징으로 소구 되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강경화 전 장관 나이쯤에야 되어야 말이지 30대에 띄엄띄엄 솟아난 흰머리가 '멋있음'의 상징이 아니니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 강경화 전 장관의 또래 거나 그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도 같은 '현타'를 느낄지도 모른다. 똑같이 머리가 하얗더라도 외교부 장관씩이나 하는, 날씬하고 양복 입은 여자니까 멋있지 현실의 중년 여성에게 백발이기 때문에 더 멋있다는 소리는 아무도 안 하니까 말이다.
삼십 대 중반. 생각해보면 엄마도 내 나이에 흰머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린 나는 소파에 앉아 바닥에 앉은 엄마의 머리를 샅샅이 뒤지며 흰머리를 모조리 뽑았다. 흰머리 하나당 50원을 받기로 엄마와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와 달리 머리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머리숱이 많은 사람이라 생기는 족족 흰머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용돈을 받아 새콤달콤과 형광펜을 살 생각에 신나게 흰머리를 뽑았다. 소파 한켠에 잔뜩 모아둔 흰머리가 어느 정도 쌓이면 나는 하나씩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엄마, 30개 뽑았다! 앗싸, 1,500원!"
나는 여느 날처럼 엄마에게 뽑은 개수만큼 용돈을 요구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엄마는 나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직도 나는 그날 엄마가 왜 나에게 그렇게 불같이 화를 냈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나는 평소처럼 엄마와 약속한 대로 흰머리를 뽑고 이에 상응하는 용돈을 요구한 것인데, 그날은 무엇이 엄마를 자극했던 것일까. 아무튼 나는 용돈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잔뜩 혼이 난 채로 방에 들어가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어린날의 기억들은 가끔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슬퍼진다던지 괴로워진다던지 하는 건 아닌데 그냥 왜 이런 기억이 뜬금없이 올라오는 것인지 늘 궁금하다. 최근엔 이런 기억들이 올라올 때면 엄마는 그때 심리상담도 받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처럼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자가 체크리스트'를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유튜브 같은 SNS 채널에 콘텐츠가 넘쳐나며 서점만 가도 전문가부터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이 써놓은 책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때가 아니었으니까. '누구네 집 누구가 정신병원에 다닌대'같은 이야기가 돌면 어김없이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때였으니까. 엄마는 혼란하고 우울한 감정을 혼자서 감당해냈어야 했고,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나에게 -그것이 아빠가 아니었던 것이 지금의 엄마와 나의 관계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쏟아낸 일이 많았다. 나는 언제나 영문을 모르고 엄마의 감정 폭탄에 맞아야만 했다. 나를 거쳐간 몇 명의 상담 선생님이 말하는 것처럼 그때의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내면 아이를 위로하고 뭐 그런 것들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그냥 '엄마는 도대체 왜!'같은 반복되는 원망에서 '엄마는 그때 외롭게 우울을 감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추측만을 해볼 뿐이다.
신기하게도 나의 '원형 흰머리'는 반쯤 다시 까만 머리로 돌아왔다. 100%의 회복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갑자기 새하얗게 변했던 머리가 다시 대충 희끗한 머리로 돌아온 것이 참 신기하다. '염색을 해? 말아?' 하는 생각이 요즘도 가끔 들긴 하는데 그 고민이 삼분을 못 넘는다. '왜 염색을 하려 하지? 왜 흰머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라고 되물으면 그 답이 나온다. 늙는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늙은 여자는 자기 관리가 잘 안 된 것이라거나 머리가 희끗한 여성은 매력이 없다거나 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염색으로 흰머리를 감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나는 굳이 해로운 염색약을 1년에 3-4번씩 머리에 바르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심이 선다.
예전에 일하며 만난 '어르신' 중 한 분은 늘 단정한 외모에 어울리는 신사다운 태도로 모든 사람들을 대했다. 나는 그의 인품에 적잖이 반해 늘 그를 '가장 좋아하는 어른'으로 꼽았다. 그분을 안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분은 '나는 염색 안 하면 정말 100% 백발이야!'라고 고백했다. 정말 새까만 머리를 늘 단정히 빗고 다니셨던 터라 그가 백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왜 염색하세요? 요즘은 백발이 대세인데!'라고 물었다.
"내가 백발로 다니면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어려워할 것 같아서. 머리라도 까맣게 하고 다녀야 사람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한다고 해도 머리가 새하얀 양복 입은 할아버지는 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물론 그는 직급도 너무 높고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나이도 몹시 많았으며,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권위적이라거나 어려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반대로 그렇게 나이가 많고 높으신 분이 단 한 번도 내가 말하는 것을 중간에 자른 적이 없고, 여러 사람들이 있으면 꼭 '모모 차장은 어떻게 생각해?'하고 내 의견을 물어봐주는 것에 늘 감탄했었다. 그에게 흰머리를 가리는 일은 '나이보다 젊은 외모를 가지고 싶은 욕구'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까만 머리 사이에 반짝하고 빛나는 머리가 늘었다 줄었다 하다 점차 늘어간다. 까만 밤하늘의 반짝거리는 별은 굳이 찾아가서 보면서, 까만 흰머리는 뽑거나 가리거나 하는 걸까. 검고 아름다운 머릿결과 탄탄한 피부, 바싹 올라붙은 엉덩이와 가슴이 '자기 관리'라며 사람들을 현혹해 정작 내 몸을 망치는 제품을 팔고 있는 산업계는 말이 없다. 늘 새까맣게 염색한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다니던 그 어른의 그릇만 한 자기 관리도 없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