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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Aug 08. 2022

1인 가구, 식재료 사수법

냉장고 열고 '헉!' 하는 경험 이제 그만하고 싶어서요...

 대학교 때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 위한 '살림'도 함께 시작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마트나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사다가 처음으로 이것저것 해 먹어 보기도 하고,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벅벅 닦아가며 집을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늘 살림보다는 밖에 나가 노는 일에 열중하던 20대였기 때문에 이런 내 노력은 며칠 가지 못했고, 주방이며 방바닥, 옷가지들은 귀신같이 내 무관심을 알아채고 망가졌다. 제일 곤란했던 것은 딸기 같은 과일에 그 예쁜 색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회색 곰팡이가 창궐해버리는 그런 경험이었다. 분명 한 삼, 사일 전에 산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빨리 상해버렸지?라고 속상해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 경험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아침에 나가 밤 10시나 되어야 들어오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집에서 뭘 해 먹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야채 같은 것은 들여놓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나마 주말에 한, 두 끼라도 해 먹으려고 배달시켜둔 식재료는 반도 쓰지 못한 채 그다음 주가 되면 폐기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사는 일도, 버리는 일도 환경 파괴까지 가지도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너무 고단한 일이었다. 주로 새벽 배송으로 배달시킨 식재료는 내용물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많이 버려야 했고, 이에 더해 상한 음식물을 버리기 위해 또 플라스틱 봉투를 써야 했다. 무엇보다 그 상한 음식물 냄새를 맡는 일이며, 상한 몰골을 보는 일이며, 상한 음식물을 버리고 나서 냉장고며, 용기를 평소보다 훨씬 더 신경 써서 닦아야 하는 일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한창 바쁜 때 몇 주 연속 야근과 주말출근을 연이어하고 나면 냉장고를 여는 일이 두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이 이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도, 의지도, 체력도 없었다. 


 코로나 이후로 재택을 시작하면서 거의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 먹게 되고, 그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채식을 시작하면서 외식을 대폭 줄이고 나니 과거의 구매와 폐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고리를 끊게 되었다. 특히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게 됐고, 이후 더 신경 써서 식재료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고기와 유제품, 난류를 사지 않고 최대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니 식재료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폭 줄었다. 여전히 먹어보고 싶은 '신상' 가공식품이나 시장에 팔지 않는 물 건너온 제품을 택배로 구매하긴 하지만, 거의 모든 장을 배송으로 해결하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지금까지 습관화된 나의 팁이라면 팁들은 아래와 같다. 


 1.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물론 예전엔 정말 일이 바빴고, 요리를 해먹을 시간도, 식재료를 잘 관리할 시간도, 장을 보러 가서 직접 사 올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주말에 잠시라도 짬이 나면 밖에 나가 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갔다. 주말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꽉 찬 일정이 있거나, 그런 일정이 없다면 밀린 잠을 잤다. 이 패턴을 수정해야 한다. 주말 중 하루를 선택하고 그중 반나절을 정해 다음 주에 먹을 것들을 준비하고 집안 청소와 빨래를 포함한 살림을 한다. 밀프렙까지는 아니더라도 구매한 식재료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잘 정리해서 넣는 시간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여기 걸리는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쯤 된다고 하더라도, 투자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  과일, 야채의 보관 방법을 잘 알아둔다. 

 각 식재료별로 잘 보관방법에 따라먹을 수 있는 기간이 대폭 늘어난다. 어디서 구매한 어떤 제품이냐도 물론 중요하다. 체감상 마트에서 구매한 플라스틱 랩에 싸여있는 제품은 보관 기간이 매우 짧다. 반면, 마르쉐에서 구매한 작물들은 정말 오래간다. 장이 서는 날 아침, 또는 그 전날 오후에 수확해 오는 탓도 있고, 자연농법으로 길러진 작물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일단 수확한 지 오래되지 않은 작물을 잘 구매해 집으로 가지고 온 다음 '프라임타임'을 잘 지켜 작물별 보관법을 잘 따라 보관한다.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낮잠을 자거나 외출을 하면 안 된다. 일단 냉장고에 때려 넣고 '내일 하지 뭐'라고 생각하면 또 며칠이 흘러 상하기 쉽다. 

잎채소류는 '키친 크로스'나 '소창 수건'에 싸서 밀폐용기에 넣어 보관한다. 3일 내에 다 먹을 예정이라면 씻어서 다듬은 다음 물기를 '완전히' 제거해 수건에 싸서 밀폐용기에 넣어 보관한다. 2주 이상을 목표로 한다면, 씻지 않는 편이 낫다. 중요한 것은 잎채소들이 수분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천에 싸서 넣는 것이다. 생각보다 효과가 엄청나다. 주로 잎채소가 뭉개지는 것은 수분이 맺히면서 그 수분이 비닐봉지 밖으로 나가지 못해 생기기 때문이다. 비닐에 그냥 넣어두면 일주일을 못 가는 채소도, 잘 싸서 넣어두면 2주가 거뜬하다. 부추는 뭉쳐서 넣어두면  속부터 물러져 금방 상하는데, 큰 면포에 부추를 넓게 펼쳐두고 돌돌 말아 물병 꽂는 칸에 세워서 보관하면 훨씬 오래간다. 

콩나물, 남은 두부, 샐러리, 당근은 물에 담가 보관한다. 두부 한모를 사서 반을 쓰고 반을 넣어둘 때는 용기에 물을 담고 소금을 조금 녹여 두부를 완전히 잠기게 한 다음 밀폐해 보관한다. 두부가 완전히 잠기지 않으면 잠기지 않은 부분이 쉽게 상한다. 콩나물은 소금물이 아닌 그냥 정제수에 담그면 된다. 콩나물은 꼭 한 봉지 사서 라면에 넣고 나면 2-3일 뒤에 누렇게 변해 버리게 된다.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한 다음 넣어두고, 2-3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면 10일-2주까지 멀쩡하다. 채식 모임에서 만난 이는 감자를 깎아 자른 다음 물에 담가 냉장고에 보관하는데, 이렇게 해 두면 전분이 빠져 더 포근하게 먹을 수 있기도 하고, 바쁠 때 바로 건져 에어프라이어에 굽기만 하면 돼서 편하다고 알려줬다. 당근은 물에 담그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지만, 보통은 그냥 라페를 만들어 두는 편이다. 

허브류와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는 빈 유리병에 물을 담아 꽃처럼 꽂은 다음 지퍼백이나 비닐백을 덮어두면 된다. 어쩔 수 없이 비닐백이 생기면 잘 씻어두었다가 이런데 재활용한다. 비닐을 덮지 않고 꽂아만 두어도 오래가지만 비닐을 덮어두면 더 싱싱하게 오래간다. 이렇게 보관한 딜이 두 달을 냉장고에서 멀쩡하게 버티는 것을 보고 순간 '플라스틱인가?' 싶을 정도였다. 일주일에 한, 두 번 물을 갈아준다.

 감자와 양파, 단호박, 마늘 등은 실온에서 서늘하고 어둡게 보관한다. 감자와 양파는 가까이에 두면 서로를 상하게 하는 가스가 방출된다고 하니, 별도의 용기에 담아 어두운 곳에 보관하면 된다. 부엌에 자리가 부족해 거실장의 한 칸을 곳간처럼 쓰고 있다. 겉에 물기가 있다면 천으로 잘 닦아 말린 다음 보관한다. 양파와 마늘 같은 것들이 껍질이 붙어있으면 몇 달을 상온에서 싱싱하게 유지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 껍질과 뿌리를 자르고  냉장고에 넣으면 며칠 뒤부터 물러지는데 말이다. 

과일은 보관 방법이 모두 달라, 그때그때 찾아본다. 자주 먹는 토마토는 꼭지를 따서 상온에 보관한다. 아주 오랫동안 토마토를 냉장 보관했는데, 상온 보관하니 더 오래가고 맛도 훨씬 좋았다. 올해는 오랫동안 유기농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분께 토마토를 주문해 먹었는데, 그 토마토는 상온에서 한 달을 갔다. 사과는 딤채 과일 칸에 보관하고, 복숭아, 자두 종류는 집으로 데려와 후숙 시킨 뒤 먹는다. 나는 너무 차가운 과일보다는 상온의 과일이 달고 맛있다고 배웠었는데, 어제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과일 안에 있는 과당은 알파형과 베타형이 섞여 있는데, 온도가 낮아질수록 더 단맛을 내는 베타형이 증가하고 반대로 온도가 높아질수록 단맛이 덜한 알파형이 증가한다고 한다. 절대적인 당도는 변함없지만 온도에 따라 혀가 느끼는 단맛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후숙 후 냉장 보관했다가 꺼내 먹는 편이 낫겠다. 보통 과일은 자주 꺼내 먹게 되기 때문에, 씻어서 보관하는데,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담갔다가 식초 물로 한 번 더 헹군다. 이 방법은 농약을 씻는데도 좋은 방법이라고 들었다. 

야채를 냉동할 때는 살짝 데친 다음 냉동한다. 당장 내일부터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하는데 야채가 애매하게 남아있다면 냉동보관을 할 수 있다. 다만 수분이 많은 야채들은 냉동했다 해동하면 식감이 영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잎채소는 특히 그렇고, 애호박 같은 것도 그렇다. 끓는 물에 1분 내로 데쳐서 식힌 다음 얼려두면, 갑자기 된장찌개 같은 것을 끓일 때 좋다. 시금치 같은 잎채소가 남으면 마찬가지로 데쳐서 물기를 꼭 짠 다음 넣어두었다가 볶음요리에 쓰면 좋다. 자투리 야채들은 쫑쫑 썰어 볶음밥에 넣으면 된다.

고추는 꼭지를 따서 병에 세워서 담아 보관하면 오래간다. 물기를 모두 제거하고 병에 담아 보관하면 한 달 정도 냉장 보관했었는데, 주로 그 이상 먹어서 꼭지를 따서 냉동하기도 한다. 

과일과 야채칸을 구분할 수 있으면 구분하는 것이 좋다. 야채와 과일은  같이 담아 보관하면 서로 상하게 한다고 한다. 나는 속이 보이지 않는 실리콘 용기나 플라스틱 용기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라벨을 붙이는 것도 늘 귀찮기 때문에 부조건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용기를 사용하는 편이다. 검은 비닐봉지째 넣어두는 일은 잘 보이지도 않고, 내용물도 빨리 상하기 때문에 절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곡물은 냉장보관, 특히 김치냉장고 보관이 제일 좋긴 하다. 야채칸에 늘 과일을 넣어두어서 현미는 늘 찬장에 밀폐용기에 담아 넣어두었는데, 올해 여름에 폐기했다. 습도가 높아지니 바로 상했다. 사과를 8개쯤 꺼내 식초를 담가 두고, 그 자리에 쌀통을 넣어두었다. 팥은 상온에서 무조건 벌레가 생긴다. 무조건 냉장 보관을 해야 한다. 쌀가루, 찹쌀가루 등도 마찬가지다. 냉동 보관해야 한다. 방부제 없이 가공한 우리밀도 냉장보관이 더 낫다. 


3. 냉장고에 먹을게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장을 본다. 

 이건 아직도 내가 잘 안 되는 부분이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냉장고에 자리가 많지 않은데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생각 없이 구매하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오늘 장을 봐야겠다!'라고 생각한 날부터 3일 정도는 장을 보지 않아도 하루 세끼를 냉장고를 털어 해결할 수 있었다. 냉장고에 남은 야채가 있는데 라면을 끓여먹으면, 그 야채들은 결국 버리게 된다. 라면에 야채를 듬뿍 넣어 먹거나, 사이드 디쉬로 야채볶음이나 찜 야채를 만들어 먹고 난 다음 라면 같은 보관을 오래 할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 요즘은 냉장고 야채칸이 완전히 비면 장보는 날을 늘려간다. 냉동실은 아직 잘 비워지질 않는다. 남겨진 숙제다. 여름이라 밀가루와 고춧가루 등등을 모두 냉동실에 넣어뒀더니 다른 재료를 넣을 칸이 부족한 상태다. 


4. 유통기한이 많이 남았는데 먹을 수 없는 가공식품이 있다면, 푸드뱅크에 연락한다. 

 참치캔, 햄, 과자, 치즈 등 채식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은 식재료들이 찬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채식 이후에도 선물 받은 육식 가공식품이나 처리해야 하는 가공식품들이 꽤 생겼었다. '당근'으로 판매나 나눔을 하기도 했지만, 양이 많거나 할 때는 푸드뱅크에 연락했다.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물건을 가지고 가 주시기 때문에 몹시 편리했다. 개인 차원에서 기부금 영수증 발행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5. 전통시장에서 장을 본다면, 단골집을 만든다. 

 나는 자주 가는 야채가게와 과일가게가 있다. 전통시장은 보통 판매단위가 마트 포장단위보다 큰 경우가 많다. 사과 한 바구니에 열개라면, 사과 다섯 개와 복숭아 다섯 개를 섞어서 팔아주는 사장님과 친하게 지낸다. 야채도 마찬가지다. '제가 혼자 살아서요!'를 외치고 적당히 여러 종류를 조금씩 담아 팔아달라고 한다. 더 싸지 않더라도 먹을 만큼 사는 편이 더 낫다. 


  생각나는 것은 여기까지. 물론 자주 장을 보고, 며칠 내 먹을 것만 산다면 제일 좋겠지만,  살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더라. 최소 판매 단위를 사더라도 몇 번에 걸쳐서 먹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요리도 많은 나 같은 사람은 그 욕구를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면서도, 요리조리 적절히 잘 구매해서 잘 보관해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재미를 찾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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