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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Sep 28. 2022

호강하는 비건, 그게 바로 나예요

포리스트 키친 X 허머스 홀텐스 콜라보 팝업 후기 

 채식 지향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시점과도, 회사를 그만둔 시점과도 비슷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와도 겹쳤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게 된 시기였다. 그 변화를 오롯이 받아내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또 어떤 것은 없던 일이 되길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아도 보며 지내왔다. 


 당장 회사를 그만뒀으니 씀씀이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거기에 더해 코로나와 '소비지향적인 삶', 거기에 꼭 동반되는 '과시를 위한 삶'에 대한 현타가 겹쳤다. 개인카드에 법인카드를 더해 먹는데만 상당한 돈을 쓰며 살았던 삶이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지갑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고, 동물과 지구환경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한 걸음 멀게 느껴지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깨달음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먹거리들은 나를 병들게 했고, 과시적인 호사로 힘들게 일한 것에 대한,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원래 내 것이 아닌데 뺏겼다고 생각한 희미한 피해의식에 기반한 생각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트레스를 잠깐 잊는 방법으로 매번 자극적인 음식을 먹거나 별 의미 없는 여행과 물건을 사들이는 취미를 정리해야 할 때였다. (여행은 나를 가장 빨리 성장시킨 요소였지만, 모든 여행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음에 여행에 대한 고찰을 다시 풀어보기로 하고.) 자연스럽게 외식을 대폭 줄였고 집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가끔 외식을 한 날들이 있었지만 비건 식당들에 만족한 날이 많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육식을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갔던 비건 식당이 너무 내 입맛에 맞지 않았던 탓에 색안경을 끼고 있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대충 두부집과 콩국수집, 마리나라를 파는 화덕피자집을 전전하며 그럭저럭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포리스트 키친의 콜라보 팝업 소식을 들었다. 농심에서 만든 비건 파인 다이닝 포리스트 키친은 오픈한 지 몇 달이 됐지만, 디너 메인이 대체육 스테이크라는 점이 영 끌리지 않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번 콜라보 팝업의 메뉴에는 스테이크가 포함되지 않았고, 점심과 저녁 모두 동일한 메뉴에 7만 7천 원이라는 가격이 (12개의 디쉬가 나오는 코스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정말 궁금했다. 비건 다이닝이 어디쯤 와있는지도, 메인 메뉴가 스테이크나 생선이 아닌 코스가 어떻게 풀릴지도 보고 싶었다. 총 12개의 디쉬 중 9개는 콜라보를 통해 새로 만들어졌고, 나머지 3개는 기존 포리스트 키친의 코스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을 그대로 포함했다고 했다. 예전에 어떤 셰프님이 코스에서 스테이크를 빼고 싶은데, 사람들이 '코스요리'에 가지는 기대에 부흥해야 되어서 넣는 수밖에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포리스트 키친의 기존 메뉴도 그런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번 팝업에서 스테이크가 빠진 구성이 더 새롭고 대담하게 느껴졌다. 


 12개의 요리를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며 황홀경에 빠졌다. 당연히 맛도 좋았지만, 동물 없이도 이런 음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도 컸다. 큰 접시 한 구석에 쥐콩만큼 예쁘게 얹어주는 이런 음식을 먹은 지 너무 오래되어 그랬을까.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 데 모여 예상한 맛과 예상하지 못했던 맛을 동시에 터져서 그랬을까. 그간 비건 외식에 실망하면서도 '맛없다'라고 하면 비건 산업 부흥에 누라도 될까 봐 그냥 없던 일로 쳤던 날들이 까맣게 잊히는 순간이었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갔던 생선과 고기가 포함된 파인 다이닝에 비교하더라도 더 나았는데, 아마도 그때의 메뉴 구성이나 맛이 새로울 것 없이 예상 가능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함께 식사를 했던 동행자도 이 날의 즐거움에 큰 몫을 했다.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차분하게 내 말을 경청하고, 말이 끝나면 꼭꼭 눌러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이는 파인 다이닝 경험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런 음식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자극적이고 해로운 음식을 멀리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하는 말이 너무 귀엽고도 고마웠다. 석촌호수를 한 바퀴 다 돌고, 맥주를 한잔 나눠 마시고, 두 시간 동안 천천히 밥을 먹는 내내 나눈 대화가 너무 따뜻했다. 


 나의 사랑의 언어는 '봉사(act of service)'와 '함께 하는 시간(quality time together)'이었다. 그래서 언제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는 집으로 불러 서툰 요리를 대접하거나 맛있는 곳으로 안내했고,  헤어진 애인들의 뒤늦은 문자는 '자니?'대신 '니가 만들어주던 오믈렛이 먹고 싶다'가 더 많았다.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뿐 아니라 느끼는 언어도 동일해서 내 생일이라고 집에 잔뜩 장을 봐와서 생일상을 차려준 사람을 자주 떠올린다. 사랑의 언어가 '언어'였던 그 사람에게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사이 영영 되돌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큰 만큼, 메뉴를 정하고 장을 봐와서 불 앞에 서서 최선을 다해 나름의 표현을 했던 나의 모습도 꼭 기억하려고 한다. 채식 지향 이후에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자유와 야무진 손을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도 호사스러운 음식을 즐기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동행하는 이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긴 시간이었다.


 음식에 대한 집착과 중독에서 조금씩 벗어나 '의식적인 먹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 만족스러운 만큼 먹을 것들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호기심이 헛헛함이 되어가던 때, 참 적절하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이거 먹고 나서 자꾸 좋은 데서 외식만 하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냐'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다. 최근 넷플릭스에 '쉐프스 테이블 - 피자 편'이 올라온 것을 보고도 며칠 동안 보는 일을 미뤘다. 괜히 봤다가 치즈가 먹고 싶어질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먹고 싶어지면 먹지 뭐!'라는 결심을 하고 이틀에 걸쳐 다 보고 난 이후 아직까지 치즈가 먹고 싶진 않다. 미디어 자극에 중독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멈춘 것 같다. 오랜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설렌다. 포리스트 키친에서 밥을 먹고 온 다음날, 여느 때처럼 과일식으로 아침을, 야채와 템페를 볶아 점심을 먹었다. 


트러플, 애플피클, 화이트아스파라거스, 홍시로 구성된 아뮤즈 부쉬, 들기름 후무스 메밀 칩, 감자와 훈제 컬리플라워
발효흑토마토, 옥수수 푸딩과 전병, 밤퓨레와 비트피클, 콩고기가 들어간 코코넛과 허브 토르텔리니
타코, 구운오이, 여러가지 버섯요리
미역국을 모티브로 한 해초요리
복숭아 크림쿠키, 무화과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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