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원동 바히네 Sep 16. 2022

비건 음식, 진짜 다 맛있냐고요?

아니오.

 망원시장에 태추단감이 나왔다. 작년 이맘때쯤, 채식 모임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단감 말고 태추단감을 드셔 보시라며, 배와 감을 섞은 것 같이 아삭하고 맛있다고 신나서 얘기했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일 년이 넘게 채식을 하며 이 사람들과 사계절을 넘게 보냈구나 싶었다. 일 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버릴 것, 들일 것 등 잡다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나누며 작년에 태추단감을 드셔 보시라고 권했던 내가 사는 방식과 오늘의 태추단감을 사 먹는 내가 또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요즘 먹고, 입고, 사는 방식은 과거의 내가 살던 방식에 비해 종합적으로 훨씬 만족스럽다. 외부적으로 부정적인 자극이 있을 때마다 더 자극적인 음식으로,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라고 생각했던 방식이 바뀐 것이 제일 만족스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빈혈과 약한 혈관으로 꿈도 못 꾸던 헌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나 지구력이 좋아져 달리기도 할 수 있게 된 것, 7kg 정도를 감량한 것 등 몸의 변화도 긍정적이다. 


 바뀌지 않은 한 가지는 '사 먹는 비건 음식 중 맛이 없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가끔 나를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채식, 특히 자연식물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채식 후 변화한 것 중 하나로 더 많은 제철 야채와 과일 등을 즐기게 된 것을 꼽는다. 채식을 하기 전에도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에게 이 이야기는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계절에만 먹을 수 있었던 해산물들이 내 식탁에서 사라진 마이너스의 변화다. 이런 마이너스에 더해 밖에서 사 먹는 '비건 음식', 특히 '비거나이징'된 음식이 맛이 없어 외식의 흥미가 떨어졌다는 것 또한 여전한 '변화'로 남아있다. 


 여름에 고소한 콩국수, 채수로 시원하게 끓인 두부전골처럼 원래 채식인 음식을, 원래 맛집이었던 곳에서 사 먹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면 누구와 가더라도 파스타, 치즈 보드, 치킨구이, 생선요리를 한 상에 차려놓고 즐길 수 있는 식당의 만족스러움만큼을 느낄 수 있는 채식 식당은 없고, '가치 소비'로 만족의 기준을 바꿔놓고 보더라도 채식 식당의 수와 다양성은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진다. 원래 좋아하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마리나라나 치즈를 뺀 뽀모도로 파스타를 먹는 것은 무척이나 만족스럽지만, 비건 치즈를 올려 기름지게 요리한 비건 파스타는 먹고 나면 오히려 속이 불편할 때도 있다. 아무리 잘 구현을 했다고 하더라도 곤약으로 만든 비건 새우, 콩으로 만든 비건 참치, 콩과 해조류로 만든 비건 모르타델라 햄이 예전에 먹던 새우, 참치, 모르타델라 햄보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많이 발전해 이제는 정말 논비건들이 먹어도 다른 점을 모른다는 광고 문구는 아직 멀게 느껴진다. 비건 스시는 만든 이의 창의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스시가 예전에 먹던 비싼 동물성 스시보다 맛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예 비거나이징이 된 상품이 없는 카테고리들은 어떤가. 채식을 하기 전,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해산물. 오랫동안 삶아 부드러운 문어를 올리브유에 버무려 훈제 파프리카 파우더를 얹어 먹는 것이나, 큰 생선을 굽다가 조개 육수를 조금 넣고 끓여낸 요리는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이런 음식은 비건 음식으로 개발이 된 것을 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동물권 때문에 채식을 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동물을 죽이지 않았다'기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감각은 아직 없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도 먹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 여기고, 먹고 싶은 건 먹어야 직성이 풀렸던 내가 음식에 대한 집착을 차츰 내려놓고 있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넘게 생각나는 음식은 먹어보기도 하는데, 또 간절히 원했던 만큼은 대단한 맛도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물론 맛있다. 일 년쯤 안 먹다 먹었던 해산물 요리는 당연히 맛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내가 잃어버렸던 그 무언가지!'라던가, '이걸 어떻게 잃어!'라는 마음이 들거나, '이걸 포기하는 것은 내 욕구를 누르며 사는 것이라는'는 생각, '남들은 매일을 이렇게 먹는데 뭐 어떠냐'는 생각, 더 가서 '어차피 나 하나 노력한다고 뭐가 바뀌지는 않는다' 같은 것들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내 삶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은 확고했기 때문에, 남들이 얼마나 엄격하게 비거니즘을 실천하든, 얼마나 육식을 과하게 하든 그게 결국 내가 먹는 것을 바꾸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의 미해결 욕구를 나에게 하는 말로 표현하는구나'하고 넘기기도 한다.


 예전에도 채식을 몇 달 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언제든 포기할 마음은 한편에 가지고 시작했던 채식이다. 엄격하게 비거니즘을 실천하겠다는 목표도, 일주일에 며칠만, 뭐는 먹고 뭐는 먹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얼레벌레 시작한 채식이었다. 가능한 자연식물식에 가깝게 먹는 끼니도 있지만, 새로 나온 비건 가공식품을 먹어보는 날도 있다. 혼자 먹더라도 정성스럽게 차려 먹는 날도 있지만, 밥도, 국도, 반찬도 다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날도 있다. 육식 전시를 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비건 전시는 같이 하면 좋겠다 싶어 SNS에 맛있는 채식 밥상을 전시하고 있지만, 전시하든 전시하지 않든 내가 먹는 것이 바뀌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내가 얼마나 더 '완벽한' 비거니즘을 실천할 것인지, 내가 얼마나 더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 것인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비건으로 먹게 할 것인지가 내 목표가 되지는 않는다. 요즘의 목표는 채식과 기후위기의 관계를 짧게 언급했을 때 '푸하하하하. 그게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지인을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 말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것, 내가 사는 방식이 나에게 더 유리한지를 기준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동안 살까 말까를 망설였던 포르치니를 주문했다. 진짜 맛있어 보이는 채식 리조또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아직 의문으로만 남아있어 리조또에 도전해볼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맛있는 버섯 파스타를 만들어보고, 라비올리도 만들어볼 계획이다. 치즈와 버터를 듬뿍 넣어 만든 리조또가 없는 삶이 리조또만큼 공허하지 않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리조또가 사라진 자리엔 다른 무언가가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것 같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서도. 


사진은 글과 별 상관없는 템페라구 파스타와 반짝하게 닦은 애착 스텐팬, 그리고 아직도 까맣게 탄 손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의 입장에선 어떨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