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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Sep 02. 2022

지구의 입장에선 어떨까?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서평 - 지구용레터X클랩북스 이벤트

 건물의 꼭대기층에 사는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우리 통로에 사는 사람들이 집 밖에 내놓은 다양한 물건들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대부분 여러 가지 크기와 모양의 택배 박스가 쌓여있거나 쿠팡, 마켓컬리 같은 새벽 배송 서비스들의 박스가 쌓여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수거할 쓰레기들, 일반 쓰레기봉투를 곧 내놓을 것처럼 문 밖에 내놓는 사람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복도에 내놓음으로써 우리 집에만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는 '나만 아니면 돼' 전략이 이렇게 노골적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매번 문 밖에 내놓는 사람은 아랫집 사람이다. 처음엔 그저 내가 지나다니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놓아 두어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해 짜증이 났다. 집주인을 통해 전체 공지로 문 밖에 쓰레기를 반나절 이상 놓아두지 말 것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일주일쯤 지나고 난 이후부터 또 쓰레기를 문 밖에 내놓기 시작했다. 그 집엔 쓰레기봉투 외에도 다양한 박스들이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쌓여있다. 새벽 배송 박스는 늘 밤까지 집 안으로 입성을 못해 '새벽 배송'의 의미가 퇴색된 것 같았고, 물건이 담긴 다양한 크기의 택배박스도 일주일에 4일 정도 꼭 두 개씩 쌓여있었다. 한 때 인터넷 쇼핑을 즐겨했던 내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해외 상품 직구 서비스 로고가 박힌 박스도 자주 쌓였다. 내 기분을 상하게 했던 음식물 쓰레기가 쌓였을 때 보다 이 박스가 쌓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그리고 길게는 3일 이상씩 그 박스가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걸 보고 있다 보니 나의 오지랖이 또 발동해 이제 아랫집 사람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지, 차라리 어디 멀리 다니러 간 거면 다행인데 마음이 힘들어 꼼짝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뭘 어쩌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 안녕을 걱정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분리수거를 내놓으러 내려가는 길에 아랫집 사람과 만났다. 그분 역시 쓰레기를 내놓는 중이었다. 보려고 본 것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보인 아랫집 현관과 집 입구엔 쓰레기가 가득했다. 택배와 새벽 배송으로 물건 좀 시켜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쓰레기가 정말 많이 쌓인다. 한 때 마켓컬리 퍼플 등급(VIP 쯤 되는 것)이었던 나는 5만 원쯤 식료품을 구매하고 나면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쌓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계단이 없는 건물 꼭대기 층에 살다 보면 그 쓰레기를 매일 내다 버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매일같이 새벽 배송과 택배 박스가 쌓이던 아랫집에서 문 밖으로 토하듯 쓰레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들을 밖에 내놓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망원동은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 삶을 지향하며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의 저자가 영감을 받은 자타공인 제로 웨이스트 선구자 알맹 상점의 고금숙 대표님이 처음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고, 채식 식당을 보여주는 지도 앱에서 가장 많은 별이 찍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채식 모임을 같이 하는 동네 지인도 '망원동에 살면서 채식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말에 동의해 채식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비닐 없이 장을 볼 수 있는 큰 전통시장이 있기도 하고, 또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을 용기 없이 내용물만 살 수 있는 알맹 상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원동에 사는 6년 동안 나는 제로 웨이스트의 삶은 꿈도 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관심이 전혀 없었다. 늘 절약하고 아끼며 살아온 엄마 밑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이 무색하게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그 돈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쓰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공간이었고, 내가 퇴근할 시간에 망원시장은 모두 문을 닫았다. 몇 개 가게가 문을 열어 두었다 해도 12시간 넘게 일하고 돌아오며 뾰족구두를 신고 무거운 양파와 감자를 짊어지고 올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잠자기 전에 5분 동안 장을 봤고 다음날 문 앞에 놓인 것들로 아침식사와 야식을 먹었다.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을 사는 것이 즐거웠고 옷장은 날로 터져나갔다.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해외여행을 가야 내 고생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쓰레기를 좀 줄여보겠다고 장바구니와 천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며 장을 보고, 세제 대신 비누를 쓰고, 채식을 하고 (채식은 건강 때문에 시작했지만), 새 옷을 사지 않은지 겨우 고작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텀블러를 제대로 안 씻으면 오히려 균이 번져서 건강에 안 좋다며 하루에 두세 잔씩 테이크아웃 컵에 음료를 먹는 지인과, 채식 지향을 한다면서 매번 SNS에 물살이가 맛있다고 전시하는 사람, 하루에 두세 박스씩 택배가 쌓이는 아랫집 사람,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낭비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질끈 눈을 감아왔다. 3-4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런 기후위기 시대에 지금 저럴 땐가?' 하는 마음이 동시에 올라와 머리를 복잡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나만 가지는 것이 아니었고, 그래서 이런 마음이 들 때 어떤 생각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들을 창구도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왜 저항의 마음이 드는지,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월감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이 감정을 숨기기 위해 반대로 행동하는 방어기제를 보이지는 않는지를 점검해야 했다.


 내가 채식과 기후위기, 제로 웨이스트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면  세계는 변한다. 기존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세계로 옮겨가 갇혀버릴  있다. 만나는 사람이 제한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그리고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이 쉽게 나를 고립시킬  있다. 기후위기와 동물권, 인간의 질병 극복 문제는 물론  지구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결해야  중요한 문제이지만 세상엔 이것보다  많은 문제가 있다.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안전하게  곳을 구하지 못하고 있고,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는 아이들은 여전히 많으며,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있는 사람은 무수히 많고, 집회에 참여했다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 목숨이 위험한 사람도 많으며, 내가   없는  많은 문제들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멀리 보지 않더라도 당장  가족,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 안부를 얼마나 자주, 진심으로 물었을까? 오히려 나는 종종 눈을 고 모르는 척 해버리는 편이 나에게 이롭다는 본능으로 무심한 편이거나   푼의 기부를 하고서 '나는 기여했다' 마음의 위안을 얻을 뿐이다. 이런 내가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에게 손가락을 들이댈 수 있을까?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저자는 비슷하게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고백하며 그럴 때 지구의 입장을 상상해 본다고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구를 못살게 군 정도를 길이로 변환해 비교한다면 저자와 다른 인간의 차이는 1 마이크로미터쯤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성을 한다. 편리함을 뒤로 미루고 제로 웨이스트나 채식을 하는 것은 분명 큰 결심이지만 그 자체로 지구에 무해한 삶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일은 겸손해야 하는 일이라고 내뱉는 고백에 십분 공감한다.


 이 책의 90퍼센트는 어떻게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를 저자의 경험을 버무려 설명해둔 책이지만 나는 책의 마지막 부분의 저자의 고백 파트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멋들어지게 소프넛을 이렇게 쓰면 된다던지, 샴푸바 보다 비누로 머리를 감았던 정보를 제공하는 이면에 이런 제로 웨이스트적인 삶이 얼마나 고되고 수고로운 일인지, 얼마나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에서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된 것에 비해 내가 바뀐다고 해서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기여분이 새우젓 통의 작은 새우 한 마리쯤도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이어나가는 동력을 찾는 그 힘이 진짜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되고 힘든 면이 있다 해도, '어차피'라는 그 모든 노력을 가두어 내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힘이 나에겐 필요하다. 비단 제로 웨이스트나 채식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1년 넘게 갑자기 바뀐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후 내가 사는 데 있어 좋은 관념의 근거가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쉽게 쓰여 후루룩 읽기 좋은 한 권의 책. 친구들과 함께 돌려 읽기를 할 예정이다.


 P.S. 지구용 이벤트로 받은 제로 웨이스트 책이 비닐포장으로 와서 깜짝 놀랐다. 요즘 책 배송은 골판지 박스에 테이프 없이 오는 곳들도 많던데. 아쉬운 부분이었다.

사지 않아도 얻고, 버리지 않고도 비우는 제로웨이스트 비건의 삶.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이은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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