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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Oct 03. 2022

'난 못해'라는 생각으로 달렸더니…

첫 마라톤 대회 출전기

 달리기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다.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한 운동회. 오빠가 세 살 많았으니, 몇 번의 운동회를 따라다니며 그저 김밥과 유부초밥, 과일 도시락을 싸서 할머니,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가면 솜사탕도 팔고 번데기도 팔고, 보송보송한 병아리도 구경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색색이 화려한 만국기가 온 운동장을 덮고, 언니 오빠들은 한복 같은 것들을 입거나 귀여운 분장을 하고 함께 춤을 추기도 했으며, 집에서 열심히 만들던 콩주머니를 던져 알록달록 색종이를 잔뜩 볼 때까지 마구 던져도 되는 날. 뭘 하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빠의 품엔 공책이며 크레파스, 파스텔과 고무찰흙 같은 것들이 시간차를 두고 쌓여갔고, 할머니와 엄마는 연신 '아이고 우리 장남 잘했어요'를 외치며 오빠와 내 입에 먹을 것들을 끊임없이 넣어주던 그런 날이었다. 막상 그게 나의 운동회가 된 날, 나는 그 첫 번째 운동회의 경험으로 학창 시절 내내 운동회나 비슷한 체육대회날이 다가오면 시름시름 앓기까지 하는, 운동회 증오 어린이가 되었다.


 첫 운동회 날 콩주머니 던지기, 굴렁쇠 굴리기 같은 것들을 하기도 전에 나는 단거리 달리기 레인으로 안내되었다. 엄마손파이처럼 겹겹이 전교생이 6명씩 짝을 지어 줄을 서있었다. 그 많은 학생들이 모두 달려야 했으므로, 내가 서 있던 곳 반대편에서 한 선생님은 계속해서 '빵! 빵! 빵!'하고 총을 쏘아댔고, 두 명의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종이 리본 테이프를 새롭게 들고 골인 지점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순위를 매긴 다음 선물을 챙겨줬다. 나는 '빵!'소리가 나면 열심히 뛰어서 저 리본을 통과한 다음, 선물을 받으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빵!'소리를 듣고 달리기 시작했다. 결승선 지점에서 분주하게 내가 속한 그룹의 이전 그룹의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고 선물을 챙기고 다시 리본을 정리하는 것들을 보면서 열심히 달렸을 것이다. 똥줄이 빠지게 뛰었고, 나는 선생님 두 분이 팽팽하게 들고 있던 리본을 처음으로 끊으며 결승지점을 통과했다.


엄마! 나 1등이야?

 여덟 살 짧은 인생의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경쟁에서 1등을 했다니. 나는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1등을 하면 엄마도, 할머니도, 선생님도 다 잘했다고 하고 선물도 제일 크고 좋은걸 받으니 1등을 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하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정 반대였다.


"푸하하하하하. 1등이 아이고, 꼴찌다 꼴찌! 진짜 1등인 줄 알았나? 하하하."


 단거리 달리기는 전교생이 모두 참여해야 하므로 한 그룹의 달리기에 할당된 시간이 매우 짧았고, 대충 다섯 명이 결승선을 통과했는지 여섯 명이 모두 들어왔는지 꼼꼼히 챙기기엔 몹시 정신없는 시스템이었다. 결국 선생님은 나, 그러니까 그룹의 꼴찌까지 모두 결승선을 통과했다고 생각하고 리본을 새로 고쳐 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팽팽하게 당겨진 결승선 리본을 끊으며 '세상에, 첫 달리기를 1등으로 들어오다니!' 하는 착각을 했던 것.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 할머니, 오빠의 반응 - 당연히 이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가족 내외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은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가족들의 반응엔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전엔 '귀엽다'라고 놀리는 것들이 왜 그렇게 가슴에 꽂혔었던 것일까.


 달리기를 꼴찌로 들어와 놓고 꼴찌인 줄도 모르고 해맑게 1등인 것으로 착각했던 8살의 나는 그 뒤로 운동회날이 학교 생활에서 가장 싫은 날이 되었다.  물론 운동신경이 없는 나는 달리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운동신경과 상관없는 '마스게임', 줄다리기, 박 터트리기, OX퀴즈 같은 것들에도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이후에는 체육시간조차 싫어져 어떤 핑계를 대고서라도 수업을 빠질 수 있다면 빠지려고 노력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매우 성실한 학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수업에 빠지는 일은 나에게 엄청난 일이었다.) 중학교 때는 특이하게 '무용'과 '체육'을 반반 나눠 '체육' 한 과목으로 성적을 매겼기 때문에 무용을 아주 열심히 연습해 (운동신경이 없는 대신 춤추는 것은 이 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성적표에 체육도 '수'를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는 체육시간에 자율학습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마음 편히 체육복을 입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아졌다.


 어렸을 때의 이런 경험들과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크게  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내면 아이' 대해서 듣고, 읽고, 상담받고 해도, 진심으로 깨닫는 것은 정말 다른 것이라는 것을 최근 느끼고 있다. 아무튼,  조롱과 '쫑크'(무안을 준다는 의미의 경상도 방언) 점철된 어린 시절의 운동과 관련한 기억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를 옥죄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특별한 계기가 없다. 산책을 하다, 빨리 걷다가, 지루해서 살짝 뛰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때 지인들 사이에서 '런데이'라는 달리기 어플이 유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 아무리 유행한다고 해도, 친구들이 아무리 같이 하자고 해도 늘 '나는 안돼'라는 생각에 시작할 생각을 못했다- 우연히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시키는 대로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단한 결심을 한 것도 없었고, 규칙적인 훈련을 하지도 않았다. 11월부터 3월 2주 정도까지는 추워서 뛰지 않았고, 7월부터 8월은 더워서 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봄, 가을에 규칙적으로 훈련을 한 것도 아니었다. '런데이'어플 달력에는 훈련을 한 날 도장을 찍어주는 페이지가 있는데, 내 달력은 늘 중구난방이었다.


 그래도 놓지 않았다. 처음엔 30분을 이어달리기를 목표로 한 프로그램을 모두 해 보는 것을 목표 삼았고, 그 이후에는 7Km 마라톤을 달려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대부분 시도했던 운동들은 경험 수준에서 끝난 것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달리기는 그렇지 않았다. 별 기술이 필요 없고, '나는 달리기를 포함한 운동을 못해!'라는 생각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서 달렸다. 부상을 입지 않고 꾸준히 달리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런데이'어플로 달리기를 시도한 친구들 중에서도 처음 몇 번 달리기를 하면서 욕심을 부려 무릎이나 허벅지 근육 부상을 입고 '달리기는 내 것이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잘 못해'라는 내면아이의 두려움은 어느새 '나는 잘 못하니까 조심히 달려야지!'라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보다 느리게 달려도, 더 장거리를 달리지 못하는 게 당연해. 1등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내면아이의 두려움의 목소리를 '우이씨!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하면서 억울한 마음으로 더 잘하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면, 지치거나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2022 10 2,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를 나갔다. 5km 너무 짧고 10km 너무   같아서 - 여전히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 7km 코스가 있는 대회를 선택했다. 아침부터 날씨가 좋지 않았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비가 많이   같진 않았지만, 우중 달리기는   적도 없어서 걱정이 되기도 . 아침 7시까지 소집이라 일찍 집을 나섰다. 일요일 배차간격이 11분이라던 버스는 34 뒤에나 도착한다고 했다. 아침부터 전기자전거로 합정역까지 달렸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습도가 높아 벌써 땀이 맺혔지만, 길거리에 어제 마시던 술을   깨지 못해 널브러진 사람들이 종종 보였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겁을 내고 끝끝내  인생에 없는 존재라고 우겨대던 자전거를 비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공유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고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아빠, 오빠,  남자 친구들을 여러  거치면서 안간힘을 써도 배우지 못했던 자전거 타기를 작년에 우연히 배운 이후  주요 동력은 자전거가 되었다. 따릉이와 전기 공유 자전거로 여기저기 다니는 재미가 크다.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는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적이 없다. '나는 자전거를 못타'라는 생각이 '그러니까 조심해서 달려야 '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라톤 대회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특이한 코스튬을 입고 출전하는 그룹,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커플이 아이 두 명을 각각 유모차에 태우고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리는 두 사람, 우리 아빠 나이로 보이는 할아버지, 귀여운 캐릭터 우비를 입고 야무지게 번호표를 부착한 꼬마 아이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경보를 하는 사람도 있고, 1km쯤 앞두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평소 연습한 대로 1km를 8분 정도에 달리는 느린 달리기로, 대신 일정한 속도로 걷지 않고 뛰는 것이 목표였다.


 엄청난 인파와 함께 카운트다운에 맞춰 출발선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날이 서늘해져 달릴 때 땀이 잘 안 났는데, 비가 오니 습도가 높아져 땀이 비 오듯 났다. 내 앞에 사람들이 각자 다른 속도로 뛰거나 걷기 때문에 내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니 앞에 있는 사람을 제치고 달려야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기도 했는데,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잘 달리기 위해서는 앞선 사람을 제치는 재미를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재미를 느끼고 어쩌고 할 실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승선을 넘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잘 뛰었고 부상도 없었다. 나중에 달리기 어플을 보니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정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일정한 속도로 달렸고, 전체 속도는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편이었다.


 별생각 없이 도전한 달리기와 첫 마라톤 대회. 7km를 완주했다는 것 너머에 정말 많은 쾌감과 깨달음이 있었던 경험이었다. 벌써부터 '이제 달리기 말고 다른 거 해야지'하는 생각을 스멀스멀하고 있긴 하지만, 자전거처럼 재미로 하는 운동이 하나 더 생겼다는 점이 썩 마음에 든다.

  

나눠준 태그를 통해 기록이 측정되고, 완주 후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이런 이미지를 문자메시지로 전송해준다.
완주 메달을 요즘은 이렇게 준다. 폐 플라스틱을 활용하고 티 코스터로 쓸 수 있도록. 시대의 흐름에 잘 맞지만, 티 코스터가 필요 없는 것은 또 마찬가지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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