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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Oct 06. 2022

만두를 빚으며 엄마 생각을 했다.

손이 작은데 손이 크다.

 고기 없이 만두를 빚었다. 동네 친구네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2년 묵은 김치를 넣을 곳이 없어 우리 집 딤채에 보관하던 중이었다. 이 김치를 맛있게 먹기 위해 김치만두를 빚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엔 하지 않지만 내가 20대 때만 하더라도 설날이 되면 종종 본가에서 만두를 빚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아빠는 설날에 만두를 먹었고, 경상도가 고향인 엄마는 떡국을 먹었기 때문에 우리 집은 떡만둣국으로 설날 아침을 먹는 때가 많았다. 엄마는 만두에 당면을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때문에 간소하게 김치와 두부, 각종 야채만 넣고 만두를 빚었다. 속이 간단한 반면 만두피는 집에서 아빠가 커다란 밀대로 밀어서 직접 만들었다. 엄마는 속을 만들고 아빠가 만두피를 밀어주면 만두를 빚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왜 내 기억엔 오빠가 같이 앉아 만두를 빚었던 장면이 없을까. 분명 한, 두 번은 빚었을 텐데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제사를 없애기 전에는 명절과 제사 때마다 간소해 보이지만 준비가 너무 고단하고 막상 해 놓고 나면 그다지 맛도 별로 없는 음식을 차리는데 엄마의 노동력이 갈려 들어갔다.  나는 그 짐을 완전히 나누지도 못하면서 괜히 반발심만 커져 갔고, 이 짐을 나눠가지지 않는 오빠에게 그 반발심은 폭발했다. 어느 설 하루 전날, 오빠는 '밤을 깜빡했으니 시장에서 밤을 사 오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그제야 밤 한 봉지를 사서 집으로 왔다. 까만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밤 봉투를 전을 굽고 있는 나에게 내려놓으며 '새우튀김은 안 해?'라고 묻는 오빠에게 쏘아붙였다.


 "앞으로 이 집에 안 깐 밤을 들이지 마. 밤 까서 와. 아무것도 안 할 거면 그냥 집에서 직접 까든, 시장에서 기계로 까 오든, 깐 밤만 가져와."


 아주 꽉 막힌 막돼먹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도 밤은 남자들이 까는 게 아니었나? 쪼그려 앉아 전을 부치는 사람에게 안 깐 밤 봉지를 내미는 - 그것도 이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는 맑은 얼굴로 내미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어금니에 힘을 주고 말했는데, 이 진심이 전해지지 못했는지 오빠는 계속 새우튀김을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심지어 카드를 오빠에게 주며, 새우를 사 오라고 했다. 오빠가 사 온 새우를 다듬어 계란물을 입힌 뒤 전을 부쳤다. 이미 다른 전을 다 부쳤으므로, 남은 계란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고 긍정 회로를 돌리며 전을 부쳤다.

 

 "튀김이 아니네?"


 선을 넘어도 한 참 넘어버린 이 발언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지금 언제 튀김 솥에 기름을 다시 끓여서 새우를 딱 10마리만 튀기겠냐고, 튀김이 먹고 싶으면 시장에 가서 사 오라고 말했다. 내가 엄마의 기분과 감정을 예민하게 살피는 만큼이나 엄마도 내 감정을 예리하게 알아채는 사람이었으므로, 꾹꾹 눌러 내뱉는 내 목소리에 어떤 분노가 차오르는지 엄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밤 깔게. 나물 다 무쳤으니 새우도 내가 마무리할게. 너네 이제 가서 쉬어라."

 아마 그때 나는 이 집안의 행사에서 내가 벗어나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을 것이다. 밤을 까 오지 않는 오빠도, 이 말도 안 되는 시스템 안에서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이 힘들고 고단하고 부정한 일들을 마치고 나면 모든 감정을 나에게 쏟아내며 공감과 위로를 바라는 엄마도, 사실상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권력과 권한을 가졌지만 방관하는 아빠도 다 미웠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나쁜 딸이 되기로 했다. 잔다르크가 되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뒷목을 잡았고, 아빠는 연신 창 밖만 바라봤으며 오빠는 모르는 척했다. 엄마는 '그래도 그러지 말지'라며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했다. 방관하는 아빠와 오빠보다 엄마에게 분노가 향했다. 엄마는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고단한 시집살이와 일 년에 14번 차려야 하는 제사상, 그 수고를 몰라주고 야속한 소리를 하는 할머니와 아빠에 대해서 토로하며 감정적 공감과 일부지만 가사노동의 분업을 요구해놓고 막상 전쟁을 치르니 왜 그랬냐고 나를 나무라며 내 뒤에 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뿐 아니라 나도 엄마와 나를 동기화시켜두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이때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단단하게 도킹된 나 자신을 엄마로부터 분리해 최대한 멀리 달아나기로 했다. 물리적 거리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칭칭 감겨있던 동아줄이 탁!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분명했다.


만두를 빚겠다고 했으면 만두만 빚을 일이지. 꼭 손이 커서 일을 벌인다. 결국 호박 부침개는 정신이 없어서 다 태워먹었다. ㅎㅎ


 간단하게 마지막 남은 김치 한쪽을 먹기 위해 빚겠다던 만두였지만 준비할 것이 없진 않았다. 명절 음식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음식 준비 과정을 조각조각으로 나눠 놓고 보면 막상 음식을 하는 것보다 재료를 구매해 와서 씻고 다듬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면 육체적인 힘은 가장 많이 들어가지만 막상 눈에 잘 보이지는 않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과 마트에서 직접 장을 보면 이 것들을 들고 오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진다. 재료를 사 와서 쉬지 않고 바로 다듬는 것은 밤 12시에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퇴근해 온 다음 눕지 않고 바로 화장을 지우고 씻는 것보다 더 힘든 일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이렇게 재료를 정리하고, 하나하나 다지고 물기를 짜고(만두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보는 것 다음으로 힘들 일이다.) 간을 맞춰 속을 준비하고 나면 드디어 앉아서 만두를 빚을 수 있게 된다. 막상 만두를 빚는 것은 앉아서 해도 되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계속해서 보이니까 가장 수월하게 진행된다. 전체 과정에서 세 번째로 힘든 과정은 다 먹고 치우는 일. 20인용 식기세척기가 없는 작은 주방에서 썼던 기물과 접시, 수저들을 모두 씻어 말리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튼 이렇게 장황하게 만두를 집에서 빚는 일이 고단한 일이라고 글씩이나 쓸 정도인데, 왜 또 만두를 빚느냐고? 내 말이 그 말이다. 만두만 그렇겠는가. 혼자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일도 수고롭지만, 여러 명이 먹을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메뉴 선정부터 담아내는 그릇까지 신경 쓸 것이 더 늘어날뿐더러, 규모의 경제가 딱히 먹히지도 않는 행위다. 머리로 계산하면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가끔 고생고생해서 해 주고도 마음이 상하고 후회스러운 날도 있었다. 이 고생의 크기를 몰라주거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야속한 날도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 팔이 빠지게 장을 보는 게 힘들고 종아리힘줄이 탱탱하게 당겨오고 허리가 뻐근한 것은 분명 고통이지만, 그 고통 중간중간을 매우는 것은 역시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계속 인지하지 않으면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되고 고통만 남아 버린다. 아마도 엄마는 그 고통을 나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보다 더 촘촘하고 단단하게 깔려있는 즐거움을 얘기하는 것을, 그 방법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 드시라고 무치는 나물은 괴로웠을지 몰라도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새우는 튀겨주고 싶은 마음을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게 그냥 아무 날이 아닐 때 새우를 튀겨줄 일이지, 꼭 그렇게 바쁠 때 새우를 튀겨달라, 튀겨주겠다 하니 내가 못 알아듣는 수밖에. 그리고 새우 말고 이제 가지를 튀기면 좋겠다. 나도 좀 먹게.


액자에 걸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빚어낸 만두와 만두전골. 같이 주리를 틀듯 야채를 짜주고 마주 앉아 도란도란 빚어주고, 퍼펙트하게 설거지를 해준 친구들 덕분에 수월했다.


 

 팟캐스트 <여둘톡>에서 김하나 작가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성인이 된 시점 이후로 본가에 가서 편안하게 가서 지내는 걸 조심해야 한다고. 엄마도 본인의 생활이 있고, 엄마에게 너무 편히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를 너무 높이 평가하지 말라는 말. 내가 자주 찾아가는 게 무조건 엄마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엄마의 희생과 노고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었다면 엄마가 나에게 요구하는 감정 받이의 역할이나 사회적으로 '자랑스러운 딸'로 상징되는 역할을 요구받는 일을 온 힘으로 거부하거나 잘라내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친구들이랑 만두를 빚어 먹었다고 자랑했다. 고기가 없어도 너무 맛있다고. 만두피도 요즘은 잘 나와서 얇고 쫄깃쫄깃하다고 얘기해줬다. 올해 설에는 내가 만두를 빚어 주겠다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엄마는 앉아서 빚기만 하라고 했다. 아마도 엄마는 버섯을 더 다져야 한다던가 김치를 더 짜야된다며 꼭 같이 붙어서 일을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주도적으로 만두를 빚을 것이다. 설거지는 오빠를 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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