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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Oct 28. 2022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해산물 기생충 뉴스를 본 다음날, 생선이 먹고 싶었다.

 며칠 전, 맥도날드의 피쉬버거에서 기생충이 나왔는데, 고객 대응을 미진하게 해서 뉴스에 크게 보도됐다. 뉴스 꼭지에서는 해당 사안에 대해 다루면서, 사실 문제가 된 피쉬버거의 기생충은 우리가 흔히 해산물을 먹을 때 늘 함께 먹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함께 짚었다. 기자는 시장에서 사 온 고등어의 배를 갈라 보여줬다. 배를 열자마자 고등어 살 사이사이마다 꼬물거리는 작은 기생충들이 움직였다.


 내 미간은 있는 대로 우그러졌다.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했던 나는, 날로 먹는 회부터 찌고 굽고 볶고 끓여 먹는 모든 생선을 참 자주도 즐겼었다. 아마도 어류의 기생충 문제는 예전에도 지속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었겠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그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생물 고등어의 단면 이미지는 매우 강렬하게 내 뇌에 자리 잡았다. 아니, 적어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채식 지향을 하기 전, 수산시장에서 자주 생선을 사 와 요리해먹던 나는 어패류가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공부하고 난 뒤 자연스럽게 수산시장 쇼핑을 끊었다. 나는 이번 피쉬버거 기생충 사건 뉴스를 보면서 그때의 충격과 내가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고등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필이면 고등어였다.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구운 고등어가 먹고 싶었다. 채식 지향을 한 이후로도 먹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면 그 욕구를 요리조리 살핀 뒤에 들어줄만한 욕구들은 들어주는 편을 택했다. 억압하는 편을 택하는 것보다 여러모로 나은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등어가 먹고 싶으면 예전 같으면 고등어를 사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기생충 뉴스를 본 다음날 먹고 싶은 기생충을 품은 생선이라니. 이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했다.


 최근 자크 라캉의 무의식을 이용한 광고 기법에 대해 설명된 부분을 읽었다. 대학교 때 <기호학> 수업에서 자주 (흘려) 듣던 이름이 다시 들어왔다.  나는 봤다고 인지도 못하는 광고 이미지를 0.3초만 스쳐도 내가 그 제품을 선택하게 되는 확률은 높아진다는 실험을 통해 (주로는 극장에서 영화 중간에 코카콜라 이미지를 아주 빠르게 지나가도록 했던 실험이나 성적 욕구를 반영한 이미지 광고가 판매율 촉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이 다뤘던 것 같다) 광고에서 대놓고 '이 제품은 이런 효용이 있으니 구매하세요!'보다 무의식에 박힐만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소비로 이어지는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기생충에 대한 뉴스를 거부하고 고등어의 이미지만 기억하기로 선택했던 것일까? 생선이 길러지고 보관되는 비위생적인 환경이나 몸에 미치는 영향 같은 부정적인 자극이 기억된 짧은 기간보다 생선을 좋아하고 즐겼던 기간이 더 길기 때문에 긍정적 기억이 더 깊이 박혀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쯤 되니 얼마나 많은 음식을 내가 왜곡된 기억으로 선호하고 먹어왔었는지 궁금해졌다. 유제품은 이 안에 들어있는 '카제인'이라는 단백질이 실제 마약과 같은 원리로 우리 뇌에서 중독물질처럼 작용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내가 그릭요거트를 매일 아침 즐겨먹고, 여러 종류의 치즈를 자주 먹으며 즐거움을 느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원리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밖에도 그릭요거트에 과일, 꿀, 그래놀라를 올려 아침을 먹는 것이 '잇 걸'의 고단백 아침 식사로 상징되는 사회적 메시지의 영향을 나는 피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뤼에르 치즈를 녹여 빵이나 달걀 스크램블에 올리거나 24개월 숙성 빠르미쟈노 레지아노 치즈를 작게 갈아 파스타며 수프며 온갖 음식에 뿌리는 그 순간이 '음식 꽤나 즐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소구 되는 것을 내가 얼마나 피할 수 있었을까? 소고기에 쉬라즈가 성공의 상징으로 소구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식을 하며 그들을 구닥다리로 생각하고, 나는 잘 나가는 현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섬세하고 가치 있는 내추럴 와인을 선호한다고 밝히는 과정이 전적으로 내 안의 목소리였을까? 더군다나 나는 사회적 시선과 기준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내 속에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목소리가 너무 많아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쉽지가 않다.


 채식이나 제로웨이스트를 할 때 '이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를 생각하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있었고, 어떤 노고가 있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져 어떻게 배송되어 내 밥상까지 왔는지를 생각해보는 일은 어찌 보면 내 안의 생각과 감정, 목소리를 외부의 것과 구분해 귀 기울여 듣는 명상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처음 채식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 이 음식이 '비건'인지를 따지는 일이 때로는 왜 의미 없고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지난주에 다녀온 템플스테이에서 저녁예불과 아침 예불 전에 타종하는 것을 함께 보면서 마음으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절에서 종만 치는 줄 알았더니, (내가 갔던 법주사가 규모가 커서 그랬는지, 다른 절도 모두 이 세트를 갖추고 있는데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법고, 범종, 목어, 운판 총 4가지를 모두 친다. 북을 치는 것은 짐승을 위한 것, 종은 인간(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한 것, 목어는 바다 생물들을 위한 것, 운판은 날개 달린 짐승을 위해 치는 것이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자연 만물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과 인연을 매우 소중히 생각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큰 스님들에게 연신 꾸중을 들어가며 북을 열심히 치는 젊은 스님이 참 고생한다 싶은 마음과 함께, 자연 만물이 모두 이어져 있고 어떤 생명도 헤치지 않기 위해 채식을 하는 불교의 가르침이 거 참 썩 마음에 든다.


북, 종, 목어, 운판을 치는 소리로 예불 시간을 알린다. 저녁보다 새벽에 타종을 보는 것은 몹시 경건하고 멋지다.


워낙 크기가 압도적이라 법주사의 상징이 되어버린 불상이지만, 오랜 역사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마지막엔 개인의 욕심으로 완성된 다소 얼룩진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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