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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Nov 08. 2022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여행

그런데 이제 깨달은 자와 중생도 가로지르는...

 하동의 차를 처음 만난 건 서대문구 연희동에서였다. 티 소믈리에 분이 운영하시는 차실에 방문해 '티 코스(4가지-6가지의 티를 맛보는 코스)'를 즐겼다. 그때는 막 차를 마시기 시작해 당근 마켓으로 다기를 나눔 받고 대만과 중국의 차들을 몇 가지 사 마시던 때였다. '차는 중국 차지!' 하는 관념이 팽배했으므로, 나 또한 보이차를 포함한 티 코스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중국 차 두 가지와 우리나라 하동의 차를 내주셨다. 티 소믈리에께서는 우리나라에 중국 차 보다 더 나은 차들이 많은데 잘 알려지지 않고, '보이차'만 좋은 차로 인식되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도 있다고 하시며 하동의 차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셨다. 막연히 우리나라에서는 '녹차'만 생산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같은 차 나무 잎으로 녹차뿐 아니라 홍차는 물론 보이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숙성시키는 차의 종류들, 또 이도 저도 아니지만 특별한 고유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왠지 '보이차 열풍'이 너무 과한 것 같아 일단 브레이크를 걸려던 참이었던 터라 나는 '하동 차'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하동의 차실을 방문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정이 맞아서 다녀오게 됐다. 하동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몰랐던 나는 일단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나서야 버스로는 아주 먼 곳에, 기차로는 '구례구 역'에 내려 또 한 번의 이동을 해야 하는 곳에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만 지내다 오기엔 너무 먼 곳이라 개인적으로 하루 더 자고 오기로 했다. 채식인의 여행 안식처인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했고, 하동과 구례 지역에 유명한 쌍계사와 화엄사를 우선 찾아봤지만 단풍 피크 시즌을 맞아 그런지 모두 예약이 마감된 상태였다. 그러다 화엄사 옆에 있는 천은사는 아직 예약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어 더 알아보지도 않고 1박을 예약했다.


#이런 물고문이라면... 대환영입니다.


 도착한 하동의 첫 차실에 나는 완전히 매료됐다. 아주 옛날에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집에 소담한 인테리어들 하며, 사장님 내외분의 에너지며, 차실에 있는 창으로 내다 보이는 감나무와 차실의 구성까지 너무 아름다웠다. 사장님께서는 세작 녹차, 세작 홍차, 유자 홍차 세 가지를 내려주셨다. 하동에서 마시는 첫 하동 차. 은은한 단맛과 살짝 새콤한 맛이 더해져 과일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드는 홍차가 너무 맛있었다.


 같이 여행을 하게 된 사람은 이런 전통 구성의 차를 먹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차는 무한 리필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사장님은 대답하셨다.

 "하동에서는 '차 한잔 하고 가게'하는 말이 곧 물고문을 하겠다는 말이에요."

 그만큼 한 번 차를 마시고자 마주 앉으면 한, 두 잔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사장님은 근처에 거처를 두고 계시는 스님과 낮부터 밤새도록 차를 마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술도 아니고 차를 밤 새 마시다니. 그런 고문이라면 나도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 사장님의 덧붙인 이야기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더니 스님이 아침으로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고. 차를 하도 마셔서 몸에 있던 묵은 기름이 다 빠졌다고. 기름을 쭉 채우면 기운이 펄펄 난다고."

이 곳에서 마셨던 홍차를 사 왔다. 물론 맛있지만, 현지에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었다. 아마도 차를 끓이는 물이 달라서인 것 같다.


#신토불이


 하동에 사는 1300가구 중 1000가구가 차 농사를 짓는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차실 사장님께 여쭤보니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얼추 맞는 말이라고 했다. 온 마을이 차를 농사짓고, 가공하고, 손님에게 판매뿐 아니라 내어 주는 서비스까지, 1차, 2차, 3차 산업이 총집합된 곳이었다. 보성이나 제주와 달리 하동의 차는 70% 이상이 야생차라고 한다. 기업에서 대규모로 밭에 차를 심어서 거두어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길게는 1000년 전부터 있던 차 나무들을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고 매년 가지치기 정도의 관리를 해주다가 찻잎을 거둬 드리는 형식이라고 했다. 차 밭은 지리산의 바위가 많은 비탈길에 주로 있었다. 그 가파른 언덕의 반듯하게 정리되지 않은 야생 밭에서 차를 거둬 드리는 일이 정말 고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위틈을 뚫고 자리를 잡은 차 나무들은 뿌리가 매우 깊어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도 끄떡없이 견딘다고 한다.


 하동의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하동의 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아마도 기업에서 대량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소규모 경영을 하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덕분에 집집마다 차의 맛이 모두 다르고, 집안마다 내려오는 특유의 전통적인 숙성 방식이 있는 곳들도 있었다. 내추럴 와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리적 특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떼루아가 있고, 생산자마다의 스토리와 가치관, 역사가 곧 생산품의 값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동의 차도 잘 알려지면 수익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이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도 들었다.


 하동 차에 대한 자부심은 중국 차와의 비교 설명에서도 느껴졌다. 중국 차가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통 식이, 즉 채식 중심의 기름기가 적은 식이에는 잎이 크고 하강의 기운이 강한 중국 차보다는 우리나라의 소엽 차가 더 맞다는 주장이었다. 설명해주신 사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보이차를 공부하러 중국에 갔을 때 본 작업 환경이나 거래의 투명성 같은 것들을 보더라도 굳이 중국의 차를 큰돈 주고 사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견해였다. 이러나저러나 자연식물식을 추구하는 내 식이에도 하동의 차가 더 맞았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차를 만드는데 많은 노동이 들어간다. 모든 것은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보존되고, 손으로 작업한다. 벽에 있는 차를 팔면 서울에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는요,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방문했던 차실 중 한 곳의 안주인께서는 인도에서 요가를 수련하고 오신 분이라, 다음날 아침 특별히 요가 수업도 해주셨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분께 요가를 배우는 것은 처음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요가라 긴장도 됐다. 요가 후에는 따뜻한 호박차를 내주셨다. 달큼한 호박차가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함께 여행한 분 중에는 50대 중후반의 여성분도 계셨다. 요가 중 선생님께서 그분에게 숨을 쉬는 통로가 막혀있다고, 화를 잘 못 내고 쌓아두냐고 여쭈셨다. 큰 뜻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답변이 이어지지 않았다. 10초에서 20초의 짧지만 긴 정적이 흘렀다.

 '네. 제가 좀 그래요. 말로 표현을 못하고 쌓아 둬요.'

 선생님께서는 특히 여성이 중년의 시기를 잘 보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시며, 요가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꾸준히 수련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옛날 같았으면 예사롭지 않게 들었을 법한 이 짧은 에피소드가 나에겐 특별한 순간으로 느껴졌다. 명상을 하며 호흡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탓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여성분의 정적 끝에 이어진 '네'라는 대답이 대단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요가 후 점심식사를 하는 데 그 여성분께서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아까 요가할 때 선생님이 나한테 숨이 안 내려간다고, 통로가 막혀있다고, 화병이 있냐고 하는데, 너무 뜨끔했어요. 옛날 같았으면 아니라고 부정했을 텐데, 내가 처음으로 인정해봤어요. 그냥 '네'하니까 되더라고. 근데 그 순간 가슴이 뻥 뚫리고 내가 너무 가벼워진 느낌이었어요. 너무 신기했어."

 자기 수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으로 공감됐다. 나에게 화병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졌다는 것. 누구나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만 '이런 나도 사랑해야지'라고 외치던 시절을 지나 자기 수용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고 있는 요즘이라 그런지, 그분의 말이 너무 감사하게 다가왔다.


중생, 깨달음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중생 vs 중생. 팽팽한 싸움.


 하동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구례로 넘아가 천은사로 들어갔다. 천은사 앞에 호수같이 생긴 저수지가 압도적이었고, 절 입구에 그 저수지와 저를 이어주는 문이 있는 공간이 너무 아름다웠다. 절 규모도 크지 않고 아기자기했다.


 다음 날 스님과 차담을 신청했다. 무슨 얘기 끝에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대화가 채식으로 흘러갔다.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가 아니어서 갑자기 주제가 채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였다. 스님은 채식은 영양적으로 부족해서 우유와 계란은 드신다고 했다. 동물권에 대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완전 채식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의 선택이지만, 첫 출가했을 때 절 밥만 먹다가 이가 흔들린 경험을 한 뒤로 가끔 육식을 하시기도 하시고, 우유와 계란은 종종 드신다는 말씀을 갑자기 꺼내 놓으셨다.

'참아야 한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골짜기까지, 그것도 절에 와서 스님과 언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말씀을 끝까지 들었다. 들썩거리는 입술을 앙 다무는 것으로 그날의 수행은 다 한 것으로 치기로 했다. 마침내 스님은 우유와 계란은 누구를 죽이는 것이 아니므로 괜찮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 참을성은 거기까지였다. 이미 전 날 밤샘 차 마시기 끝에 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던 스님 이야기에 한 차례 실망한 탓도 있을 터.

 "스님, 그런데 제가 젖소라면 그냥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대신 계속 임신상태로 만들기 위해 호르몬을 주입하고 아기 젖소를 떼어내야 하고 비 위생적인 환경에서 이 일을 반복하는 것이 더 괴로운 것 같았어요. 계란을 생산하는 닭도 마찬가지고요. 계란의 소비가 있고, 지금 계란을 만들어 내는 방식 때문에 얼마나 많은 수평아리가 기계에 갈려 죽임을 당하는지 알고 난 뒤에 저는 계란과 우유를 찾아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입이 터져버렸다. 오늘의 수행도 망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또 참지 못하고 스님을 이겨먹으려 하고 있네!' 하는 알아차림이 있었지만, 육식을 떳떳하게 여기는 스님 앞에서 나는 마찬가지의 중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채식에 대한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스님은 잠시의 침묵 끝에 화제를 전환하셨다.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육식을 지지하는 의견을 밝힌 스님과, 그 스님 앞에서 참지 못하고 채식의 신념을 밝힌 나. 중생과 중생의 팽팽한 기싸움이었달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차담을 회상했다. 스님은 수행을 하는 사람인데, 수행을 마친 우리와 다른 존재로 신격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종종 엄마는 어떤 엄마이길, 아빠는 어떤 아빠이길, 애인은 어떤 애인이길, 친구는 어떤 친구이길 상대의 동의 없이 바라는 마음이 나를 괴로움에 빠트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스님은 나에게 이런 중요한 메시지를 한번 더 상기시켜 주셨다.

천은사 앞 저수지에서 아침 산책 중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을 보았다.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한참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있었다.


#구례오일장, "아가씨는 참 잘 지킨다!"


 절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기 전, 구례 오일장에 들렀다. 오일장이 서는 것을 미리 알았던 터라 집에서 장바구니와 야채를 담을 주머니들을 넉넉히 챙겨갔다. 밤콩을 예쁘게 까 두신 것이 있길래 주머니를 내밀어 한 바구니를 사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호호호 웃으시며 주머니에 내 콩을 예쁘게 담아 넘기시며 말씀하셨다.

 "아가씨는 참 잘 지킨다! 무슨 말인 줄 아나? 참 잘 지킨다!"

 나는 대답했다.

 "네? 지켜요? 뭐를요? 지구를요?"

 "아니!! 규칙을!!"


 장바구니 하나 내밀고 지구를 지킨다고 생각한 자의식 과잉의 중생을 가르치러 오신 귀인을 구례 오일장에서 만났다. 자만은 지옥이다.

지구를 지키진 못하지만, 검은 봉다리 줄이기를 지킬 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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