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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Dec 04. 2022

몸과 싸우지 않는다는 것

남은 2022 읽은 책들 -2.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역시나 이 책도 책 소개를 하는 콘텐츠에 설득당해 따끈한 신간을 구매하기에 이른 책 중 하나다. 26살 어린 나이에 글로벌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가, 하루아침에 모두 그만두고 태국의 '숲 속 사원'으로 가서 17년간 스님 생활을 했던 저자는 건강 악화와 내면의 목소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다시 고향(스웨덴)으로 돌아왔다. 17년간 '스님'이라는 정체성으로 살다가 속세로 돌아온 그는, 엄청난 불안과 혼란을 겪으며 극한 우울증 상태에서 1년 8개월의 시간을 보낸다. 고통의 시간 끝에 인생에 다시없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강연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루게릭을 진단받고 안락사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가 태국 북부의 '숲속 사원'에서 보내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이나 깨달음의 이야기들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지만 편안하게 와닿았다. 움켜쥔 손을 편안하게 풀어 손바닥을 보이는 것,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음을 수행하는 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두 믿지 않게 된 것이 명상의 가장 큰 성과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통해 듣는 것은 늘 믿음을 강화시킨다. 태국의 불교는 육식을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육식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이든 채식이든 주어지는 것을 먹는 것이지만, 하루 한 끼만 주어진 것을 먹으며 수행을 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얼마 전, 템플스테이 이후 스님과 차담을 하다가 나눈 대화가 내내 떠올랐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채식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동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니 달걀과 우유는 일상적으로 먹고 가끔 나가 고기도 먹는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는 스님을 붙잡고 내적 갈등을 하는 나에게, 그 스님은 태국의 불교는 육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어디선가 스님이 된다는 것은 스님이라는 '페르소나'가 생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과연 내가 스님이라는 페르소나를 신격화했기에 내가 투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그 스님을 보며 불편감을 감출 수 없었다는 것을 다시 되새겼다. 


 저자가 루게릭을 진단받고 점점 몸이 굳어가면서 아내에게 일상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보내는 고통스러운 일상 동안 그의 내면 목소리와 나눈 대화의 핵심은 늘 '몸과 싸우지 않을게'라는 다짐이었다. 17년간 수행을 통해 죽음이라는 개념을 일반적인 관념과 분리하였으니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죽음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온전히 마주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둘 리 없는 현대의학을 거부하면서 병마와 싸우는 내 몸에 감사하고,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그날이 오면 몸을 그대로 보내주겠다고 되새기는 말들을 읽어 내려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며칠이라도 더 살도록 안간힘을 쓰게 하는 것이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나는 과연 죽음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다가올 죽음을 어떤 자세로 맞이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일을 하다가 의학전문지에 우리나라에서 자궁근종 환자수와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작년에 자궁근종으로 자궁수술을 하고 나서 악에 받쳐 토해내듯 여러 데이터를 찾아 글을 쓴 적이 많았다. 그때 발견한 것은 미국에서 자궁근종 환자수가 2000년대 이후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백인의 70%, 흑인의 80-90%가 자궁근종 유병인구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트렌드는 우리나라에도 곧 적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사태에 대해 '조기 진단이 필요하다'는 식의 해결책만 제시하는 현실이 여전히 답답했다. 조기 진단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추이를 살펴가며 끽해야 화학적 호르몬 요법을 통해 근종이 더 커지지 않도록 장치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조카가 요즘 먹고, 생활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자궁 질환 유병율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이를 문제 삼는 이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이도 없다. 


 수년에 걸쳐 몸과 치열하게 싸웠고, 그 이후에 몸과 화해하며 몸에 감사하는 태도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기간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치병으로 인해 내가 내 몸을 의지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왔을 때도 내 몸에 감사함을 전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자신이 없다. 며칠 전 엄마가 요즘 채식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오래 사는 것보다 죽기 3일 전까지 내 손으로 밥해먹으며 귀여움과 깜찍함을 유지하기 위해 채식을 한다고 했다. 3일은 왜 빼냐고 했더니, 그 3일 정도는 내가 밥을 끓여 입에 넣어주지 않을까 예상한다고도 했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늘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이를 끓이고 볶고 무칠 수 있는 몸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고, 매일 땅과 마주해 걷기를 한다고도 했다. 엄마는 진심으로 스스로를 귀엽고 깜찍한 존재로, 그리고 유능하고 사랑이 넘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내 몸을 나는 얼마나 감사한 태도로 대하고 있을까. 


 책의 내용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삽화였다. '토마스 산체스'라는 쿠바의 화가 그림을 여러 장 삽입해뒀다. 숲을 그린 그림들인데, 종종 좌선을 하고 명상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숲이 주는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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