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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an 06. 2023

나의 욕구를 만나는 연말

하동, 제주, 본가에서 보낸 연말 이야기

 연말과 연초를 여행하며 보냈다. 제주도에 갔다가 본가로 가서 새해를 맞이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하동 여행이 추가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느낌으로 열흘 정도를 보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반 정도, 여행 파트너나 가족과 함께 있었던 시간도 반 정도 됐다. 겨울엔 특히 활동을 잘 안 하는 편이고, 아직도 수술하기 전의 내 몸의 상태에 익숙해져 있어서 '피곤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됐다. 아직은 '피곤하면 쉬지 뭐'라는 마음보다 앞선 마음으로 자꾸 늘 피곤하고, 아팠던 나 스스로를 떠올리는 것 같다.


 하동과 본가는 경험이 있는 곳이고, 제주 또한 마르고 닳도록 다닌 곳이지만 그 와중에 새로운 공간들을 경험하며 마냥 호기심 어린 눈으로 즐거워하는 나를 마주했다. 하동은 새롭게 들인 취미인 차를 마시기 위해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 만난 차실 사장님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마음껏 보여주고, 벽 없이 다가가 애정의 에너지를 뿜는, 나의 한 면이 마음껏 솟아 나왔다. 20대에 혼자 여행을 다닐 때 보던 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역시 이런 에너지가 쏟아져 나올 때면 이내 즐거운 일이 생긴다. 하동에서 만난 사장님 중 한 분과는 즐거운 거래를 하게 되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이 거래가 성사될지 그때 가 봐야 아는 것이지만,  그냥 이런 '건수'가 우연히 또 생겼다는 것이 즐거웠다. '밝은 호기심러 나'로 있을 땐 늘 즐거운 일이 일어난다.


 여행 중엔 종종 깊은 '공감'과 '연결'을 갈망하는 스스로를 마주하기도 했다. 여행할 때만 마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연결하고잽이 나'는 나타났다. 사회적 이슈나 현상으로서가 아닌 나의 고유한 경험과 감정을 알아봐 주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좌절되었고, 나는 이내 '쾅'하고 벽을 세워 올렸다. 1등이 아닌 상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카에게 가족들이 하는 말들을 들으며 슬그머니 분노와 섭섭함을 느끼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만나기도 했다. 이 마음을 단칼에 공감해줄 친구와 여행 후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했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단순했다. 아침 일찍 눈을 뜨면 방에 준비된 다기에 하동에서 사 온 차를 우려 마셨고, 잠을 깬 후에 명상 1시간, 요가 1시간을 했다. 그러고 나면 아침을 먹었고, 차실에 가서 차를 마셨다.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산책도 하고 점심도 먹고 다시 돌아오면 오후 요가와 명상프로그램들이 나를 반겼다. 저녁을 먹고 책을 읽었다. 융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사랑에 대해 풀어놓은 책 <사랑의 기술>을 읽으며 과거의 연애들을 곱씹었다.  그리고 이어 읽은 <쿤탈리니 요가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글들 중에 사랑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과거의 연애가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는 내가 연인과 헤어졌다고 하면 '왜? 또 사랑이 끝났어?'라고 묻는다. 내가 매번 헤어진 이유를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애는 정말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식었다. 식은 상태로 질질 끌고 가다가 끝이 났다. <쿤탈리니 요기의 심리학>에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와 동일시하는 것으로 사랑을 시작하는데, 결국엔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상대를 증오하게 되는 순서를 밟는다고 했다. 내 경우가 딱 그런 것 같았다. 전 애인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그 포인트들은 결국 내가 갖고 싶은 면들이었고 나는 그 투사를 하다가 동일시까지 하다 결국엔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증오를 택한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엄마와 동일시함으로써 엄마의 감정을 오롯이 내 것으로 느껴오다가 '와장창'하고 관계를 깨 부심으로서 나와 엄마는 스스로 혼자 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요가원을 바꿨다. 불을 거의 다 끈 채로 하타요가 중-상급을 별 다른 자세한 설명 없이 쿨하게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어김없이 나는 눈알을 굴리며 끙끙거리기만 하는데, 참 이상하게도 이 시간이 너무 좋아졌다. 나는 뭐든 빨리 배우고 뭐든 잘하는 사람이었다. 눈치와 손이 빠르고, 적극적이며 집요한 면도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영 안될 것 같은 것들 - 예를 들어 신체적 조건 때문에 잘 못할 것 같은 운동 종목들-은 안 하기 때문에 난 어디서든 '못하는 사람'이 잘 되지 않는 편이었다. 어두컴컴한 요가원에서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뭘 못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수업을 잘 못 따라가고 있지만,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연결하고잽이'도 '밝은 호기심러'도 매번 '사랑이 끝난 나'도, 요가매트 위에 서면 그냥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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