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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Feb 23. 2023

저마다의 세계

프로젝터가 보여주는 보는 각자의 세상

 내가 보는 세계가 남들에게도 똑같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아마도 난 믿지 못했을 것이다. '개성 존중'정도로 가볍게 느꼈던 말들이 요즘엔 깊이 이해되고 있는 것도 같다. 사람들마다 겪어온 역사와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 저마다의 프로젝터 필터가 된다. 그 필터를 통해 '투사'된 것들을 절대적 사실이고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그에 대한 생각과 반응은 사람들마다 정말 천차만별인 이유도 '투사'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아무것도 같을 수가 없다. 


 채식지향을 하면서 '투사'에 대해 자세히 쓰인 '나의 비건친구들에게'라는 책을 읽었다. '비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얼마나 각기 다른지, 그리고 그 사람들의 반응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모두 투사일 뿐이라는 점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이제 고기를 그만 먹기로 했어'라는 말을 '고기를 먹는 너는 건강하지 못할 거야' 혹은 '나쁜 사람이야'로 받아들이고, '네가 언제부터 고기를 안 먹었다고'부터 시작해서 '고기를 안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해서 결국 건강하지 못하게 될 거야'같은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라는 걸 이해해야, 채식지향인으로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들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백번 천 번 채식을 한다고 지인들에게 말해도 굳이 약속 장소를 고깃집으로 잡는 상황을 매번 마주하면서 '어떻게 내 말을 이토록 무시할 수 있어'라고 반응한다면 이 또한 내가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고립될지 모른다는 불안이나, 여전히 내 몸은 고기를 먹고 싶지만 꾹꾹 참고 있는 걸 들켜버려 부끄러운 마음이 투사되고야 만다. 


 회사에서 '강점혁명'이라는 업무상 개인의 강점을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는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전략', '아이디어', '경쟁'같은 내 강점을 보고 '남들이 실수하면 굉장히 엄격하게 대할 것이 분명하니, 이를 조심하라'라고 말한 사람의 강점은 '심사숙고'와 '공정성'같은 것이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던 모더레이터는 '실수를 용납하기 어려운 쪽은 오히려 본인'이라며 투사를 지적했다. 나는 실수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편한 쪽이고, 다만 전략이 없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최근의 투사는 공감에 대한 것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보게 된 영상에서 '공감'도 결국엔 투사라는 점을 지적했다. 공감 능력이 많다고 자평하는 사람들도 결국 선택적으로 공감한다는 것. (그놈의) MBTI 때문에 공감형 사람인지 지능형 사람인지를 나누는 통에 나는 철저하게 '공감형' 인간이 되었지만, 나조차도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의 성공에 내 일처럼 기뻐하거나, 모든 이들의 아픔에 똑같이 공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냉정하게 알아차려야 했다. 특히 '공감 능력이 많아 괴롭다'는 말은 결국 내가 투사하는 어떤 면에 집착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특히 깊이 남았다. 혼자 아픈 친구들을 보면 가만 두지 못하고 상식적인 선 이상으로 친구들을 '건져 올리듯' 도와줘야 직성이 풀렸던 경험들은, 물론 친구와 연결되고 싶은 우정의 마음이 컸지만 그 이면에는 늘 아프고 예민한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맹장염으로 바닥을 구르듯 배가 아파도 엄마가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혼자 방에서 앓아야만 했던 내 과거를 투사한 것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https://youtu.be/Jep5KQzR71M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 또한 투사일 수밖에 없다. 힘든 소리 하는 걸 듣기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아주기보다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것 또한 '성취적 자아'의 투사다. 나약한 모습, 실패하고 포기하는 모습을 용서하지 못하는 내 내면아이는 밖으로 투사되어 감정적으로 문제를 대처하는 모습에 엄격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https://youtu.be/wv3q12Ko590


 투사를 멈출 수 있냐고? 글쎄. 어차피 나의 역사로 겹겹이 만들어진 단단한 투사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이 이토록 멈출 수 없는 당연한 것이라면 이를 알아차리고 흘려보낸다고 없어질 수 있을까? 투사를 이해하고 내 반응과 마음을 알아차리며 그때마다 중심을 나로 가져오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내가 끼고 있는 투사 안경을 통해 비친 세상이기에,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내가 만들어 낸 일이라는 것을 아주 조금씩 이해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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