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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May 24. 2021

아픈 사람한테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위로도, 농담도, 넘겨짚는 말들도 사양합니다.

 미리 매를 맞고 시작하자면 나는 몸이나 마음이 아픈 지인이나 친구, 가족, 그리고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위로랍시고 상처 주는 말들을 내뱉었거나 농담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시도를 해왔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행여 꿈에라도 내가 그런 말을 내뱉어 상대에게 상처를 준 정확한 상황의 기억이 떠오른다면 아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사람에게 늦은 사과의 말을 건네고 싶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정확히 떠오르는 바는 없이 '혹시라도 내가 그랬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내 마음만 짓누르고 있을 뿐이다.


"젊은 사람이 왜 아프고 그래요."

 두 번째 응급 수술 후 회복한 나에게 몸이 괜찮냐고 물으며 회사 동료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화상회의 중이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겸연쩍게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많이 힘들었겠어요. 괜찮아졌다니 다행이에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요."라는 말이 낯간지러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겠지 싶지만, 막상 그 말을 들었을 그때 나는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참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사람은 안 아픈가요? 일하면서 수 없이 환자들을 만나셔야 되는 분이 자세가 안되셨네요."

 나는 홧김에 이 말을 쏟아내지 않은 게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후련한 마음보다 화를 참지 못하고 즉각 대응했던 나 자신의 미숙함에 대한 실망이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초간의 침묵이었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대화가 아닌 상태에서 그런 침묵은 서로를 수십 배로 더 긴장시킨다.

 "다행이에요. 괜찮아져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 침묵을 통해 분노와 당황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 진심은 아닌데 말이 자꾸 뇌를 안 거치고 나오는 거, 나도 알지.'


 두 번째 응급수술 때 의료사고가 일어났다. 나는 이 사고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업계에 있는 지인에게 조심스럽게 자문을 구했다. 나는 지금도 이 사고에 대한 얘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수 없지만, 수술 후 회복도 미처 다 되지 못했을 그때 내 마음은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못 먹고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사람 같았다.

 "너무 그것만 생각하지 마. 얼른 털어버리고 복귀해야지."

 마찬가지로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이 일이 너무 괴롭고 억울한데, 듣는 상대는 그냥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언제 있었냐 싶게 잊을 수 있는 일이었을까. 딱히 의미 있는 자문을 얻지도 못해 짜증은 배가됐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암환자들이 상처 받는 위로의 말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젊은 사람이 왜 암에 걸렸는지를 물어보는 말들, 요즘 암은 다 완치된다더라 하는 말들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예전에 짜증이 나는 상황을 두고 ‘암 생길 것 같다.’ 고 하는 말이 얼마나 무례하고 부적절한지도, 그렇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이 기사를 읽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자궁적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예상치 못하게 응급수술까지 연달아했었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다들 완치 한데. 힘내!'라고 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경험하지 않아도 배운다더니 나는 겪고 나서야 겨우 깨닫고 있다.

(중앙일보 기사의 링크 : https://news.v.daum.net/v/20210522090105423 )


 몸이 아프면 다 아프다. 내 몸이 이렇게까지 아픈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버거운데 사력을 다해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머리가 복잡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내면에서 프로세스 하느라 바쁜데, 자꾸 너 어디가 아프냐느니, 왜 그렇게 됐냐느니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 중에 실제로 회복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궁 적출을 하고 나면 여성 호르몬이 부족해져 관절이나 뼈가 약해지거나 피부에 탄력이 없어질 거라는 둥, 아무래도 적출은 안 하는 게 낫다는 말을 면전에 대 놓고 하는 사람들 (실제로 있었다!) 중에 의학적으로 맞는 말을 한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의사인양 넘겨짚고 쏟아내는 말들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생각도 안 하는 무례함이요, 본인의 의견이나 판단을 묻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자의식 과잉이다. 무엇보다 사실도 아닐뿐더러.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는 말, 아프면 외로울 테니 같이 있어 주겠다는 말, 필요한 거 없냐는 말, 움직이기 어려울 테니 청소를 도와주겠다는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조용히 말없이 좋아하는 과일이며 먹을거리들을 집으로 보내준 친구들도 있었다. 얼굴을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가 기도문을 보내주기도 했다. 더 깊이 묻지 않고, 그저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이들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왔다. 지난 5개월간 나는 이들 덕분에 몸뿐 아니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종교와 관계없이 좋은 말인 것 같아 보낸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 준 기도문.  자주 꺼내 소리 내어 읽어본다.


 취미로 타히티의 전통 무용인 오리타히티를 몇 년째 배우고 있다. 같은 남태평양 지역의 춤인 훌라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복부의 강한 코어 힘으로 골반을 움직여 추는 춤이기 때문에, 공연을 하는 댄서들도 배가 보이는 의상을 많이 입지만, 연습할 때 스스로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배가 보이는 탱크톱이나 크롭탑을 입는 경우가 많다. 3월 수술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큰 상처가 배에 남게 됐다. 나는 이 상처가 아직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이 어색하고 싫다. 회복 후 처음으로 수업에 간 날에 나는 배를 모두 덮는 옷을 입고 연습했다. 그다음 주 연습시간에는 급히 집에서 나가느라 나도 모르게 크롭탑을 챙겨 나갔다. 나는 내가 배가 훤히 보이는 옷만 챙겨 왔다는 것을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서야 깨달았다. 흰 셔츠를 입고 춤을 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크롭탑을 입고 연습했다. 춤을 추는 내내 '선생님이나 언니들이 내 배에 상처만 보면 어떡하지?' '행여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또 대답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수업을 마치고 다 같이 연습실을 나와 수다를 떠는 동안에도, 그리고 그다음 주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나에게 배 상처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 오리타히티 연습을 다시 하고 난 이후로 나는 이 상처가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을 아주 많이 받아들이게 됐다.


 결국 누구를 내 곁에 두고,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과 생을 살아갈 것인가의 선택이 내 몫으로 남아있다. 무례하고 상처되는 말들을 흘려보낼 기력과 용기, 힘이 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할 정성과 마음이 필요하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눈을 보고 고맙다고 인사할 용기도 없어 나는 오늘도 그래놀라를 엄청나게 많이 구웠다. 그래놀라를 건네며 '그때 진짜 고마웠어!'라고 말해야지.


일을 벌이면 대차게 벌인다. 크랜베리를 넣은 달콤한 맛<sweet like you>, 시트러스향이 나는 <siglover>, 메이플시나몬피칸 맛의 <naughty nu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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