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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으로 근사한 파티를 할 수 있을까?

점심을 7시간 동안 먹었다.

by 망원동 바히네

채식 지향, 그중에서도 자연식물식을 지향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횟수가 줄었다. 기름 사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니 올리브 오일을 콸콸 부어 만들던 양식요리들을 차려먹는 것도 이전보다는 뜸해졌다. 두 가지가 합쳐지니 결론적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이태리 요리를 대접하며 몇 시간이고 먹고 마시던 홈파티를 안한지 몇 달쯤 됐다. 내가 먹지 않는 고기나 생선요리를 차려 내놓는 것이, 채식 지향의 첫걸음을 막 뗀 나에게는 너무 큰 고문이었다. 음식을 대접받은 이도 편한 마음은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집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친구의 시골집에 내려가 치열하게 길러낸 채소들도 잔뜩 얻어온 터라 친구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시골에 같이 갔던 친구를 포함해 총 세 명을 초대했다. 모두 채식 지향 모임을 같이 하고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덜했다. 언젠가 채소만으로 근사한 파티음식을 차려내고 싶다는 목표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치즈와 해산물이 주를 이루던 내 파티음식 주 종목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메뉴는 총 6가지였다.

- 치아바타 2종과 2종의 딥 (애호박 잣소스, 비건버섯뒥셀)

- 로메스코 소스와 감자, 꽈리고추 구이

- 속을 채워 구운 피망과 토마토

- 시나몬 단호박&당근 샐러드

- 토마토소스에 버무린 가지 미트볼과 생면 파스타


파티 당일 오전에는 일이 있어 소스나 가지 미트볼은 하루 전에 미리 만들어두었다. 애호박 잣소스는 애호박과 잣을 구워서 갈기만 하고, 마지막에 레몬즙과 크러시드 레드페퍼를 뿌려냈다. 버섯뒥셀은 '로컬릿'셰프님의 레시피를 참고했다. 표고버섯, 새송이버섯, 양송이버섯을 양파와 함께 올리브 오일에 볶다가 화이트 와인을 넣어 풍미를 올린 뒤 저온에서 천천히 수분을 날려 마지막에 핸드블랜더로 갈았다. 소금, 후추 간만 하면 간단한 페이스트가 된다. 로메스코 소스는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구워 껍질을 벗긴 뒤, 아몬드와 함께 갈아 냈다. 간단한 소스들은 만들어두면 파스타, 빵, 크래커와 같이 곁들여먹기도 좋다.


가지 미트볼이 문제였다. 채식 지향, 그중에서도 자연식물식에 가깝게 해 보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가공육은 아직까지 손이 가지 않는다. 때문에 굳이 애써서 고기처럼 보이는 요리보다는 원래부터 채소 요리였던 요리들을 많이 해보려고 한다. 고기를 조금 더해 맛을 올리는 요리들은 고기를 버섯이나 콩으로 바꿨을 때 맛이 더 가볍고 풍부해지기도 한다. 가지 미트볼은 원래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요리다. 옛날에는 누구나 흔히 고기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니, 가지를 이용해 미트볼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물론 원래의 레시피에는 페코리노 치즈와 계란이 들어간다. 나는 처음으로 '뉴트리셔널 이스트'를 치즈를 대신해 사용해보기로 했다. 계란은 반죽을 뭉치는 용도이니, 우선은 제외했다.


'뉴트리셔널 이스트(영양 효모)'는 비건에게 부족할 수 있는 비타민B12를 비롯한 여러 영양소를 강화해 놓은 건강보조식품이다. 치즈처럼 살짝 '꼬릿 한' 향이 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타민, 무기질 섭취 측면에서 해외 비건들에게 애정을 듬뿍 받는 식재료 중 하나다. 뉴트리셔널 이스트와 캐슈넛을 이용해 여러 가지 비건 치즈를 만들기도 한다. 천연 유래 성분이지만 몇몇 영양소들은 하루 필요 섭취량을 지나치게 넘어버리는 것들도 있고, 나이아신이나 핵산도 포함되어 있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인공적으로 첨가해 강화된 영양소들-예를 들어 엽산의 경우- 을 필요량 이상 섭취하면 신장이나 갑상선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뉴트리셔널 이스트'는 특히 초보 비건들에게 파르미쟈노 치즈를 대신할 수 있는 제품이라, 마음 놓고 여기저기 뿌려먹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소량을 적절히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영양소 섭취 측면에서 권장되고 있다. 대충 검색을 해보니 직구로 판매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구매를 망설이기도 했다. 집 근처에 뉴트리셔널 이스트를 소분 판매하는 상점이 생기기도 했고, 파티음식에 소량 넣어볼 요량으로 유리병에 덜어서 구매했다.


뉴트리셔널 이스트. 1.5큰술만 먹어도 몇몇 영양소는 너무 과하게 섭취하게 되는 수가 있다. 하지만, 이따금 먹어주면 필요 무기질 섭취에 도움이 된다.


가지를 구워 속을 파내고, 여기에 빵가루와 다진 파슬리, 뉴트리셔널 이스트, 다진 아몬드, 마늘 콩피, 소금, 후추를 넣어 반죽해 작은 볼 모양으로 성형했다. 표면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에어프라이어에 구워냈다. 20개가 좀 덜 되는 볼을 만드는데 가지 10개를 구워 넣었다. 가지 부자만 만들 수 있는 요리! 시골에서 가지를 따왔기에 만들 수 있었다. 기름에 튀겨내면 더 맛있었겠지만 소스에 버무려 먹을 것이기도 하고 기름을 많이 쓰기도 싫어서 구워냈는데 그럭저럭 겉 표면은 마음에 드는 질감으로 나왔다. 가지의 맛도 살아있고 풍미는 괜찮았다. 뉴트리셔널 이스트도 제 할 몫은 했다. 문제는 질감이었다. 반죽을 오래 한 것은 아닌데 살짝 질척한 느낌이었다. 오래 치대듯 반죽한 것도 아닌데 떡갈비 같은 질감이었다. 조금 더 가볍고 산뜻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세몰리나 듀럼밀에 물만 넣고 반죽해 파스타도 만들었다. 친구들을 초대하면 가능한 한 생면을 만들어 주고 싶다. 채식 지향인에게 가장 많이 쏟아지는 질문은 '단백질은 어디에서 얻어?'일 것이다. 세몰리나 듀럼밀의 영양성분표를 보면 좋겠다. 품종도 다르고 도정 과정도 다른 흰 밀가루에 계란을 넣어 반죽한 면과 세몰리나 듀럼밀에 물만 넣고 반죽한 반죽의 단백질 함량은 비슷하다. 무엇보다 막 반죽한 생면은 맛있다! 흔히 먹는 건면에서 찾을 수 없는 투박하고 쫄깃한 맛이 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개성이 드러나는 생면 파스타는 파티에 초대된 게스트가 함께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면 더욱 기억에 남는 식사가 될 수 있다.

바빠서 게스트가 다 만들어준 생면파스타. 떡볶이 아닙니다. 아니고요.
100g의 밀가루에는 13g의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속을 채운 파프리카와 토마토 요리는 그리스 대표 요리 중 하나인 'Gemista'를 비건식으로 변형했다. 고기와 치즈를 빼고, 표고버섯과 렌틸콩, 아몬드가루를 더했다. 오레가노와 민트로 향을 올려 속을 만들고 속을 파낸 야채에 채워 구우면 채소만으로도 풍성한 맛이 올라온다. 흰쌀 대신 귀리와 율무로 속을 채워 건강에도 좋다. 예상 가능한 맛이지만, 중간중간 씹히는 표고버섯맛이 재미있기도 하고 가볍지만 풍성한 채소만의 감칠맛이 즐겁다. 곁들인 단호박 샐러드는 시나몬과 메이플 시럽에 단호박을 묻혀 구워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Gemista를 만들고 남은 곡물과 콩을 함께 활용했고, 당근도 길게 썰어 단호박과 같은 소스에 묻혀 구웠다. 간단한 레몬 드레싱에 야채와 곡물, 콩을 버무려 깔고 위에 구운 단호박과 당근, 견과류를 얹어낸다. 큰 접시에 크게 담아내면 더욱 근사하다.

Vegan Gemista와 시나몬 단호박 곡물 샐러드

상이 다 차려지면 와인을 따야 한다. 친구들이 사 온 와인과 내가 가지고 있던 와인까지 총 4병을 마셨다. 한 사람당 한 병을 마신 꼴이지만, 7시간에 걸쳐 마셨기에 파티가 끝난 시점 우리 모두는 너무 멀쩡했다. 물론 호스트인 내가 중간에 30분 정도 들어가 눈을 붙이고 나오긴 했지만... 친구들이 가지고 온 것들로 파티의 마무리를 했다. 깐 밤은 구워서 내고, 말렸다 뻥튀기로 튀긴 무를 우려 차를 마셨다. 몸이 따끈하게 데워졌다. 무차와 군밤이라니. 이제 정말 어쩔 수 없는 가을이다. 친구들을 배웅하러 나갔더니 바람이 시원했다. 누가 점심을 먹으러 와서 7시간이나 먹다 가냐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여름내 그렇게 나를 괴롭게 하던 습기도 사라졌다. 영락없이 하늘은 낮동안 새파란 쪽빛을 뿜다가 밤이 되면 더 높아진다. 신나게 먹고, 마시고, 웃으며 보낸 일요일 오후. 함께해준 이들 덕분에 충만했다. 고기와 유제품 없는 파티. 대접한 이 만큼 대접받은 이들도 모자람 없었다 추억했으면!

주의: 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습니다. 다만, 이따금 친구들과 모여 잔을 맞대는 일은 정말 너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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