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경 준비

네 호르몬을 네가 궁금해 말라.

빈혈 수치 5에서 13이 되어 기쁜 나머지.

by 망원동 바히네

‘자기 관리' 꽤나 한다는 요즘 젊은이 들치고 헬스장을 포함한 실내 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운동을 하겠다고 일단 등록을 하는 날부터 우리는 ‘인바디'라고 하는- 도무지 무슨 원리로 내 몸을 분석하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기계에 올라 우리 몸을 읽어 내려간다. 몸무게는 얼마인지, 그중 뼈와 근육의 양은 얼만큼인지, 지방은 얼마나 있는지, 단백질, 무기질, 수분은 얼마나 섭취하고 있는지, 운동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얼마의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는지 낯낯이 파헤친다. 내 몸을 상체와 하체로 나누고, 또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눈 다음 각 부위에 근력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지도 볼 수 있으며, 내장에 지방이 얼마나 있는지 조차 그 찰나의 순간에 피 한 방울 뽑지 않고 분석이 된다.


생각해보면 내 몸에 대해 이렇게 구석구석 어려운 분석을 해 내는 기계가 이렇게까지 모두에게 익숙할 일인가도 싶다. 두 달에 한 번은 ‘인바디' 기계 위에 올라가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 또 이전에 쟀을 때와 꼼꼼히 비교해가며 운동을 하는 것이, 운동을 그토록 싫어하는 나에게 조차 익숙한 일이다. BMI니 근골 격양이니 하는 용어가 뭘 의미하는지도 우리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 몸무게, 근골격량, 체지방률을 체크하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자기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자궁적출 수술을 받고 난 이후, 수술을 받았던 종합병원 산부인과를 포함해 총 세 군데의 산부인과를 찾아 성호르몬과 갑상선 호르몬 수치 검사를 요구했다. 내가 호르몬 검사를 원한 이유는 의사가 호르몬 검사를 먼저 제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냥 생각해도 양쪽 난소를 모두 보존했다 하더라도 난소로 향하는 혈액의 흐름이 줄어들 것이 분명한데, 무슨 수로 내 난소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낼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수술을 해준 의사는 난소를 보존하고 자궁을 적출한 여성에게서 폐경은 고작 1년 정도 빨리 진행된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지만, 수술 후에 ‘과연 진짜일까?’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종합병원의 마지막 외래 날, 난소 기능 검사를 받았다. ‘정상'이라는 합격통보를 받았지만, 난소의 기능이 ‘얼마나’ 정상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몇 달간 나는 여성의 성호르몬에 대해 집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책과 논문을 있는 대로 뒤졌고, 같은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유튜브와 환자단체를 통해 읽어 내려갔으며, 한풀이처럼 글을 써 내려갔다. 이는 내가 2021년을 살아내는데 몹시도 중요한 과정이었고, 아마도 관짝뚜껑을 닫는 날 ‘아, 그때 참 그러길 잘했지'하는 순간으로 꼽힐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어쨌든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당장 산부인과를 찾아 내 호르몬과 난소의 상태를 검사해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제일 걱정됐던 것은 수술 이후에 여전히 내 에스트로겐이 너무 높고 프로게스테론은 더욱 낮아져 호르몬의 불균형이 더 심해지거나 여전히 불균형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였다. 만약 그럴 경우 유방이나 난소, 갑상선 등 다른 호르몬에 영향을 받는 신체기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갑자기 혈류가 끊겨버려 몹시 놀랐을 내 양쪽 난소들이 이제 그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적응을 못한다고 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내 기초대사량이 1200을 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꾸준히 인바디를 측정하는 것처럼, 나는 내 난소들의 안부를 묻고 싶었다.


폐경이 1년 정도 일찍 올뿐이라고 하더라도 ‘폐경 전기(perimenopause)’가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폐경 전기'라는 개념은 나에게도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갱년기'나 ‘폐경기'와는 또 다른 것이다. ‘폐경'은 곧 월경을 하지 않음으로써 알게 되는 신체적 변화인데,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생식기능이 쇠퇴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간을 ‘폐경 전기'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자연스러운 기간에 여성이 경험하는 신체적 변화와 질병, 증상이 산업화 이전과 이후에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만성적으로 에스트로겐이 과한 현상과 더불어 여러 가지 호르몬의 불균형을 복합적으로 경험하는 요즘 여성들에게 폐경 전기는 훨씬 더 빨리 찾아오고, 더 오래 지속된다. 월경을 할 정도의 호르몬이긴 하지만 균형이 깨져있어 생식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이것이 호르몬 불균형을 가속화하게 된다. 때문에 폐경 전이지만 이 기간에 이미 폐경 이후에 흔히 나타나는 골다공증과 같은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골다공증이 늘고 있다!’는 기사들은 흔히 봤지만, 주로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호르몬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이 설명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매 달 피를 쏟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듯, 매달 피를 쏟는 것만으로 우리 건강을 확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호르몬 불균형 상태에서 난소로 가는 혈액량이 현저히 줄어든 나의 경우에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묻고 물어 찾아간 페미니즘 중심의 산부인과에서도 이런 설명을 더 들을 수는 없었다. 내가 지금 내 몸에 대해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검사를 통해 인바디를 재듯 내 몸을 잘 살피고 싶은지를 얘기했다.

“원하시면 검사를 해드릴 수는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요.”

“왜요? 검사가 필요 없는 이유는 뭔가요?”

“뭐가 잘못돼 있다고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호르몬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네. 호르몬 대체요법 치료를 받는 건, 실제로 열감 같은 폐경기 증상을 느끼고 난 이후에 하셔도 괜찮아요.”

“저는 근데 호르몬 불균형 상태가 지속돼서 유방암이나 다른 질병 위험에 노출되는 게 싫어요.”

“음…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특별히 없어요.”

나는 이 대화를 나와 나눈 의사의 실력이 모자라거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무성의하고 무례한 의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이 의사는 현대 의학이 만들어놓은 프로토콜 안에서 최선의 대답을 성심성의껏 했을 것이다. 나는 여느 병원과 달리 오랜 시간 동안 이 의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을 하기도 했고,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일부는 공감하는 듯했다. 다만, 아직까지 현대의학은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조차도 없을 뿐.


내가 호르몬 검사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것 중 하나는 나와 비슷한 수술을 받은 30-40대의 유튜버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고 (미국은 자궁적출을 몹시도 흔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도한 자궁적출을 시행하는 것으로 비판받고 있기도 하다.), 타액으로 하는 호르몬 자가검사(타액을 검사지에 묻혀 실험실로 보내면 결과지를 집으로 보내주는 시스템)가 어렵지 않은 국가에 거주하는 이득을 충분히 누리며 자신의 호르몬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수술 이후에도 여전히 그들의 에스트로겐이 과도하게 높은 것을 확인하였고, 그에 비해 프로게스테론은 수술 전보다도 더 낮아져 호르몬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각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호르몬의 균형을 향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식단을 채식 중심으로 바꾸고, 환경호르몬을 최대한 차단하였으며, 운동을 이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며, 명상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려고 애썼다. 나는 지난 몇 달간 내가 광기에 가깝게 집착해 내린 결론과 그들의 현재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모종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나는 돌고 돌아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갑상선과 여성호르몬 검사를 받았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났고, 그 사이 나는 건강한 채식으로 밥상을 바꿔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꾸준히 운동도 했기에 살짝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 호르몬이 엉망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그만큼 커져갔다. 오랫동안 빈혈치료를 받아 혈관이 망가졌기에, 채혈을 할 혈관을 찾는 것도 어려웠고 가까스로 주삿바늘을 꽂아 넣어도 피는 나오지 않았다.

“찔러도 피안 나오는 분 오랜만에 오셨네요.”

내 혈관에 익숙한 간호사는 내 얼굴보다 핏줄을 먼저 알아봤다. 가까스로 피를 뽑아 실험실로 보내졌고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에스트로겐은 날뛰지 않았고, 황체호르몬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정상범위였다. 세상에나. 결과지를 받아 든 손에 안도가 내려앉았다. 호르몬은 매일매일 달라지는 수치이고, 월경을 하지 않는 나의 경우 측정하는 시기에 따라 정도가 매우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유튜브에서 보던 사람들의 경우보다 좀 더 나은 결과라는 점에서, 나는 그 간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어떠한 불안이 잠시나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다만, 갑상선 호르몬의 경우 관리가 좀 필요해 보였다. T3와 T4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TSH는 정상범위의 경계선을 조금 벗어나 있었다. 의사는 걱정하거나 치료를 받을 수치는 아니니, 3-6개월 뒤에 한번 더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내 호르몬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준 책 ‘여성호르몬의 진실(what your doctor may not tell you about menopause)’에서 본 구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약물치료로 조정이 가능한 T3와 T4는 지극히 정상범위에 있는데 TSH가 살짝 과한 경우, 대부분은 에스트로겐의 과다와 프로게스테론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증상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호르몬에 대해 파지 않았더라면 원인 없이 나타나는 내 몸의 이상 징후와 마뜩한 설명을 해 내지 못하는 의사에게 답답함만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갑상선 호르몬 또한 안정적으로 정상범위 안에 들도록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어떠한 자신감이 좌절이나 허탈함을 누르고 있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맞이할 폐경의 순간. 매 달 피를 쏟지 않는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서른다섯에 맞은 혼란을 넘어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맞이하고 싶은 그 순간을 위하여.



이쯤에서 톺아보는 내 몸의 기록.

자궁적출 수술 10개월 차. 채식 지향 약 100일쯤.

체중 약 4kg 감량.

빈혈 수치 13.8 (늘 6 미만이던 수치…)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지극히 정상.

여성호르몬 그럭저럭 정상.

갑상선 호르몬 귀추가 주목됨.

주 2회 달리기, 주 1회 필라테스, 주 1회 요가, 주 1회 오리 타히티를 하고도 혓바늘이 돋지 않는 체력으로 성장.

집 나간 줄 알았던 성욕의 귀환, 관계시 질 건조나 통증의 문제 전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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