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지긋지긋한 에스트로겐이여
내가 자궁적출 수술을 받는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내 '여성성'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며 석류즙과 홍삼 같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그런 선물들의 포장지에는 공통적으로 '갱년기'라는 말이나 '아름다움!'같은 말들이 붙어있곤 했다. 석류나 홍삼에 다른 영양소도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석류즙이나 홍삼은 중년 여성에게 중요한 건강기능식품처럼 소비되고 있기도 하다.
에스트로겐!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고 지겨운, 아직은 나와 좀 더 화해가 필요한 그 호르몬. 젊었을 때는 원치도 않는데 과해서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것이, 나이가 들면 더 갖지 못해 안달이 나야 하는 존재라니. 에스트로겐 과잉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이 내 젊은 날들에 행한 짓들을 생각하면 나이 들어, 혹은 수술 후에 에스트로겐이 얼마나 부족하든지 간에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주 꼴도 보기 싫은 존재였던 때가 있다.
완경기의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이 부족하다는, 그래서 인위적으로 에스트로겐을 보충해 줘야 한다는 발상의 시작은 역시나 제약회사였다고 한다. 산드라 코니의 <폐경 산업 : 여성은 의료기관에 어떻게 이용당하는가 (The menopause industry : how the medical establishment exploits women / Sandra Coney)>에서 저자는 완경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호르몬 치료가 1960년대부터 대중화되었고, 완경기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닌 인생의 변화와 관련된 '신경성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만병 통치약으로 홍보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완경기 이후의 노인 여성들을 "여자도 아니고, 신경이 날카로우며, 매력이 없다"는 편견을 키워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호르몬 치료, 정확히 말하면 합성 에스트로겐을 처방하는 치료 시장을 키웠다고 한다. 에스트로겐 보충요법은 자궁내막암과의 연관성이 확인되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치료를 통해 얻는 혜택에 비해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 권고하지 않는 치료가 됐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호르몬 대체요법(에스트로겐과 합성 프로게스테론을 함께 처방)은 표준치료로써 흔히 행해지고 있다.
산드라 코니는 완경기 여성이 실제로 완경으로 인한 신체적 증상이 얼마나 심한지 연구했는데, 완경기 여성의 대다수가 건강하지 않다거나, 몸이 쇠약해진다거나, 성욕을 잃는다는 주장에 대해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완경기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포지셔닝한 것은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반면, 합성 에스트로겐 치료는 경미한 증상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심혈관질환이나 심각한 암의 발생에 이르는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켰는데, 이 이유는 인체의 에스트로겐과 구조가 다른 에스트로겐이 과도하게 체내로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여성 호르몬의 진실 (what your doctor may not tell you about menopause)>을 쓴 존 리(John R.Lee) 박사는 책에서 산업화한 문화권에서만 완경의 불쾌한 '증상', 즉 안면홍조나 질 건조, 극심한 기분 변화들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원시 문화에서 완경기는, 여성이 출산의 시기를 완료하고 자기 발견과 영적 자각의 심도 있는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때라 하여 조용히 축하를 받았다고 한다. 비로소 현명한 여자가 된다는 것이라고.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완경에 대해 과거보다는 부정적 시각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월경을 하지 않는 나이가 많은 중년 이상의 여성은 '여성성을 잃은' '이런저런 병이 걸리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 엄마만 하더라도 완경 시에 '이제 여자로선 완전히 끝났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이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있다. 10대에 월경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우리는 여성이었고, 나의 수술 후에도, 엄마의 완경 후에도 우리가 여성인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딩동댕동' 무언가 끝나는 슬픈 종소리처럼, 완경은 그런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여전히 안타깝고 답답하다.
에스트로겐 보충 치료의 시대를 연 제약업계가 대중매체의 조작을 통해 에스트로겐 대체요법을 흥하게 한 것에는 문화적 환경이 핵가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존 리 박사는 설명했다. 당시 미국은 아버지가 나가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오븐에 쿠키를 굽거나 아이를 돌보는 사람의 이미지가 대표적이었다. 극단적으로 '여성성'이 강조된 마를린 먼로가 '이상적인 여성상'이 되었던 시기였으며, 여성들은 성적으로 남편을 만족시키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양육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던 여성들에게 완경기에 자녀들이 다 커서 집을 나가고, 머리는 희끗해지고 가슴이나 엉덩이가 늘어지는 몸을 가져 남편에게 성적인 매력을 갖지 못하면 그들에게 존재의 가치가 없다는 식의 메시지가 흥했던 시절이다. 에스트로겐 대체요법은 이런 여성들의 불안에 기름을 들이부으며 활활 타올랐다.
반백년이 흘렀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뀌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자궁적출 수술을 할지 말지를 고민할 때, 그리고 하고 나서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여전히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은 젊음의 묘약이요 남성들에게 섹스어필을 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겨졌다. 미국에서 시작된 '젊은 여성을 만들어 주는 신비의 묘약'의 마케팅이 반백년 세월을 거스르진 못했나 보다. 그 사이 호르몬 대체 치료는 많이 연구됐고, 형태 또한 변했으나 사람들의 사고를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완경기 여성, 정확히 말하면 그 나이대의 여성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신체적 변화가 꼭 호르몬의 변화로만 해설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 나이대의 남성에게서도 비슷한 신체적 변화는 일어날 터인데, 그렇다고 해서 남성들이 여성만큼 와이프에게 여전히 '섹시한 남편'으로 남기 위해, '영원히 젊은 오빠'이기 위해 호르몬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생식능력의 종결은 남성에게도 찾아오는 것이고, 그 나이대의 남성들은 심혈관부터 전립선 건강에 이르기까지 질병의 위험은 높아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중년 이후 남성의 매력은 '성적 매력' 너머에 있고, 여성은 나이가 얼마나 들든지 간에 '여성스러움(feminine)'에 있는 것인가? 그냥 좀 같이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자연스럽게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지혜를 갖추고 현명한 노인이 되기 위해 책이나 읽고 여행이나 다니면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