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기 2. 네 번째 곶자왈. 와!
우연히 생긴 제주도 숙소도, 숙소에서 차로 오분 거리에 '교래 자연 휴양림'이 있었던 것도, 구태여 갈 생각도 없었지만 남는 시간에 가까이에 있던 숲을 가자고 한 것도, 입구에서 있는지도 몰랐던 '숲 해설 프로그램'을 듣게 된 것까지도 우연이었다. 휴양림 입구를 잘못 찾아 주차를 두 번 한 덕에, 혼자서 숲 해설 프로그램을 듣고 싶어 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됐고, 덕분에 있는지 조차 몰랐던 숲 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곶자왈을 걸은 것은 대여섯 번쯤 되지만, 이번 여행에서 곶자왈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20대 중반, 나를 처음으로 곶자왈에 데려갔던 사람은 이끼가 너무 예쁘다고 했다. 그 이후에 나를 곶자왈에 데려갔던 사람은 사람이 없고 으슥한 숲이라 곶자왈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이후에도 부모님과 함께, 혼자서도 곶자왈을 걸었다. 뿌리가 뽑혀 쓰러진 나무와 넝쿨이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기도, 화초처럼 자라는 고사리들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나무 기둥마다 빼곡한 이끼가 신비롭기도 했다. 들이마시는 숨이 깨끗했다. 거기까지였다. 올해의 곶자왈은 또 다르게 다가왔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식물이 한 데 어우러 자라는 제주의 곶자왈
곶자왈은 넝쿨과 덤불이 어우러져 있는 '곶'과 나무가 자라는 숲인 '자왈'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용암지대에 분포하고 있어, 농사가 불가능한 지대라 개발이 되지 않고 보존되어 왔다. 고사리와 같은 양치류 등 아직 연구가 되지 않은 희귀 식물이 자라고 있는 보존가치가 높은 숲이다. 교래 자연휴양림의 곶자왈은 계단도, 데크도 설치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주의 곶자왈은 북반구의 식물과 남반구의 식물이 공존할 수 있는 한국의 유일한 지리적 위치에 있다. 덕분에 캐나다에 많은 단풍나무부터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넝쿨 식물들이 함께 자란다.
단풍은 색이 변하는 게 아니라 본래의 색을 보여주는 것
단풍나무를 포함해 가을이면 색이 변하는 나무들이 곶자왈에도 있다. 가을이 되면 빨강, 노랑, 갈색으로 색이 변하는 단풍을 두고 초록의 잎이 색이 '변했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빨간 잎은 원래 빨간색이고, 노란색 잎은 원래 노란색이었는데 봄-여름 동안 옆록소가 본연의 색을 덮고 있었던 것. 나무의 색이 '변한다'는 것도 인간의 시선이었던 것이다. 봄이면 새순이 돋고, 푸르게 자라나 가을에 본연의 색을 되찾고 겨울에 잠시 쉬어가는 사이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놀랍게도 '호르몬'이라는 설명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자연스럽게 변하는 기온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나무는 여지없이 5도씨 이하가 되면 겨울의 동면을 준비하기 위해 더 이상 엽록소를 뿜지 않도록 하는 호르몬을 만들어낸다. 영양을 차단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면 그제야 나뭇잎은 본연의 색이 된다. 긴 겨울잠을 자기 직전, 나무는 비로소 '스스로'의 모습을 되찾는다. 숲 해설가님의 설명을 들으며 여성의 완경을 떠올렸다. 어쩌면 완경의 기간이 진짜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시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의 다양한 호르몬 중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수베린'이다. 코르크를 만드는 '수베린'이라는 물질은 나무에 상처가 나면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하는 기능을 한다. 제주 곶자왈의 나무는 여러 이유로 상처를 입었다. 과거 제주에서는 말을 숲에 풀어놓고 자연스럽게 방목을 했었는데, 말이 나무를 들이받아 생긴 상처들이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몸을 다쳐도 죽지 않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 살아남는 나무의 생명력은 호르몬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나무에 가로로 난 상처는 비교적 빨리 치유되지만, 세로로 난 상처는 회복이 더디다고 한다. 하지만 곶자왈을 걸으며 본 나무들에 깊게 난 세로 상처들도 오랜 세월에 걸쳐 회복을 마치고, 건재하게 엽록소를 뿜고 있었다. 올해 내 배에 세로로 난 상처는 천천히 흔적을 남기며 회복되고 있고, 갑작스럽게 다친 손은 빠르게 회복되어 새살이 잘 돋았다.
나무 중에는 어린 시절 가시를 잔뜩 돋았다가 나이가 들면서 가시를 감추고 가시의 흔적만 남긴 나무들도 있었다. 이 역시 '수베린'의 역할이었다. 가시를 돋을 수밖에 없는 것은 나무가 못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하려는 본능이라고. 벌레나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돋울 수밖에 없는 나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가시를 스스로 떨구고 부드러운 표면을 갖게 된다. 돋아있는 가시만 보고 단번에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판단은 그저 입체적인 시간에 임의로 점을 찍어버리는 것뿐이다.
숲의 시작은 이끼다. 습기만 조금 있으면 어디서든 자라는 이끼는 포자번식을 하며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한다. 포자를 통해 다양한 식물이 자라게 되고, 결국은 무성한 숲을 이룬다. 큰 숲을 이루던 나무들은 매년 새순이 돋았다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겨울잠을 자는 것을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다. 생을 마감하는 나무의 기둥에는 버섯이 자란다. 버섯이 나무를 다시 자연에 돌려보내는 분해의 역할을 한다. 그 사이 생겨나는 나무 기둥의 틈바구니는 점점 커져 딱따구리나 벌레의 쉼터가 된다고 한다. 결국 숲은 이끼에서 시작해 버섯으로 마무리가 된다. 곶자왈에는 이끼도, 버섯도, 한창 청춘인 나무도, 포자를 열심히 퍼트리는 양치식물도 모두 함께 공존한다. 흙이 없어 나무 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자라는 곶자왈은, 양분이 충분한 토양에서 상대적으로 편히 자라는 평지의 숲과 다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어쩌다'가 일상입니다만...
어쩌다 제주를 오게 됐고, 어쩌다 교래 자연휴양림의 곶자왈을 가게 됐고, 어쩌다 숲 해설을 듣게 됐다. 하지만 숲 해설에서 내 마음에 와닿은 구절들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그 많은 숲에 대한 설명 중 일부를 기억하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을 하기로 한 것은 나의 경험에 기인한 결정이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경험한 만큼 결정할 수 있다. 배에 난 상처를 마주하기 힘들어했던 나에게 '그 모든 게 너를 만드는 역사'라고 얘기해준 친구의 말이 참이다. 아마 내 배에 상처가 없었다면, 나는 곶자왈에서 나무와 자연의 의미를 이 정도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무엇보다 함께 해준 애인과 관계를 만든 것은 '어쩌다'가 아닌 전적으로 내 의지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