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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혼자가 됐고, 자전거로 100km를 달렸다.

제주 여행기 3. '환상 자전거길'을 벗어나면 '환장 자전거길'

by 망원동 바히네

올해 4월 말, 나는 따릉이로 처음 자전거를 독학했다. 아주 어렸을 때 세발자전거에서부터 어린이용 자전거에 보조바퀴를 달고 달리던 내가, 어쩐 일인지 바퀴가 두 개만 남고 나면 온 몸에 중심을 잃고 식은땀을 연신 흘려내기만을 30년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한강에 따릉이를 빌려나가 며칠간 진땀을 흘리고 나서 갑자기 자전거를 타게 됐다. 이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워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했을 정도!

https://brunch.co.kr/@alwayscurious/8


이번 제주 여행에서 나는 자전거를 탈 계획은 전혀 없었다. 제주는 서울보다 기온은 높지만 바람이 훨씬 많이 부니까, 자전거 7개월 차 초보운전자는 꿈도 꾸지 않은 것. 그러나 제주여행 3주의 일정 중 마지막 주를 함께 하기로 했던 친구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여행을 못 오게 됐고, 발이 묶인 나는 전기자전거를 빌려 여행을 시작했다.


버스 여행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집 바로 앞에 버스 한 대가 서는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20분쯤 걸어가면 4대의 버스가 서는 정류장도 있었다. 다만 제주 버스의 배차 간격은 서울의 것과 달랐다. 조천읍 교래리를 지나는 버스의 배차간격은 보통 30분에서 50분 사이. 타려던 버스를 놓치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여행자에게 한 시간쯤을 보내는 것은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지도 앱만 켜면 '3분 뒤 도착' 같은 실시간 버스 운행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던 서울에서의 대중교통 이용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이 시간이 처음에는 몹시도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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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래에서 버스를 타고 성읍으로 갔다. 목적은 수제비와 호떡을 먹기 위해서. 호박잎 수제비는 어렸을 때 자주 먹었는데, '제주 향토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전기자전거를 빌린 것은 애인과 함께 종달리에서였다. 지미봉에 올랐다가 동네 산책을 하던 중, 벽면에 작게 '자전거 대여'라고 쓰인 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자전거를 빌렸다. 종달 해변부터 하도리 전까지 해변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길을 달려보고, 동네 골목도 구석구석 달렸다. 제주 동쪽의 종달리는 우도와 성산일출봉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일출 명소로 알고 있었는데, 은은하게 붉은 노을이 온 동네를 덮은 늦은 오후에 조용한 골목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따릉이 말고는 자전거 경험이 없었던 내가 큰 힘 들이지 않고도 20km/h는 거뜬히 속도를 내며 달리는 전기자전거를, 그것도 제주도에서 탔으니! 한 시간 남짓 맛보기로 타본 그 시간에 잔뜩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IMG_1685.JPG 노을 진 종달리를 자전거로 달렸다.

이 날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갑작스럽게 교래리에 고립 아닌 고립이 결정된 날, 어렵지 않게 '전기자전거를 빌려야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기자전거 대여소가 무려 세화에 있었지만, 단걸음에 달려가 전기자전거와 헬멧을 포함해 3박 4일간 쓸 자전거 세트를 대여했다. 평대에 가서 당근주스도 사고,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달려도 보다가 해질 시간 전에 집에 가기 위해 교래로 향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제주도에 자전거도로는 99% 해안을 따라 형성돼 있다. 한라산 쪽으로 오는 길은 1차선 도로에 인도나 갓길마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차가 없을 때는 괜찮지만, 양 쪽에 모두 큰 차가 오는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다. 세화에서 교래로 가는 길은 바다 근처에서 한라산을 향해 가는 길이라 오르막 경사이기도 했다. 전기자전거라 큰 힘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초행길이라 긴장을 더한 탓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카카오 맵에 내 주행 기록이 남았다. 30km를 달렸고 총 상승고도는 600m였다. 내가 자전거로 600m를 올라오다니! 온몸이 후들거리고 땀이 삐질 났다. 욕조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몸살이 날 것 같았다.

IMG_2072.jpg 당근 수확철이 코앞이라 햇당근은 못 먹었지만, 당근주스를 참 많이도 먹은 여행이었다!

다음 날, 송당으로 나들이를 갔다. 세화보다 가까이에 있는 곳이었지만, 역시나 갓길이 없는 좁은 도로를 달려야 했다. 양쪽 모두 차가 오면 잠시 풀숲 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송당은 걸어 다니기에 매우 적합한 동네다.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빵집, 카페들이 많고 동네가 크지 않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길에 본 송당 근처의 오름들은 하나같이 아담하고 예뻤다. 언젠가 송당에 숙소를 잡고 근처 작은 오름들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점심을 먹은 식당에 자전거를 주차해두고 세 시간쯤 걸어서 동네를 산책했다. 다시 교래로 돌아갈 시간. 당오름과 괭이 모루 오름 사이에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 있었다. 도로가 아닌 길을 달리는 편이 자전거로 다니기엔 훨씬 안전하다.


셋째 날, 마지막으로 전기자전거를 원 없이 타기로 했다. 교래에서 김녕으로 갔다. 한라산에서 해안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 기어를 전혀 놓지 않고 있어도 속도가 50km/h까지 나오는 경사였다. 김녕으로 가는 길의 대부분은 숲 속 길을 달릴 수 있어서 덜 위험했지만, 스피드를 아찔하게 즐겨야만 했다. 김녕부터 종달리까지, 그리고 다시 세화로 오는 길은 모두 '환상의 자전거길'로 조성이 되어있어 매우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었다.


삼 일간 총 116km를 자전거로 달렸다. 총 상승고도가 1300m가 넘었고, 최고 속도는 67km/h까지 나왔다. 세상에. 이게 내가 한 일이라니. 올해 초만 하더라도 나는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여행을 못 오게 된 친구에게 감사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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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전기 자전거를 삼일만 타본 사람의 팁!


1. 자전거 실물을 보고 대여하세요!

- 처음 종달리에서 빌렸던 자전거는 매우 신형 모델이었다. 브레이크도 부드럽게 잘 잡혔고, 무엇보다 안장에 쿠션이 매우 좋아 장거리를 달려도 좋을 듯했다. 반면 세화에서 빌린 것은 좀 오래된 자전거였다. 쿠션이 거의 없었고, 브레이크도 완전히 잡으려면 젖 먹던 힘을 다해 손아귀에 힘을 줘야 했다. 가격은 거의 비슷하다.


2. 해안도로를 달리세요!

-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은 제주도 해안을 잇는 자전거도로다. 구간마다 도로에 페인트칠만 해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화에서 종달리까지 가는 길은 그런 구간은 거의 없었다. 도로만큼이나 넓은 구간을 자전거 도로로 설정해 두었고, 도로와 구분을 잘해두어서 비교적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3. 카카오 맵 자전거 길 찾기를 이용하세요!

- 네이버맵과 카카오 맵이 모두 자전거 내비게이션 기능을 제공한다. 두 가지 서비스를 비교한 글들은 포털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주행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카카오 맵을 이용 했다. 카카오 맵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전거도로가 많은 순으로 옵션을 보여준다. 자전거도로가 많지 않은 구간이라면 '편안한 길'로 설정하면 경사가 덜하고 계단이 없는 길을 안내해준다. 도로가 아닌 논길이나 숲길을 안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제주에서는 오히려 이런 길이 더 안전했기 때문에 '편안한 길' 모드로 이용했다.


4. 배낭과 장갑을 챙기세요!

- 헬멧은 대부분 자전거를 빌릴 때 함께 대여가 가능하다. 장갑은 렌트가 가능한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으니 챙겨가는 편이 낫다. 나는 따로 챙기지 않아 세화 오일장에서 오천 원을 주고 구매했다. 전기자전거는 자물쇠나 충전기를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달려있는데, 크지 않으므로 배낭이나 백팩을 준비하는 편이 낫다.

종달리 해변의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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