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원에 갔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고 왔다.
애정하는 친구의 생일이었다. 코로나 시국의 생일파티는 아침 10시 마스크를 단단히 동여매고 요가원을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 주의 중간 지점, 수요일이라 쉬어가는 요가를 했다. 따뜻한 바닥에 누워 '밸런틱'이라는 막대기처럼 생긴 것으로 온몸을 풀어냈다. 온몸의 근육을 쭉쭉 늘리며 안 되는 동작을 하겠노라 애쓰지 않고, 종아리 길이만 한 나무 막대기를 몸의 구석구석에 갖다 대고 눕거나 힘을 싣는 정도의 요가. 노력한 바 없는데 공짜로 얻어지는 쾌감이 있는 시간이었다. 이어서 요가의 정수! 온몸에 힘을 풀고 누워있는 자세인 '사바사나'를 했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나도 모르게 어깨와 척추가 바닥에 늘어지고, 정수리에 힘이 풀려 있을 때쯤, 요가를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처음으로 가사가 있는 노래가 들려왔다. 한참을 기타 소리에 맞춰 허밍만 하다가 노래가 끝날 때쯤 짧게 가사가 들렸다.
"O, I love you, O, I love you. O, I love you. most of all."
오늘도 행복하기를 선택하는 하루 보내세요. 나마스테.
친구의 생일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그날 들었던 노래와 요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행복하기를 선택'하라니.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와는 완전 다른 문장이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는 것.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던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기를 쓰고 잘 살아보려고 해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생기는 상황들에 좌절하거나 분노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상태가 얼마나 애매모호한 것인지. 애초에 나는 어떤 상태를 '행복'이라 정의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놈의 '행복한 하루'를, '행복한 한 해'를, '행복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망원동 바히네 팀장은 꿈이 뭔가?"
매일같이 야근에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택시에서 강변북로를 바라보며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강바람에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 날들 중 하루, 사장이 물었다. 대답할 기운도 없었지만 이렇다 할 꿈은 더욱이 없어서 맹랑하게 대답했다.
"행복하게 사는 거요."
"행복한 삶이 뭔데?"
'그러게요. 이렇게 매일같이 야근하면서 퇴근길 택시 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하는 삶은 아닐 것 같은데요.'
입술까지 바들바들 올라오던 말들을 젖 먹던 힘까지 짜서 애써 삼켜냈다.
어쨌든 사랑하는 친구의 생일날, 우리는 요가를 하고 집에서 안전하게 미역국과 잡채를 차려 먹고, 네 가지 차를 코스로 마셔 보는 하루를 꾸리기로 했다. 막상 생일 당사자가 아침 10시에 요가를 하러 오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는 애인의 조언이 있었지만 (그리고 당일 아침 강변북로의 교통체증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지만!), 어쨌든 적어도 내가 친구와 보낼 하루는 최선을 다해 꾸렸다. 막대기로 몸 구석구석을 자극하는 것도, 집에서 마음 편히 밥을 해 먹는 것도, 안전한 공간에서 정성스럽고도 호사스러운 차를 마시는 것도 내가 선택한 행복이었다.
행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행복하기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 명료하고도 정확한 진리를 깜빡할 때가 있다. 요 며칠 깜빡하고 지냈다고 이 말이 귓속 깊숙이 박혀서 맴돌다니! 이유도 모른 채 기분이 바닥을 치던 날에 이 말을 얼른 잘 써먹었어야 하는데... 이제라도 이 말을 붙들어두고 꺼내어 글을 쓰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제주에서 다친 손가락의 회복 속도가 놀랍다. 살점이 넓게 뜯어져서 다시 원래의 손가락 모습으로 살이 차오르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2주 정도만에 감쪽같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끔 오른손바닥을 펼쳐 보며 조금의 흉터도 남지 않은 손가락을, 그 회복력을 대견해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다친 손가락의 손톱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손을 다치고 나서 일주일쯤 후, 다른 손가락의 손톱은 깎아야 할 만큼 자란데 비해 다친 손가락의 손톱은 전혀 자라지 않았었다. 다치면서 받은 충격에 손톱이 놀랐나 보다 생각했는데, 놀란 것 이상으로 이제 곧 자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완전히 빠지지 않은 손톱은 빠진 손톱보다 나를 더 괴롭게 한다. 언제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해, 설거지를 하거나 머리를 감을 때, 빨래통에서 빨래를 꺼내 세탁기로 옮길 때 꼭 털이 쭈뼛서는 고통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빠져나올 준비가 완전히 되지 않은 손톱을 힘으로 뽑아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간 털이 쭈뼛서는게 아니라 한동안 손가락을 강제로 쭈뼛 세운채로 살아야 하는 걸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샤워를 하기 전이나 집안일을 하기 전, 붕대로 손톱을 감아 자극을 줄여주는 것 말고는 없다.
손톱이 빠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그냥 손톱이 없는 손가락이 하나 생긴다는 것이다. 스물셋, 피렌체에서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돼 손이 퉁퉁 부었다가 몇 주 뒤 손톱이 슬그머니 빠진 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손가락을 다쳐 응급실을 가면서 나는 손가락의 고통보다 '아니 도대체 올해 나에게 왜 이런 일이?'라는 생각에 더 좌절했었다. 시간이 지나 손가락의 살은 차올랐고 손톱은 덜렁거리지만 기억은 재구성됐다. 스물둘, 아무것도 모르던 천방지축이 피렌체 응급실에서 '커피 그만 마시고 날 치료해달라'라고 소리 지르며 울던 것이 생각난다. 손톱이 빠져도 내 손가락의 기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덜렁거리는 손톱 아래는 새 손톱이 이미 자라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새 손톱이 슬며시 나올 때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답답하고 혼란한 마음을 손톱과 함께 날려버리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