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반갑지 않을 이유도 전혀 없다.
2021년, 나에겐 그야말로 상실의 해였다. 중요한 신체의 장기를 잃었고, 두 번의 수술로 에너지를 잃었고, 엎어진 김에 쉴 수밖에 없어서 직업을 잃었다. 백수가 되었으니 모아둔 돈을 잃었고,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으며 사랑해 마지않던 후배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 제일가는 맥시멀리스트였지만 나름의 짐 정리를 많이 했고, 제주도에서 다친 손가락의 손톱이 빠졌다. 내 의지대로 비워내기도 했고, 갑작스럽게 상실이 다가와 나를 흔들어버리기도 했다.
내 앞에 홍콩 느와르 영화처럼 아주 고약하게 낀 이 안개 뒤에 그 무엇이 있는 것인지를 보기 위해 역술인에게 점을 보기도 하고 심리상담을 받을까도 생각했다. 이전에 심리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지만 결국에 다른 자극엔 다른 좌절을 겪을 뿐이었다. 결국 외부의 좌절, 변화, 상실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생각만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좀 더디긴 해도 좌절의 나락에서 기어올라올 힘은 있었다. 주변의 추천으로 명상과 불교명상을 애써 해보려 했다. 아직도 내가 명상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제대로 있지도 않지만 의심할 시간에 한번 더 눈을 감고 생각을 흘려보냈다. 어떤 날은 흘러가지 않고 머무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괜히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리처드 칼슨의 <스톱 싱킹>을 읽었다. 온갖 근거와 사례를 들어가며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주는 요즘의 에세이들에 비해 주장만 나열된듯한 글이 조금 지루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요즘의, 올해의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관점 전환과 생각의 멈춤, 반사적이고 즉각적인 외부 환경이나 남 탓을 하지 않고 성숙하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됐다. 저자는 대부분의 심리상담이 현재의 괴로움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다시 들여다보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살면서 슬픔과 좌절, 상실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일시적인 위로와 과거 경험을 들어다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결국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난 그 경험, 그 안에서 나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내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이후의 다른 형태의 좌절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불교에서도 명상에서도 일맥상통하는 이 개념을 나는 꼭 기억하기로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한 해동안 부끄러운 글이나마 남겨놓은 것에 감사하다. 우당탕탕 얼레벌레 대충대충 나는 글을 쓰고, 춤을 추고,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며 극복했다. 여전히 건조기 없이 세탁하기를 두려워하고 몸져눕지 않기 위해 난방을 하고 있지만,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기보다 내가 하는 일들에 나는 긍정하고 확신했다.
2021, 돌이켜보니 채움이 가득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착한 애인이 생겼고, 멀리 떨어져 살던 친구도 서울로 돌아왔다. 살면서 가장 많이 책을 읽은 한 해였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곧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3주간 제주를 여행한 추억을 얻었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으며, 달리기에 도전한 기록을 남겼다. 꾸준히 글을 썼고, 여느 때보다 많은 요리를 했으며, 많은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편안한 마음을 얻었다.
다 덕분입니다. 따뜻하고 건강한 2022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