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쁜 행동을 했어' vs '나는 나쁜 사람이야'
자기 탓과 자기 책임을 구분할 줄 알아야 성숙한다.
나는 어디선가 이 문구를 읽고, 오래 기억하겠노라 다짐했다. 좌절이 다가왔을 때, 자기 탓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를 하지 못하면 얼마나 추하게 늙어가는지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더 치열하게 느낀다.
브레네 브라운의 '수치심 권하는 사회'를 읽었다. 저자의 TED 강의가 굉장히 유명했었고, 영어공부를 할 겸 강의를 본 적이 있었다. '취약성(vulnerability)'을 포용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조직의 성과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넷플릭스에도 그녀의 '취약성'에 대한 강의가 업로드되어있다. 책은 강의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수치심'에 대해 다루며 '취약성'과 '죄책감' '굴욕감'등 수치심과 혼동하기 쉬운 다른 감정들에 대해서도 다루며,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한 단계적 방법을 함께 다룬다.
저자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죄책감'으로 내 '행동'에 중점을 두어 교정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반면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수치심'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는 사고다. 결국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지고, 또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대부분의 수치심은 미디어를 포함한 외부 환경요인이 강압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내가 '수치심'을 느끼고 있고 이것이 외부 요인에 의한 것임을 '인지하는 것'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수치심을 느끼는 내 마음을 알고, 이 원인을 파악하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과 연대를 통해 수치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나는 '수치심'과 '죄책감'감을 구분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스스로 얻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앞서 언급한 한 줄의 문장을 떠올렸다. 주어진 상황이 비록 불가항력으로 인한 것이더라도, 그 이후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는 결국 내 책임이라는 것. 누구와 관계를 맺을 것이며, 사람들과 어떻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 어떤 일을 할 것이고, 그 일을 어떤 태도로 할 것인지, 술을 한잔 걸친 밤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갑작스럽게 당한 의료사고 이후에 어떻게 회복하고 살아나갈 것인지... 매일 수도 없는,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들을 마주하며 나는 '내 탓'과 '내 책임' 중, '죄책감'과 '수치심' 중 어느 쪽에 무게를 싣고 있었을까.
한 일주일 이 책을 나눠 읽어 그런지 수치심과 죄책감에 대한 꿈을 두 번 꿨다. '악몽'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꿈에서 깼을 때 기분이 몹시 언짢고 놀란 상태였는데, 가만히 앉아 꿈을 생각하니 내 내면에서 '수치'와 '죄책감'에 대해 말을 걸어온 것이다. 매번 공감을 해줘야 하지만 공감을 받지는 못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과감히 거리두기를 해 왔던 것은 '죄책감'으로 말을 걸어왔고,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책임감 있게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의지에 따라 끌려다니다가 끝끝내 도망쳐버린 나 자신은 '수치심'으로 떠올랐다. 도망의 끝엔 공포와 수치심만 남았다. 뒤숭숭한 꿈자리를 정리하는 늦잠을 잤다.
쟁반에 녹차를 담아왔다.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실 일이 잘 없는 요즘, 선물 받은 기프티콘을 모두 합쳐 녹차 티백을 샀다. 잎녹차는 팔지 않아 티백을 사 왔는데, 어쩐지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티백을 뜨거운 물에 담그기 싫었다. 간단하게 마시라고 티백을 파는 것인데, 굳이 그 티백을 뜯어 차를 우린 뒤, 체망에 걸러 한 모금을 마셨다. 머그컵 하나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설거지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내 유난을 다행히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해해주고 지지해준다. 나는 이들과 공감하고 연대함으로써 '수치심'에 빠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한다.
올해는 와인보다 차를 마셔보려고 한다. 체계적으로 차를 공부하고, 수반부터 개완이나 예쁜 찻잔을 세트로 구비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언젠가 취향이 생기고 조금 더 깊게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도구를 들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족하다. 와인이 들어있던 거실 코너장을 다 비우면 차와 커피용품을 새로 정리해 넣어두어야겠다. 수치심을 키운 것이 미디어인 것처럼, 내 와인'욕심'을 불 지른 것도 아마 외부 요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만,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생각하며 즐기는 것. 스트레스를 자해의 방법으로 풀지 않는 것. '내 책임'을 건강하게 발전의 동기로 삼을 것. 거창한 새해 목표를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올해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