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드디어 자전거를 마스터하다. 그것도 독학으로!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중학교 1학년, 대학교 1학년, 2학년... 이때마다 자전거를 배우려고 시도했다. 보조바퀴를 달고는 잘만 탔는데, 그 작은 바퀴가 없어지자마자 나는 자꾸만 넘어졌다. 보조바퀴 대신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은 때마다 달라졌다. 아빠에서 오빠로, 오빠에서 여러 명의 남자 친구로... 하지만 모두 내 둔한 운동신경에 질려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온몸에 긴장을 한 채로 안간힘을 썼지만, 매 번 넘어지고 다쳐 자전거와 멀어졌다. 나도 남들처럼 쌩쌩 달리고 싶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나... 하루 반나절 밀어주고 혀를 내두르며 포기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자전거를 배워보려고 시도할수록 둔한 운동신경을 확신시켜주는 사람이 좀 더 늘 뿐이었다.
이후로 나는 스스로를 '겁이 너무 많아 자전거는 절대 못 타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자전거를 못 탄다고 해서 불편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나는 걷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자전거뿐 아니라 운전도 못했지만 어디든 여행을 가서 구석구석 잘 다녔다. 기동력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해결하면 그뿐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가난하지만, 내가 자전거를 탈 줄 안다고 해서 부자가 됐을 것 같진 않다.
혼자 망원동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홍제천길을 따라 걸어서 마포농수산물시장에 장을 보러 종종 갔다. 망원시장이 코앞에 있지만 해산물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한강공원을 지나 홍제천길로 들어서면 인적이 확 줄어든다. 작은 개천을 따라 양쪽에 버드나무가 흐드러지는데, 그 길을 걸을 때면 '아,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해산물을 사서 돌아오는 길이 걷기엔 조금 멀었다. '이 아이들이 싱싱할 때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집에 오면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자전거를 다시 배워볼 생각은 안 했다. '타고 싶다'와 '배워보겠다'는 다른 것이었다.
갑자기 반백수가 되고 나니 안 하던 것들이 막 하고 싶어 졌다. 그냥 '하고 싶다'에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더해지니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아팠던 몸이 회복되고 나니 기능하는 몸을 더 단련하고 싶기도 했다. 당근에 글을 올렸다.
"새싹 따릉이로 자전거 배우려고 합니다. 뒤에서 밀어주실 분. 가격은 제안 주세요."
설마 연락이나 오겠어하는 반신반의로 남긴 글이었는데, 메시지가 쏟아졌다. 잃었던 인류애를 미약하게 회복했다. 대부분의 반응은 언제 밀어드릴 수 있지만, 따릉이는 안장이 없어 밀어드리는 게 불가능하고, 자전거는 뒤에서 밀어주는 것으로 배우면 더 위험하고 배우기 어렵다는 반응. 결국 혼자 해보라는 것이었다. 자전거 수리를 업으로 삼으신다는 분이 유튜브 채널을 하나 추천해주셨다. 혼자서 자전거 배우는 법을 올려둔 채널이었다. 영상을 끝까지 볼 시간도 없었다. 나는 그 길로 집 밖을 나서 새싹 따릉이를 빌렸다. 일반 따릉이는 여전히 나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누가 보든 말든, 놀리던 말던, 나는 내가 마음이 편한 작은 자전거로 시작하고 싶었다. 일단 따릉이를 빌리고 나서 영상을 봤다. 영상에 나온 대로 페달엔 발을 올리지 않고 우선 자전거 위에서 편안해지도록, 그리고 발을 떼고 균형을 잡는 연습만 했다. 두 시간 동안 페달에 발 한번 못 올려봤다. 그래도 온몸은 땀범벅이 됐다.
다음 날, 또 새싹 따릉이를 빌렸다. 안장에 앉아있기만을 한 시간, 그러고 나서 잠시 페달에 발을 올려 봤다. 자전거 핸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다 바로 균형을 잃었다. 그래도 페달에 발을 올렸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두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페달을 열 바퀴쯤 돌리게 됐다. 핸들은 무지 떨렸고 나는 땀을 비 오듯 흘렸지만 어쨌든 페달에 발을 올리고 굴렸다.
셋째 날, 페달을 밟고 발을 굴릴 수 있게 됐다. 조심스럽게 한강으로 나가봤다. 핸들은 여전히 흔들려 직선거리를 고데기에 탄 머리카락처럼 꼬불꼬불 가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계속 페달을 밟을 수 있게 됐다. '삼일만에 자전거를 타다니, 나는 운동 천재인가?' 지나온 세월을 까맣게 잊고 나는 스스로에게 취해버렸다. 걸어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스피드와 바람을 느끼며 성산대교에서 거의 양화대교까지 왕복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심지어 자전거를 (미약하게나마) 탈 수 있게 됐고, 인생에서 포기했던 것에 다시 재도전을 해 성공했다. 그것도 혼자.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가족들은 내 자전거 독학 성공을 축하하긴 커녕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하다느니, 불안하다느니, 사람 많은 데서 타지 말라느니 하는 잔소리들이 먼저 쏟아졌지만, 나는 이런 말들에 상처를 받기에는 너무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2021년 4월 29일, 한강에서 자전거를 독학했다.> 묘비에 새겨도 모자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