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비건_1.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쿠키 <타랄리>
타랄리(Taralli)를 오랜만에 구웠다. 미니 도넛처럼 생긴 이 담백한 쿠키는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Puglia)'의 전통 음식이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짭짤하고 향긋한 이 쿠키는, 처음 먹었을 때 '아니, 이게 무슨 맛이야? 그냥 텁텁한 밀가루 맛인데?'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를 먹고 나면 곧이어 하나를 더 먹게 되는, 그야말로 담백한 중독성이 있다.
타랄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대 초반, 풀리아에 여행을 가서였다. 'Mola di Bari'라는 시골에 있는 Rita의 집에서 머물며 풀리아 지역의 전통요리를 배울 때였다. 내 몸통만 한 유리병 가득 들어있는 타랄리를 사람들이 오가며 한 두 개씩 집어 들어 먹었다. 아침 식사에도 곁들여졌고, 저녁식사를 하기 전 식전주와 함께 내오기도 했다. 들어가는 재료는 정말 단순하면서도 특이했다. 보통 쿠키에 들어가는 유제품이나 계란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물도 한 방울 들어가지 않는다. 특별하지만 심플한 재료들! 바로 밀가루와 소금, 올리브유에 화이트 와인을 넣어 만든다. 이스트나 베이킹파우더도 들어가지 않지만, 바삭하게 부풀어 오르는 비결은 화이트 와인에 있다. 여기에 한 가지 '킥'을 더한다. 바로 펜넬씨다. 양식에서 많이 사용되는 양파와 비슷하게 생긴 펜넬의 씨앗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산미나리 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트처럼 시원하면서도 큐민 같은 쿰쿰함도 있는 독특한 향을 뿜는다.
2020년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워진 때, 나는 성북동에서 이탈리아 가정식을 배웠다. 나보다도 더 이탈리아 요리에 한참 진심이자 거기에 더해 우리나라 농산물에도 조예가 깊은 선생님은, 앉은키 통밀로 타랄리 반죽을 만들고 만두 모양으로 빚어 그 속에 잼과 견과류를 넣었다. 전혀 달지 않은 타랄리의 맛을 조금 더 친숙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는데, 향긋하고 짭짤한 반죽에 새콤달콤한 잼과 고소한 견과가 더해지니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의 쿠키가 완성됐다.
타랄리에 들어가는 펜넬 씨가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풍부해 여성호르몬 질환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됐다. 번뜩! 잊고 지냈던 타랄리의 레시피를 다시 뒤적여 찾았다. 그 옛날 'mola di Bari'에서 메모장에 꼬깃꼬깃 써온 레시피와 성북동에서의 레시피를 참고해 집에 있던 백강밀로 반죽했다. 미니 도넛 모양의 오리지널 버전과 잼을 조금 넣은 변형된 버전을 모두 준비했다. 성북동에서는 성형 뒤 그대로 구웠지만, 나는 두 가지 버전 모두 원래의 방식대로 끓는 소금물에 데쳐 익힌 뒤 오븐에 구웠다. 모양도 그렇고 데쳐서 굽는 방식도 그렇고 베이글과 같다. 혹자는 그래서 베이글의 기원을 이탈리아에서 찾기도 한다.
끓는 소금물에 모양을 잡아둔 반죽을 넣으면 잠시 뒤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떠오른 것들부터 건져 마른 면보에 올려 물기를 빼준다. 오븐에 30분 정도 구워주고 나면 완성이다. 완전히 식힌 뒤 한 입 깨어물었다. '와사삭!'하고 부서지는 식감이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구수한 우리밀 향이 텁텁하게 입을 채우고 나면 짭조름하고도 상쾌한 펜넬씨 향이 입안을 채운다. 단순한 재료기 때문에 신선하고 맛있는 밀로 굽는 것이 중요하다. 들어가는 기름의 양도 많지 않고 화학적 팽창제가 들어가지도 않으며 신선한 우리밀을 쓰기 때문에 먹고 나도 속이 편하다.
이탈리아에서는 타랄리를 식전주로 많이 먹는 '아페롤 스프리츠'나 '깜파리 소다'같은 쌉싸름한 칵테일 안주로 많이 먹는다. 맥주와 곁들일 주전부리로는 당연히 잘 어울리고, 순한 맛의 우엉차와 마셔도 잘 어울린다. 아사삭! 하고 부서지는 짭짤하고 향긋한 쿠키. 단순하지만, 그래서 풍부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