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비건 2_ 피타브레드와 무반죽 빵
요즘은 빵을 열심히 구웠다. 좋아하는 빵집이 집에서 좀 먼 탓에 겨울을 맞아 한참 게을러진 탓이다. 내가 먹기 위한 빵. 팽창제는 우선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드라이이스트를 쓰지만, 밀가루는 제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선한 우리밀을 쓴다. 하루 종일 반죽을 늘이고 휴지 시키는 작업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무반죽 빵을 구웠다. 말 그대로 반죽을 잘 섞은 뒤 하룻밤을 뒀다 자고 일어나 굽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생각보다 너무 성공적이잖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우리밀만 가지고 있는 구수한 맛이 올라오고 기공이 잘 생긴 폭신한 촉감도 좋았다. 들인 노력에 비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무반죽으로 포카치아도 만들었다. 기본 빵보다는 소금과 기름(올리브유)을 넣어 살짝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빵이다. 하지만, 포카치아 성형의 마지막 단계인 보조개를 만들어주는 작업의 즐거움이 크다. 포카치아를 구울 틀에 출렁출렁 수분율이 높은 반죽을 쏟아 담고, 손가락을 쑤셔 넣어 표면에 홀을 만든다. 그 위에 토마토나 로즈마리, 플레이크 소금을 얹어 구워내면 짭짤하고 고소하면서 푹신한 포카치아가 완성된다. 조금 더 높은 온도에서 짧게 구워내고 싶었지만, 내가 가진 것이 오븐이 아니라 에어프라이어 겸용 미니오븐이라는 현실에 적절하게 타협을 해야 한다. 토마토는 조금 탔지만, 다음번엔 굽는 시간을 조절해보겠노라 다짐한다.
두 시간 정도만 발효를 하면 만들 수 있는 피타브레드도 구웠다. 오븐이 아닌 주물팬에 빠르게 구워내는 피타브레드. 프라이팬에 올려두면 공갈빵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이 공기가 들어가는 작업이 잘 되어야 빵을 반 잘라 그 사이에 야채와 후무스 등을 껴먹을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만든 빵 중에 반은 배가 빵빵하게 올라왔고 나머지 반은 반 정도만 부풀었다. 어느 정도 온도에 주물팬을 달구고 얼마나 구워야 하는지 감이 오려다 만 것 같다. 다음을 다시 기약해본다.
구워놓은 빵을 팬에 굽고 땅콩버터를 듬뿍 발라 바나나를 올리고 시나몬가루를 톡톡 뿌리면, 행복한 아침을 맞을 수 있다. 애인과 함께하는 주말이면 병아리콩을 밤새 불려 삶은 병아리콩을 갈아 후무스를 만든다. 샐러드를 곁들여 내면 하염없이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된다. 포카치아는 식전 빵으로도, 얇게 반을 잘라 샐러드를 껴 넣어 샌드위치로도 훌륭하다. 이미 오일이 많이 들어간 빵이라 다시 팬에 구우면 표면이 바사삭! 하게 굽힌다. 작은 미니오븐을 가지고 어떻게든 잘 활용해가며 빵을 굽는다. 구운 빵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으니 즐겁다.
밀가루는 이미 한번 가공된(가루 형태로 빻아진) 가루이니 통 밀알보다 통밀가루가, 그보다 흰 밀가루가 다이어트 측면이나 혈당 측면에서 좋지 않음은 분명하다. 100% 호밀이나 통밀로 구워낸다고 해도 GI가 낮지는 않다. 그렇다고 높지도 않다. 빵을 먹고 나서 속이 불편한 이유는 대부분 여러 가지 첨가물을 넣거나 유제품, 기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밀가루 자체에 표백이나 방부제가 들어있거나, 빵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 식품첨가물을 쓰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소화가 잘 되지 않거나 피부가 나빠지는 등 흔히 알고 있는 '밀가루 음식'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우리밀은 방부제나 보존제 없이 비교적 제분한 지 오래되지 않은 채로 유통된다. 때문에 냉장이나 냉동 보관을 해야 한다. 우리밀은 밀 자체의 향이 구수하게 올라와 빵이나 쿠키를 만들 때 특유의 맛이 난다.
'밀가루가 문제다!'라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글루텐이다. 글루텐은 밀가루가 쫀쫀하게 반죽될 수 있게 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단백질 중 하나다. 이 글루텐이 얼마나 들어있는지에 따라 밀의 종류가 나뉘기도 하고, 또 밀 종류에 따라 글루텐 함유량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파스타를 만드는 세몰라 밀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 편이다. 세몰라 밀과 물로만 반죽해 만드는 파스타는 100g당 14.5g의 단백질이 포함돼 있으며, 이는 1일 권장섭취량의 26%다. 같은 브랜드의 렌틸과 현미로 만든 글루텐프리 파스타의 경우 단백질 함량은 이보다 낮은 13.9%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는 비건식에서 고기 대체제를 만들 때 많이 사용된다. 글루텐을 소화하지 못하는 '셀리악 병'을 앓고 있는 사람 등이 아니라면 건강한 밀가루 식품의 선택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루텐프리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식품첨가물로서 유화제가 꼭 들어가야 하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글루텐 자체가 장누수를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된 연구와 장누수가 실제로 절대 악인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근거 수준이 높지는 않은 편이라고 한다. 아주 귀추가 주목되는바, 꾸준히 살펴보려고 한다.
파스타를 먹으면 살이 찌고 몸에 무리가 가는 이유는 파스타를 만들 때 넣는 동물성 지방(치즈)이나 단백질(베이컨, 판체타 등), 많은 양의 올리브유 때문이다. 채식 영양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진들이 가장 많이, 답답해하면서 얘기하는 것은 '그놈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도 마찬가지입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엑스트라 엑스트라 엑스트라 버진'이어도 기름은 기름이라는 이야기. 올리브유와 생선, 일부 치즈를 먹는 지중해식 식단과 완전 자연식물 식이를 비교한 연구결과를 공부하기도 했다. 아직도 우리 집 주방엔 올리브유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1/3 정도로 소비량이 줄긴 했지만, 그 고소하면서도 풍부한 풀냄새, 목구멍을 탁! 치는 매운맛과 우아한 꽃향기가 한데 섞여있는 이 맛있는 기름을 놓지 못하고 있다.
뭐든 적당히, 골고루,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 먹는 것이 좋다는 믿음. 이 공고한 믿음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직면하는 작업은 충격적이지만 늘 즐겁다. 대부분 그런 믿음은 근거가 없거나, 산업계에서 만들어내 주입시킨 믿음이다. 당장은 놀라워도 어쨌든 회피보다는 직면이 낫다. 최근의 발견은 콩으로 메주를 쑤는 듯한 당연한 얘기지만 적당히 몸에 도움이 되는 수준의 음주량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루 한잔의 레드와인이 심장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에 근거가 되는 연구는 주류업계의 스폰서로 이루어진 연구이며, 특히 여성은 적은 양의 음주로도 인지기능장애나 유방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World heart federation'의 이번 정책리포트에 포함된 내용을 읽어보면서 다시 한번 최소 음주를 결심해본다. 와인보다 차를 마시는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