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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렇게 생각 안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소속감이 강한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by 망원동 바히네

"내 동생 욕은 나만 할 수 있어."


동생은 없지만, 자주 하는 말이다. 스스로 뿐만 아니라 나의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 오빠가 나를 어린 시절에 얼마나 괴롭혔는지, 생생한 에피소드와 MSG를 곁들여 내가 떠드는 것은 남들이 우리 오빠를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그걸 무려 내 면전에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라는 말이다. 이게 오빠가 아니라 동생이 된 것은 조금 더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각색된 어떤 속담 같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려니 이해하고 있다.


비단 가족뿐만 아닐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심지어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내가 속한 직장이나 다른 단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나름의 불만을 그 안에서 서로 얘기하는 것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될 수 있지만, 외신 보도로 대문짝만 하게 우리나라나 내 일터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나오는 경우, 누군가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아, 거긴 좀 위험하지 않나?'식의 말을 늘어놓는 경우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스스로 되물어봤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사람이 뒤끝이 없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뒤끝 없는 쿨함'뒤에 숨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얼마나 쿨한지와 관계없이 상대의 생각 방식은 또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니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당신이 알아서 이해도 하고 맞춰야 해.'라는 것이고, '내가 맞는 것이야.' 또는 '어쩌라고.'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튼 서론이 길고 두서가 없었지만, 이 모든 잡다한 생각은 내가 속한 어떤 집단에서 여성의 몸에 관한 아주 찰나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에서 시작한다.

"언니 몸은 정말 탄탄해요. 젊었을 때 한가닥 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타고난 섹시 바디."

"여자들이 좋아하면 뭐해. 남자들이 그렇게 봐줘야지. 맨날 여자들만 나한테 섹시하다고 하더라. 남자들이 그렇게 봐줘야 좋은 건데."


두둥.


그 짧은 대화를 옆에서 듣는 그 순간, 나에겐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첫째는 불편감이었다. SNS를 포함한 미디어에서 여성이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애쓰고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연대를 늘려가려 노력하던 내 일상에, 나와 너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내가 선택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불편했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이 불편감은 결국 내가 그 집단에 대해 모종의 '배신감'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이해했다. 그 조직 구성원 모두가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성적 대상화는 물론이고, 어떠한 대상화도 하지 않는 것을 지향하길' 약속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그 조직에 대해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런 철학에 반하는 대화의 내용은 곧 나에게 '배신'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수치심이었다. 이 대화를 듣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가 이 조직을 추천해 함께 참여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이 대화를 듣고 우리 조직에 대해 나처럼 배신감을 느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다. 결국 이 조직에 대해 나는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 조직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곧 나를 어느 정도 대변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친구가 이 대화를 들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들었어?'라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나는 불편했던 것 같다.


<샤덴 프로이데>라는 책을 읽었다. 나카노 노부코라는 일본 뇌과학자가 쓴 책이다. 여성 인플루언서의 가품 논란에 대해 온 나라가 광분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추천을 받고 읽기 시작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뇌과학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이런 남이 불행할 때 느끼는 쾌감(샤덴 프로이데)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를 낳을 때 자궁이 수축하도록 하는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이라는 별명이 있다. 성교 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엄마가 아이에게 연결감을 느낄 때도, 또 사람이 어떤 조직에 소속감을 느낄 때도 분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의 몰락에 몰두하는 행위는 그 사람이 내가 속한 집단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이를 제거하는 것이 조직에 이롭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사랑이 너무 과해 결국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딸을 종속시키려 하는 엄마나, 불안정한 애착 유형이 애인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쏟아부어 파멸로 이르는 연애 같은 것도 과도한 옥시토신과 샤덴 프로이데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남의 불행을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성교 때와 마찬가지로 쾌감을 느끼는 이유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니, 인간의 본성이란 본디 너무 괴롭고 하찮은 것이 아닌가. 흥미로운 것은 옥시토신의 분비 정도가 민족적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경우 여러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매우 강한 민족으로 성장했는데, 실제로 옥시토신의 분비 또한 유럽인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대화에 대해 내가 느낀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조직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 대화는 내가 설정한 조직의 특성과 존재를 위협하는 발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대상의 불행을 위해 맞서 싸우긴커녕 그 대화를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편감을 느끼는 걸 보면 소속감이 아주 높지는 않거나, 혹은 그냥 누군가에 반기를 드는 것에 쓰는 에너지를 아끼려고 했던 마음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이 사소한 에피소드는 나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어떤 행동으로 발전시키진 못했지만, 불편감과 수치심은 흘려보낼 수 있었다. 여전히 모든 구성원에게 '우리 몸을 대상화하지 맙시다. 성적 대상화는 더더욱!'이라고 설파하고 싶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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