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모든 일이 잠깐 부끄럽고 말았을 텐데 말이야.
지혜에게,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나, 서울 강남에서 나고 자란 서울깍쟁이 너나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에 서툴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네가 우리의 공동 매거진에 남겨둔 글을 스크린에 띄워만 둔 채, 하루 반나절 동안 스크롤을 내리지 못했다. 절절한 사랑고백의 글을 남겨두고 나를 만나기로 했던 약속마저 취소해버리는 너나, 스크롤을 내리는데 하루가 걸린 나나. 그래서 참 끼리끼리는 사이언스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야.
그냥 사랑고백을 하지 그랬어.
창업이라니. 나는 매달 정해진 날에 정해진 만큼의 금액이 입금되는 그 안정감이 좋아 십 년 동안 회사생활을 한 사람이야. 일이야 매일이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들로 가득하더라도, 오로지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금액이 내 통장에 꽂히는 그 규칙성과 지속성에 나를 스스로 묶어뒀었지. 그런 나에게 창업을 하자니. 재능과 감각을 알아보는 그 감각만은 뛰어나다고 자평하는 너의 그 판단력을 내가 믿어도 될까?
내려치기라면 어딜 내놔도 서럽지 않게 할 나에게, 내 재능을 활용해서 일을 도모해보자고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은 아니었어. 진심이 얼마나 담겨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꽤 여러 사람들이 창업을 해보자고, 또는 해보라고 제안을 했었지. 그때마다 나는 '세상에 이렇게 잘나고 잘하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다 대놓고 내가 어떻게...'라는 생각으로 '컴포트 존'을 벗어나지 않고 월급생활자로 살아왔지.
정말 일을 그만두는 것 말고 방법이 없기 전까진...
나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있었어. 간단한 수술이라고 생각해서 받았던 수술이 모두 회복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응급수술을 하게 되었어. 그 과정에서 병원 측의 오진으로 또 한 번의 가벼운 수술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을 크게 벌려놓았고, 나는 제대로 된 설명이나 사과를 받지 못하고 퇴원을 해야 했지.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계속된 나의 사과와 보상 요구에 병원은 응하지 않았고, 나는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버렸다. 그동안 일이 힘들거나 재미가 없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기업의 이익창출에 더해 아픈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던 나였기에, 문제를 회피하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로 내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의사들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았어. 회사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아니면 같은 산업군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 나는 계속 많은 의사들과 일을 해야 할 텐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사표랄 것도 없이 한시가 급하게 퇴사를 해버렸다. 그게 회사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고, 나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지. 몇 달간 침대에 누워서 지냈어. 답이 없는 병원에 메일을 보내고, 지쳐서 누워있는 날들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공부를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논문을 찾아 읽었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아팠는지, 왜 내 주변 대부분의 여성들이 호르몬 질환을 앓고 있는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이렇게 아프지 않을지 파헤치기 시작했어. 결국 자궁이나 유방질환도 유전적 요인보다 환경의 영향이 크게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나는 채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연식물식 채식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 지금 내 생활을 보면 사실 자연식물식으로 사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냥 마음의 벽이 높았던 것 같아. 내 몸과 지구 환경, 그리고 동물들에게도 모두 해로운 음식을 하루에 두, 세 번씩 매일 먹으면서도 '예전보다는 고기를 덜 먹으니까... 나 정도면 괜찮아.'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네가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은 싫지만 인류애는 있어요.'와 같은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쨌든 나는 채식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걸어온 길처럼, 아프고 나서야 자연식물식 채식의 가치를 알고 그 길을 제대로 걸어보려 하고 있어. 채식을 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는 일이 즐겁고, 새로 발표된 식이와 질병에 대한 논문을 읽어보는 것이 행복해. 하루 세끼를 차려 먹는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다가도, 허튼데 시간을 쓰는 것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한 채식을 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리고 그 일을 가능하게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 그래서 사람들에게 채식 요리를 가르쳐보기도 하고, 채식에 대한 글도 써보고, 채식 음식을 잔뜩 차려 사람들과 나눠 먹는 일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
특별한 인생도, 특별하지 않은 인생도 없지 뭐.
남들과 다른 취향을 가진다고 특별하지 않은 내가 특별하게 되는 건 아닐 거야. 내가 패티김이나 나훈아를 좋아하게 된 건, 내 음악적 취향이 특별해서는 절대 아니야. 어릴 때 엄마가 늘 전축으로 그런 음악을 틀어놨기 때문에, 나에게 패티김은 노스탤지어이거나, 혹은 그저 그 이후의 음악을 더 깊이 들어보지 않은 내 게으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화려한 옷이나 소품도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취향의 하나였을지 몰라. 환경오염의 문제를 덜어내더라도, 내 안에 뭔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랄지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그렇게 표현된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 나의 별 것 아닌, 오히려 부끄러운 단면으로 여길법한 내 취향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네가 나를 보는 시선이었을 거야.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꽃도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예쁜 옷을 입고 다니고, 신기한 채소 음식을 나눠주고, 독특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나를 바라봐주고, 그렇게 내 존재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4D 스크린에 나를 올려놓고 조각조각 해체할 수 있다면, 그 조각 중에 어떤 조각들을 보고, 기억하고, 그 조각들과 관계하기로 결정한 것은 온전히 너의 선택이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너의 '감각을 알아보는 감각'을 나는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열두 번도 더 '할 수 있을까?', '이게 맞는 걸까?'라고 물음표를 던지는 나를 붙잡는 건 딱 두 가지야. 나를 알아본 너의 시선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사는데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이 두 가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쉽게 변하지 않을 가치니까. 오늘도 질척 질척 묻어가 보는 수밖에.
단백질 타령을 하는 애인과 비건 베이크드빈을 해 먹었다.
'Cronometer'로 내가 먹는 식단에 영양상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글로도 쓰고, '채소나 과일에도 단백질이 있대!'라고 말로도 해봤지만, 애인은 아직도 가끔 콩이나 두부가 빠진 밥을 먹었다고 하면 '단백질이 좀 부족했네?'라고 말을 하더라. 삼십 년이 넘도록 해왔던 생각이 한 번에 바뀔 리 없으니까, 나는 애인의 마음이 편하도록 눈에 보이는 식물성 단백질 '콩'을 듬뿍 넣어 베이크드 빈을 만들어 줬다. 캔에 든 베이크드빈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생각나는 '불량식품'같은 느낌이었어. 동물성 기름과 첨가물이 많이 들어있으니 이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 되었지만, 집에서 근사하게 업그레이드 버전의 비건 베이크드빈을 만들어 먹은 주말이었다. 오일도 한 방울 쓰지 않고 만들었지만, 모지란 맛이 하나도 없어서 앞으로도 자주 해먹을 예정이야. 든든하게 먹고 싶은 날 얘기해. 콩 불려 놓고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