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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the right thing."

누구를 위한 '옳은 일'인가에서 늘 갈등이 시작되더라.

by 망원동 바히네

지혜에게,


줌이나 구글미트보다 애매하게, 아주 약간 찜찜하게 복잡하고 불편하고 잘 모르는 플랫폼인 개더에서의 주간 미팅을 몇 시간 앞두고 답장을 쓴다. '아아아니이이이.. 이렇게 편하고 완벽한 '구글미트'라는 플랫폼을 두고 도대체 왜! 모든 문서를 구글 문서로 작성하고, 이것들을 구글미트에서 쉐어하면 로딩타임이 너무 짧기도 하고, 시간을 넉넉히 잡고 미팅을 해도 유료화하지 않으며, 심플한 레이아웃에 '미팅'이라는 목적에 절대 부합하는 이런 훌륭한 플랫폼을 두고 도대체 왜애애애애 개더를 해야 하냐'라고 볼멘소리를 하던 내가 또 그 사이 적응을 해서 미팅을 준비한다. 보라색으로 염색한 캐릭터가 입장하는 그 찰나, 카메라 넘어의 어이없다는 내 표정을 보는 것이 너에게 즐거움이라면, 나는 열두 번도, 아니 천이백만 번도 할 수 있는 일이지 뭐.


기업의 미션이 '환자를 위한'것에 있는지, '주주'나 '기업'의(아마도 그게 그거겠지만) 수익 극대화에 있는지에 따라 우리의 일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걸 보면, 아직도 우리는 참 순수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아니면 또 이상주의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여러모로 '이상주의자'의 경향이 강한데, '아직 애냐'는 핀잔도 들으면서, '현실감 떨어진다'는 꾸중을 들으면서도, 내가 '이상주의자'인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정체성이라는 것에는 흔들림이 없었던 것 같아. 너와 같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세 명의 보스를 모시면서, 나는 그 세명의 보스에게 모두 내가 하는 일이 'Do the right thing'이라는 가이드라인에 완벽히 맞지 않는 점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토로했지만, 언제나 이 논의의 끝은 '남들도 다 그렇게 해'라는 식으로 끝났던 것 같아. 물론 그래서 남들이 안 하는 식으로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나은 결론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아주 대단한 방법을 가지고 가서 제안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으면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하라는 식의 주문이 나는 늘 버거웠어. 언제나 아슬아슬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업무의 강도와 상관없이 나는 거기서 병이 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홍콩에 살고 있을 때 우리가 했던 대화 기억하니? 과도한 업무량, 마이크로 매니징,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계속되는 재택근무 등 때문에 힘들어했던 네가 '이 와중에 나는 또 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듯한 말을 했어.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어.

"나에게 주워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은 엄청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일이야. 외부의 상황이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헤치게 두지 마!"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 이 말은 내가 일하면서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어. 통장에 찍힌 월급이 쥐꼬리만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게 해도, 이 일을 하겠다고 한 내 선택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결과를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처음 너와 같은 회사를 다니게 됐을 때, 기준선 이상의 최선을 다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일하게 됐다는 게 너무 좋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런데 그 마음이 '내가 옳은 일이 아닌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는 백기를 들더라. 일에 몰입하고, 잘 해내는 능력도 '이상주의' 앞에서는 무력화되더라고. 그래서 아마 우리는 우리만의 '이상적인'일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겠지.


그냥 즐거울 만큼만 하자.

우리는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뒤로 이 말에 대한 서로의 정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너의 의미에서 '즐거움'은 무엇인지도 나는 늘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성에 차지 않을 때도 있을 거야. 나에게 '즐거움'은 몰입에서 오는 것 같아. '엔프피는 역시 과몰입이지!'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이 '몰입'에 있다고 믿어. 다행히도 나는 늘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결과에 별로 상처를 받거나 좌절을 깊고 길게 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 나에게 좌절은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서 만족하지 않을 정도로 몰입을 한 과정에서 나오더라는 것을 느지막이 깨달았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팟캐스트 <듣똑라>를 듣는데, 주 4일제 현실화 방안에 대한 분석이 몹시 흥미로웠어.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절대적인 업무시간의 증가나 축소가 이를 담보하지 않더라고. 절대적으로 업무시간이 너무 길어서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지만,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 정도의 업무시간'이 담보되고 나면, 그다음은 '업무 만족도'가 중요하더라고. 주 4일이냐 5일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만족을 주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라는 통계였어. 나는 언제나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면, 그 밖에서 아무리 행복을 찾아도 반쪽자리 행복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그런 분석에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 결국 우리가 긴 회사생활 끝에 몸이 아팠던 이유는 우리가 업무에 시간을 많이 쏟아서,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는 아니었을 거야. '일은 일이고, 일은 해내면 되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건 아닐 테지.


이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일에 대한 몰입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우리를 헤치지 않도록, 이 두 가지를 구분하며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즐거움'은 최선을 다하는 것, 잘하는 것이라고 했던 말. 나는 진심이야. 나의 최선에 대한 욕심이 결과를 향하지 않도록 옆에서 늘 진정시켜주고, 또 북돋아주는 너와 디자이너 B의 존재도 매일 감사해. 최선을 다하는 욕심이 아니라 그 욕심이 결과론 적일 때, 욕심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 아마 그게 나에겐 정말 귀중한 경험이고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해. 애초에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인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절히 타협하는 일은 안 멋져!


일할 때 아침시간이 늘 바빠서, 가끔 스타벅스에서 '브랙퍼스트 브리또'를 사 먹었어. 보들보들한 계란 스크램블과 포슬한 감자가 들어있는 또르띠야 랩에 아이스 라테를 쭉 들이키던 시절이 있었지. 계란은 내가 채식 지향을 한 뒤에 아쉬운 식재료였는데, 요즘은 '두부 스크램블'을 만들어먹는 재미에 푹 빠졌어. 두부 스크램블 맛의 비결은 두 가지야. 'Kala namak'이라는 블랙 솔트와 적절한 지방! 나는 타히니(참깨 페이스트)와 오트 밀크를 섞어 물기를 뺀 두부에 섞고, 블랙 솔트와 뉴트리셔널 이스트, 강황가루와 마늘가루 등으로 맛을 낸 다음 팬에서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익혀. 마지막에 블랙 솔트와 후추를 조금 더 넣어주면 완성이야! 오늘은 우리밀 또르띠야에 딸기잼을 조금 펴 바르고 루꼴라와 타코 시즈닝을 묻혀 구운 감자, 그리고 두부 스크램블을 넣어 말았어. 세상에! 너무 맛있잖아!!! 둘둘둘 말아서 너랑 같이 망원 한강공원 잔디밭에 벌렁 누워 먹고싶다. 먹기 시작한지 십분쯤 지나서 '다 먹었어? 가격 뽑아야지?'하고 닥달도 같이 하면서. 너는 '아 체하겠다!'하면서 이미 다 가격분석을 끝내온 스프레드 시트를 열겠지.


- 지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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