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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란 무엇인가

앞으로 다가올 무수한 실패를 환영하며

by 망원동 바히네

지혜에게,


지난 편지의 제목이 무색해 보일만큼, 또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폭풍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날의 '패닉'들은 또 기억이 이미 흐려져버려 '아무것도' 아닌 에피소드가 되어버리고 말았고, 그 사이 더 힘들고 고된 날들의 연속이 이어졌어.


실패란 무엇인가

김명민 교수의 명문장 '추석이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실패했다'는 말을 하기 전에 '실패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해봐야 한다고 생각해. 며칠 전 나인원 한남 푸드코트에 앉아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가끔 우리의 '지혜로운' 프로젝트의 초심과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달성하고 싶은 목표에 대해 자주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해. 내 문장이 '~해야 해.'라는 다소 강압적이고 단호하게 끝난 이유는 정말로 그러하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우리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큰 실패들을 마주하면 마주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런 실패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그 실패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이 프로젝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가 결정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란 무엇이냐. 애초에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가 별 다른 큰 도전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내 인생에 '도전'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도전'을 별 것 아닌 이유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도, 주문한 물량을 목표한 시간 안에 다 생산하지 못해도, 절대로 한 번에 재료를 제대로 주문한 적이 없어도, 제품을 홀랑 태워먹어도, 그게 나에게 '실패'로 남아있을 일은 없을 거야. 뭐 잠깐의 '패닉'이거나 '고도의 피로함'정도는 되겠지.


나는 언젠가부터 정년퇴직을 한 중년의 나이에 세상 물정도 모르고 머리는 굳어서 그 무엇도 도전할 용기도, 능력도 안 되는 스스로를 상상하면서 그런 나의 모습이 나에겐 가장 큰 '공포'라고 생각했었어. 회사가 매 달 정해진 날에 정해진 만큼의 월급을, 내가 일을 많이 해서 성과가 좋은 날에도, 그렇지 못한 달에도 주는 시스템에 중독되어 가던 스스로를 보면서, 나는 언젠가 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은퇴 후 무능력하게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지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렇게 저렇게 굴러가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지금이 그때를 대비하는 연습이라 생각하고 있어.


내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또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이전에 내가 일하면서 경험한 것들 중 나의 마인드셋과 태도로 인해 생겨난 고통을 제거하는 마음 챙김이랄까. 무슨 일을 명상하듯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몸과 마음에 벤 나쁜 습관들과 관념들을 고쳐나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어. 예를 들어 실체가 없는 감정을 만들거나 키워서 내재화한다거나, 전체 흐름을 보지 않고 사소한 부정적인 에피소드를 전체의 흐름으로 착각하는 일, 타인의 인정에 나의 존재감을 맡겨버리는 일 같은 것들. 아마 우리는 함께 일할 때나 떨어져 일하면서 대화할 때 서로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을 거야. 그런 반사적인 행동이나 마음들은 우리에게 중독으로 남아 우리를 좀먹고 있었을지도 몰라.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이런 것들에 조금 무던해지고 대담해지는 기회로 삼아, 정신적 내실을 다지고 싶은 바람이 있다. 쉬면서 그간 했던 마음공부나 명상들이 현실에서도 적용될지 실험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말이야. 결국 명상은 내 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연습이니까.


D-day를 일주일 남짓 앞두고 디자이너 B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일적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무수한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을까. 그리고 그 일들은 우리에게 뭘 깨닫게 해 줄까. 대충 '살려만 주십시오'하는 마음으로 버텨봐야지. 네가 옆에 있는데 뭐. 뭐가 걱정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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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쉬를 만들어 먹었다. 짭잘하고 향긋한 키쉬.


비건 키쉬를 만들어 먹었다. 당최 단 키쉬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아 향긋하고 짭짤하게 만들어 먹었어. 크러스트엔 허브를 넣고, 속은 아스파라거스와 두릅으로 채웠다. 담백하고 향긋한 키쉬를 미니 주물팬에 구우니 꽤나 시골스럽고 귀엽더구나. 단거보다 짠 거, 화려한 것보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너도 좋아할 맛일 것 같아. 맨날 말만 이렇게 하고 혼자 먹는 것 같아 내가 봐도 내가 얄밉네. 파이를 나눠먹지도 못할 여유라니. 문제가 크다. 조만간 키쉬를 구워 선물할게.


지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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