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용기는 늘 필요하다.
창비에서 하는 '언니단'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라는 콘셉트로 진행되고 있는 이 뉴스레터는 작년에 황선우, 정세랑, 하미나, 이반지하, 이랑, 오지은, 손수현 등 좋아하는 작가와 배우,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해 '롤링페이퍼'를 쓰는 형식으로 시작했다. 이 내용은 묶여 책으로도 발간됐다. 요즘의 '언니단'은 구독자가 보낸 사연에 대해 답변을 해주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제의 언니단 뉴스레터 내용이 너무 좋아서 애인에게도 보내주고, 친구에게도 보내줬다. 제목은 '님의 소망은 꺾을 필요가 없습니다.'였다. 나보다 성과가 좋지 않은 남자 직원이 먼저 승진한 것이 좌절스럽고 화가 난다는 구독자 사연에,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답변한 내용이, 내 마음에도 깊이 와닿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는 크고 작은 성차별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기에 일하는 젊은 여성들은 사연을 읽지 않고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생하게 그려질 법한 사연이었다.
반유화 선생님의 답변 내용은 다정하면서도 단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내 감정이 '세계관의 좌절'인지 '소망의 좌절'인지를 구분하라는 것이다. 세계관의 좌절은 세상이 부당하고 성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대리 승진에까지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오는 좌절이다. 소망의 좌절은 세상에 부조리함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니 좌절스럽다는 감정이다. 전자의 경우 새로운 현상을 '사실(Fact)'로 충분히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숙제가 남는다. 이 과정은 현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와 나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 대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 없이 '소망의 좌절'로 넘어가면 얻을 것이 없다는 것. 세계관의 좌절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고 소망의 좌절에만 머물거나 세계관의 좌절만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고 있을 경우 같은 좌절은 매번 일어날 수밖에 없고, 개인의 발전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의 인지와 인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파괴하거나, '나도 그럼 삐뚤어질 테다!' 하는 태도로 대응하기 쉽다.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늘 아프고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원망하거나 부정하는 일은 즉각적이고 상대적으로 훨씬 쉽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은 어리석게도 즉각적인 쉬운 방법을 택한다. 잠깐 마음은 편해지는데, 종합적 결과는 늘 마이너스다. 무엇보다 이런 사고는 관성이 되기 쉽다. 요즘은 내가 20대-30대 초반을 거치면서 단단하게 쌓아온 '관성'이라는 티눈을 제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원망과 부정을 동력으로 삼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연자의 고민을 또래 친구들과만 나누다 보면, '아 대박! 완전 억울하겠다!' 정도의 공감과 조금 더 분노로 발전시켜 인사부에 따지라거나 청원을 해보라는 조언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니단의 편지가 와닿았던 이유는 관성적인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도록 냉정한 조언을 아주 다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조언이라면 법륜스님을 따라갈 자가 없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즐겨본다. 불자는 아니지만 온갖 불교 콘텐츠를 보는 것이 즐겁다. 스님의 말씀 중에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은 '욕구'와 '탐욕'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소망은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탐욕이 되는 순간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로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나타난다. 공부를 안 하면서 1등을 하고 싶어 하거나, 내가 한 일의 결과가 회사와 사회가 약속한 가치(주로 돈이다.)를 더하는데 많은 도움이 안 됐는데, 월급은 더 많이 받고 싶어 한다거나, 나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마음이 모났는데 잘생기고 돈도 많고 거기에 넓은 아량을 가진 남자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거나 하는 일이다. 스님은 항상 아주 대차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하신다. 내가 질문을 한 것도 아닌데 내 오금이 저릴 만큼 냉정할 때도 많다.
행복은 순간의 자극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라는 스님의 가르침에 반항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들은 가끔 아주 공손하게 스님에게 시비를 건다.
"스님은 그럼 매일, 매 순간 행복하십니까?"
"스님은 그럼 한 번도 화가 안나십니까?"
이런 질문 끝에는 "스님도 괴롭다고 말해요!"이 무음으로 따라붙는다.
"'나도 인간인지라 괴로울 때가 있어요.' '나도 힘들고 불행해요.' 하면 듣기 좋아요? 그런 말 듣고 막 힘이 나요?"라고 스님은 반문한다.
남의 괴로움, 고통, 인정 위에만 내 존재를 쌓지 말자. 생각보다 우리는 관성적으로 해왔던 일이지만.
* 언니단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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