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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러너 Jan 28. 2023

통제할 수 있는

아프지마윤슬도토잠보

통제 가능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때


#오랜만에10km

긴긴 설 연휴, 오랜만에 본가에 간 김에 한강을 달렸다. 작년 12월 말부터 시작한 새벽 골프에 달리기는 뒷전으로 밀려나 골프장을 오고 가는 2~3km의 짧은 달리기를 왕복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던 지난 한 달을 반성하는 한 편, 또 한 번 불어난 체중에 대한 속죄를 담아 10km를 달렸다.

처음엔 강동 쪽으로 달릴까 하다 발이 이끄는 대로 좌회전을 해서 반포 쪽으로 달렸다. 딱 600 페이스로 10km를 달리자는 마음과 달리 1km마다 찍히는 랩타임을 5분대로 유지하자는 욕심이 생겨 조금씩 페이스를 올렸다. 그렇게 반환점을 돌아 저녁에 먹을 맥주와 딸에게 내일 아침으로 줄 빵을 사러 가는 길, 약속한 5분대 페이스를 지키기가 너무 힘들었다. 옷을 너무 두껍게 입은 탓에 땀으로 젖어 몸이 무겁기도 했지만, 한 달 새 2~3km 달리기에 적응해 버린 체력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결국 5분대로 10km를 마무리 하긴 했지만 중간중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너무 힘이 들었다. 고작 내 몸 하나, 내 다리 하나 통제하지 못하고 너무 힘들었다.


#아픈딸

슬이가 태어나 자라오면서 작은 병치레를 겪긴 했지만 한 번도 열이 올라 심각한 수준까지 아파 본 적이 없던 터였다. 설 명절을 쇠기 전 날 밤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한복까지 입고 웃으면서 뛰어놀던 아이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밤새 자는 동안 끙끙 소리 내며 앓더니 다음날부터 기운이 없어졌다. 별 일 아니겠거니, 슬이가 좋아하는 빵에 딸기에 사과까지 잔뜩 먹였는데, 갑자기 폭포수처럼 모두 게워냈다. 그때부터 상태가 심상치 않다 깨닫고 얼른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눈꺼풀에 힘이 없이 축 늘어져 잠든 딸이 안타까웠다. 집에 와서 상태를 좀 지켜보다 더 이상 안 되겠기에 근처 문 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잔뜩 타왔다. 섞어 먹여야 할 물약 4개와 가루약 1개까지. 아이는 이제 말귀를 다 알아들어 그런지 병원에 간단 소리에서부터 겁을 먹더니 병원에서도 내내 울고 돌아와서도 약을 섞기만 해도 짜증을 냈다. 먹기 싫어할 줄 알긴 했지만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발버둥 치는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잡고 억지로 약을 짜 넣지만 이내 뱉거나 흘려버리는 딸을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점점 짜증이나기 시작했다. 아픈데 왜 약을 안 먹을까. 약을 먹어야 얼른 나을 텐데. 하루 종일 어르고 달래고 놀아주고 보듬어주고 했지만, 저녁에 또 약을 먹이며 한바탕 한 뒤, 양치를 시켰다. 고사리 손으로 하는 양치질이 마냥 귀엽긴 하지만 칫솔모를 뜯어먹어서 칫솔만 벌써 4개째 바꾼 터라 또다시 양치는 안 하고 칫솔모를 뜯어먹으려는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칫솔을 뺏으려 했다. 아이는 또 짜증을 내며 뿌리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아픈 이틀 내내 너를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못 참겠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호통을 치며 칫솔을 뺏어버렸다. 아프고 열도 나고 약도 잘 안 먹고 하루 종일 짜증을 부리던 것에 나도 지쳤던 걸까, '뜯어먹지 말랬지!!' 소리를 지르고 칫솔을 뺏으니 아이는 울며 엄마에게 달려간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재우러 들어간 아내와 딸을 뒤로하고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갔다. 설거지를 다 하고 들어가니 아이가 지친 얼굴로 잠이 들락 말락 엄마 품에 안겨있는데, 소리 지른 게 미안해 아빠가 아프지 말라고 이야기한 거라고 뒤늦게 변명을 전해 보지만 이미 아이는 눈을 흘기며 아빠한테 서운한 티를 낸다. 금방 잠이 든 아이와 아내와 달리 계속 잠이 안 와 마음이 먹먹해진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 스스로도 통제가 안되는데 저 작고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실 나의 통제에 아이가 불응한 게 아니라, 그간에 지친 내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미안함에 혼자 아이 인스타에 사과의 글과 아이 사진을 업로드하고 청승맞게 흐느끼다 잠이 들었다.

어느새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오늘, 아침 달리기와 새벽골프를 마치고 와 출근준비를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 상태를 체크하고 밤새 열이 38도에서 머물던 아이에게 출근 전 약을 먹이고 조금 늦게 출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제와 달리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잡기 보단 약을 먹어야 빨리 나을 거라는 회유와 설득을 하니 아이도 울긴 하면서도 고개를 젖히지는 않는다. 약을 한 모금씩 어렵게 꿀꺽하는 아이에게 약도 잘 먹고 다 컸다고 칭찬하며 15ml 약을 여러 차례 나누어 먹이고 난 뒤 출근길에 나섰다. 약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약 맛이 입가에 머물러 연신 침을 흘리며 울던 아이에게 바나나 한토막을 쥐어주고 나왔는데 그 마저도 다 못 먹고 지쳐 잠들었다는 아내의 말에 다시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잡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바로 나, 내 몸, 그리고 내 마음뿐. 나머진 최선을 다하되 마음을 비우자.


아프지 마 우리 딸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이 38도를 넘었던 날

그동안 한 번도 크게 아픈 적 없던 네가 얼마나 건강하게 자라왔던 건지 새삼 느끼게 해 준 이틀이네

우리 딸 기관지염에 그르렁 숨소리를 낼 때마다 엄마아빠가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단다.

네가 발버둥을 치며 먹기 싫어하는 물약을 15ml나 먹이려고 엄마아빠가 손발 고개 다 붙잡고 울고 자지러지는 너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 가슴이 너무 빨리 뛰기도 한단다.

엄마아빠도 부모는 처음이라 우리 슬이가 아파서 힘도 없고 좋아하는 고기랑 딸기도 못 먹고 하루종일 시름시름 앓는 걸 보니 하루 종일 우울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우왕좌왕하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해.

우리 슬이 푹 자고 약 잘 먹고 얼른 나으면 엄마랑 아빠랑 재밌는 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더 사랑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자.

엄마랑 아빠는 우리 슬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아프지 마 우리 딸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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