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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남자 Oct 02. 2015

최인훈의 '광장'

이데올로기의 응시

'광장'이라는 최대의 문제작, 문단에 정치적 허무주의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던 최인훈  작가 입니다.

그는 주로 현대인의 불안과 고뇌를 꿈, 일기, 독백, 회상 등의 다채로운 기법으로 표현했는데, 대표작으로는 회색인, 광장, 구운몽, 열하일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회색인, 화두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읽어봤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광장과 화두가 가장 특별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시대적으로 1961년 4·19 혁명 직후에 발표한 광장은 당대까지 금기시되었던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파헤친 작품이며, 책머리에도 자유당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 아래에서는 발표가 불가능한 작품이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특별 고등 경찰이 등장을 합니다. 과거 일제가 정치, 사상 운동 탄압을 위해 만들었던 조직입니다.

조선인 특고는 가장 악랄한 친일 매국 행위에 종사했지만 아무도 그로 인해서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마치 남영동, 변호인 등의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사람들처럼.. 오히려 미군정과 이승만의 친일파 재등용 정책에 힘입어서 당시의 대한민국 경찰 조직의 심장부에 눌러 앉게 됩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

공안 기관들이 자행한 야만적 고문행위는 모두 일제 특고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육사 출신으로 관동군 장교 복무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광장에서 묘사된 특고 이야기는 그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제 살기 위해서 같은 민족의 피를 빨아먹던 무리들을 처벌하지는 않을 지언정 오히려 대한민국 건설의 주역으로 등용했던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과연 민족사적 정통성이 있었나 다시 한번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광장은 다양한 특징을 함유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남북 분단의 이데 올로기 문제를 최초로 다룬 실존주의 소설이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와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을 다뤄 나갑니다. 제목인 광장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휴머니즘이 존재하는 사회적 삶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과 사회학 용어를 사용해서 철학적이고 관념적으로 표현한 것도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념 대립에 대한 부정과 사랑을 통한 구원을 형상화했으며, 남북 두 체제를 모두 비판했다는 것, 분단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를 추구합니다. 형상화된 분단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까지 많은 의미와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광장은 상실과 되찾음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명준은 '밀실'과 '광장'이 조화를 이룬 삶을 추구하지만, 이념의 대립 구도 속에 있는 현실에서는 그러한 바람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결국 그는 은혜와 딸의 환영이 있는 바다에 뛰어드는데, 이는 진정한 사람만이 삶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합니다. 


제 독서량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광장 만큼 명확하게 북의 체제를 분석하고 평가한 문학작품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반디라는 가명으로 고발이라는 작품이 최근 출간되었지만 아직 섭렵하지는 못했고, 이호철의 '소시민' 등에서 약간의 언급,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북한 체제와 너무도 닮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광장처럼 정면으로 그 문제를 다룬 작품을 저는 아직 아는 바가 없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



민족주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공화국이 불과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군부 쿠데타에게 엎어지리라는 것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체제가 그리 튼튼한 기반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의 갈등 구조는 밀실과 광장의 대립 구도에서 비롯됩니다. 광장은 사회적인 삶의 공간으로, 밀실은 개인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해석되는데, 그것은 그대로 남과 북의 대립을 나타냅니다. 


인간이란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집단을 무시하고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도 없으며, 개인을 무시하고 집단의 일원으로만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은 서구적인 개인주의로 정체되어 있는, 광장은 죽고 밀실만 있는 곳인 반면, 북한은 개인을 위한 밀실은 없고 공허한 광장만 있는 곳입니다. 

이 소설은 이와 같이 광장과 밀실의 비유를 통한 분단 상황을 비판하며, 광장도 밀실도 잃은 명준이 자살하는 설정을 통해 극단적인 이념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참 쉽지가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사, 러시아 혁명사를 비롯해 로자 룩셈부르크,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 헤겔 변증법과 마르크스 유물 사관과의 관계, 김일성 정권을 인민 민주주의 혁명의 산물이 아니라 소련 정권의 공문에 의해 하향식으로 조직된 사이비 혁명 정권으로 규정하고 북 체제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견해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 다양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온전히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인공인 이명준의 자살.

남한의 철학과 3학년 학생으로 안온한 삶은 이북의 아버지의 정치 활동을 이유로 경찰에 끌려다니면서 깨지게 됩니다.

민족의 비극을 절감하면서 윤애와의 사랑도 저버리고 월북을 합니다.

망명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면서 소박하되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붉은 심장의 설렘'이 있고  가슴속에서 자랑스러운 정열이 불타는 가치 있는 삶일 수 없었습니다.

오직 퇴색한 구호와 기계주의적인 관료 제도가 판을 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이명준은 자기가 기댈 마지막 지점을 공산당원 발레리나인 은혜와의 사랑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간호사로 전쟁에 나갔던 은혜의 죽음으로 그 사랑도 끝나고, 결국 이명준은 포로가 되고 맙니다. 석방이 되면서 그가 선택한 것은 또 다른 광장을 찾기 위한 제 3국.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그는 바다의 심연에 몸을 던지고 맙니다.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채 전사한 여인 은혜가 무덤 속에서 몸을 풀었고, 그 모녀가 두 마리 갈매기로 환생해 석방 포로를 실은 타고르 호를 따라 마카오까지 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몸을 던지고 맙니다. 


광장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압축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전쟁의 포연 속에서 피어난 남녀의 사랑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그려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레리나를 포기하고 명준을 만나기 위해 온 은혜. 전선의 후미진 동굴에서 치열하고 절망적인 사랑을 나눕니다. 

서로의 몸을 부여잡고 불안과 안타까움을 지워줄 힘을 더듬듯, 다시는 없을 사랑을 꿈꾸듯...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상황에 의해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한 지식인의 암울한 삶이 그려진 소설입니다.

시대를 읽어내던 최인훈 작가의 통렬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늦은 밤 책을 안주삼아 말벡과 기울여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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