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정근 Nov 04. 2019

비건 페스티벌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비건페스티벌에 다녀와서

오늘 낮에 문화 비축기지에서 열린 비건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많이 설렜다. 비건 페스티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편안함이 있다. 일단 무엇이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골라 먹어도 전부 비건이다. 상품의 성분표를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육류가 들어갔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고기를 빼 달라고 따로 부탁할 필요도 없으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외식할 때마다 늘 주변의 비건식을 최대한 찾아 헤매야 하고,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논 비건식을 했을 때는 마음이 껄끄럽고 괴롭다. 외식은 나에게 어느 정도는 숙제와 같다. 피할 수 없으니 열심히 풀어야 하고, 제대로 풀지 못했을 때는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전혀 그런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아무런 마음의 짐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한 바퀴 돌면서 메뉴를 탐방했다. 먹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이럴 때마다 내 양이 많지 않은 게 아쉽지만, 아쉬움은 뒤로 하고 평소에 자주 해 먹거나 접하는 떡볶이, 베이킹 같은 비건식은 제외하기로 했다. 육식으로는 너무 흔한데 평소에 잘 접할 수 없는 메뉴 위주로 골랐다. 핫도그(한국식 튀김 핫도그와 미국식 핫도그), 채소꼬치, 노루 궁둥이 버섯튀김, 비건 라자냐 등을 사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노루 궁둥이 버섯튀김은 닭가슴살 튀김이랑 식감이 완전히 같았고, 채소꼬치도 닭꼬치와 유사하면서도 더 맛있었다. 닭꼬치의 닭은 양념을 흡수하고 씹는 식감 역할을 하는데 채소로 닭고기의 빈자리를 채우면 풍미도 더 풍성해지고 식감도 다양해져서 훨씬 맛있다. 핫도그야 튀김 맛이랑 빵과 소스 맛으로 먹는 것이라서 고기로 만든 소시지가 아니라고 아쉬울 것이 하나 없다. 비건 라자냐는 콩과 두부, 가지 등으로 만들었는데 고기의 텁텁함이 없이 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런 비건 식사를 할 때마다 분통이 터지는 게 대체 왜, 이렇게 맛있는데, 그리고 고기 맛 하고 별다를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다들 동물들을 학대하고 환경을 아작 내가며 고기고기 노래를 부르며 육식에 집착하는 걸까 싶다. 채식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을까? 육식이 세계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그리고 내 혀 끝의 욕망이 우선이라면, 첫 번째로 그 욕망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오는 건지, 무엇으로 채워지고 또 채울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 가능성의 영역이 있다. 지금 그 육식의 만족감은 사실 다른 좋은 것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해보지도 않고, 그리고 알아보지도 않고. 채식이 뭔지도 모르면서, 육식이 뭔지는 더 모르면서.






비건 페스티벌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식기와 텀블러를 지참한다. 올봄 은평 혁신파크에서 열렸던 비건 페스티벌에서는 다들 자신이 쓸 식기를 가져와서 음식을 먹고 나서 한쪽에 마련된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했었다. 사람들이 줄지어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회용품이 우리의 노동력을 덜어주었지만 그 비용을 환경에 일방적으로 부담시켜왔다는 슬픈 사실과 그렇게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뿌듯함이 동시에 다가왔었다. 오늘 문화 혁신기지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주최 측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기를 대여해주기도 하고, 텀블러 할인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유도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모두가 귀찮음에 지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좌측이 비건 라자냐, 우측은 보시다시피 핫도그


또한 이 곳은 기본적으로 펫 프렌들리고, 개와 함께 오는 사람들이 많다. 더불어 유모차에 탄 아기들도 많이 온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도 쉽게 눈에 띄고, 히잡을 쓴 이슬람교도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을 향해 타자의 선을 긋고 혐오와 차별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나와 다른 누군가 때문에 불편하다고 눈에 쌍심지 켜는 사람들이 없다. 사회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평가받던 스스로의 어떤 모난 부분들을 근거로 금지당하거나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받는다. 여기에 등수는 없고, 경쟁과 싸움도 없고, 질투와 시기도 없다. 나를 드러내고 돋보이기 위해 힘쓸 필요도 없고, 뒤처지고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이에게 풀이 죽을 일도 없다. 다양한 인종, 연령, 국가, 종교, 성별의 사람들이 그냥 함께 나란히 있다. 그저 나란히 서서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먹으면서 머릿 속에 만족감의 폭죽을 터트리는데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다들 그 너머, 그 이상의 연결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그걸로 무한한 평화가 싹튼다.


나는 다른 곳에서는 풀 수 없었던 묶여있던 마음을 내려놓고 여기서만큼은 편히 쉬게 둔다. 오랫동안 얽히고 빡빡했던 마음의 매듭이 이들 사이에서는 느슨해지고 헐거워진다. 나도 모르게 담고 다녔던 긴장의 모래 한 줌을 편하게 털어놓고 나니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이 느낌은 정말로 중요하다. 여기서는 누군가 차별받거나 차별하게 두지 않을 거란 믿음, 적어도 내가 그런 일을 목격하거나 겪으면서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거란 신뢰, 눈치를 보며 계산하고 밀고 당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이 지구 상의 구성원으로서 선입견 없이 주고받는 따뜻한 존중들이 있다. 존 레논의 상상도 여기서는 이루어질 것만 같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 가질 배려와 친절과 사랑을 여기서 잠시 느끼고 간다.


그래서 이 공간이 좋고 여기 모인 사람들이 좋다. 이 곳의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 세상에 협력하는 비겁자가 아니라 작은 나로부터도 큰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굳센 낙관을 가진 사람들이고, 비참한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 앞에서 도망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또 나보다 약한 자들을 먼저 생각하고 보듬고 감싸 안으려는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평가를 무릅쓰면서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정말 어떤 난관도 두렵지 않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데, 이렇게 다들 모여있다. 그래서 환상적으로 좋다. 세상이 벌써 다 바뀐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햇빛과 바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